현대 사상에서 프레드릭 제임슨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것은 불필요하다. 새로운 전 지구적인 사회에 대한 의식을 형성하는 데 제임슨이 기여한 바는 매우 크다. 따라서 제임슨이 『브레히트와 방법Brecht and Method 』에서 브레히트를 논한 것처럼, 나 역시 제임슨의 눈부신 길을 따라 그가 얼마나 유용한지 논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나는 ‘변증법적 비평dialectical criticism’이라고 불리는 제임슨의 분석 방법을 중점적으로 보여줄 것이다. 제임슨은 변증법적 비평이 우리에게 충격을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이는 마치 “승강기의 낙하나 비행기의 급강하에서 느끼는 어떤 메스꺼운 전율”(MF, 308/359)과 같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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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슨은 『마르크스주의와 형식』의 서론과 다른 여러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업과 지적 토대를 형성하는 데 많은 사상가에게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했다. 특히 사르트르와 아도르노, 브레히트, 바르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제임슨은 하이데거와 루만 등 자신과 다른 정치적 성향을 띠는 많은 이론가 역시 다룬다. 즉 제임슨은 앞서 언급한 네 사상가를 넘어 광범위한 사상가들과 마주침으로써 자신의 사유를 길러냈다. 이 가운데 중요한 사상가로 보드리야르, 벤야민, 블로흐, 들뢰즈, 프로이트, 그레마스, 라캉, 르페브르, 루카치, 리오타르, 마린 등을 꼽을 수 있다. 이 모든 사상가 중에서 가장 중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은 사르트르와 아도르노, 브레히트, 바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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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무의식』은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을 총체적으로 설명하지만, 미완성인 첫 번째 판본이다(아마도 세 시기 중 마지막 시기에 관해서만 확정적인 진술을 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마지막 시기에 대한 진술조차 ‘세계화’에 관한 제임슨의 새로운 연구가 등장함에 따라 수정될 가능성이 있다. 모더니즘에 대한 그의 설명은 여전히 진행 중이며, 『정치적 무의식』에서 마무리된 것으로 보이던 리얼리즘은 그 후 부활했다). 반면 이 장에서 주로 다룰 ‘정치적 무의식’ 개념과 이에 관한 복잡하고 다층적인 해석 장치는 변증법적 비평의 새로운 형식을 발전시키기 위한 프로그램의 절정과 완성으로 간주해야 한다.
--- p.94
페리 앤더슨Perry Anderson은 1982년 가을 휘트니미술관에서 열린 제임슨의 논문 〈포스트모더니즘과 소비사회Postmodernismand Consumer Society 〉 최초 공개가 1966년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개최한 데리다의 논문 〈인문과학의 담론에서 구조, 기호, 유희Structure, Sign, and Play in the Discourse of Human Sciences〉 최초 공개와 필적할 비판적·문화적 이론의 기초적 순간이라고 공표했다. 통상 데리다의 논문 발표를 계기로 후기구조주의가 시작됐다고 거론되는가 하면, 제임슨의 경우는 앤더슨의 말을 빌리면 “포스트모던의 전체 지도를 단번에 다시 그렸다”(OP, 54).
--- p.134
변증법적 비평의 이중적인 목적은 현재 완전히 세계화된 문화가 자신의 전략적 이익을 위장하면서 미래를 향한 사고를 유지하는 방법을 밝히는 데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과제는 상상력의 두 가지 실패를 추적·진단하는 것이 시급함을 보여준다. 첫 번째 실패는 현재를 유용하게 재현할 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바꿔 말해 현재의 한계와 강점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더 중요하게는 깊이 체계화된 현재의 본질을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재현 방식을 개발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제임슨은 이런 실패를 들뢰즈와 가타리의 강력한 작업에서도 찾아낸다.
--- p.176
저는 요즘 사람들이 미래를 존재하는 것의 연장이 아닌 다른 것으로 상상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봅니다. 벤야민이 말했듯이 파국은 우리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이 그대로 계속된다는 사실이고요. 미래에 대한 감각 없이 인간은 절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나 그 외 인간의 의식에 대한 야망 있고 까다로운 현상학이 진 부담이기도 하죠. 하지만 미래를 향한 충동을 생산적으로 사용할 수 없도록 방해하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누군가 그 충동을 차단하는 것을 해제하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 p.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