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야.’ 목구멍 안의 근육이 꺾쇠처럼 조였다. ‘핏자국이야.’ 심장에 바로 아드레날린 주사를 맞은 것처럼 내 몸에 공포가 엄습했다. ‘나가. 나가. 어서 나가라고…….’ 하지만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너무 무서워서 활짝 열린 창문 아래 놓인 하얀 침대 시트를, 피로 흠뻑 젖은 침대 시트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움직여. 어서 움직여야 해, 에이버리.’ 하얀 시트 위에 놓인 것은 심장이었다. --- p.119
“너 지금 테디 베어에 850달러를 제시한 거야?” 나는 깜짝 놀라 물었다. “밍크 테디 베어잖아. 저쪽에 있는 진주 귀걸이 보이지.” 맥신은 칠십대로 보이는 여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저분이 테디 베어를 원해. 테디 베어를 얻을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대.” 몇 분 후 테디 베어를 들고 의기양양하게 걸으며 다른 경매품에 가격을 휘갈겨 쓰는 진주 귀걸이 할머니가 보였다. “난 정말 박애주의자야. 지금까지 나 때문에 이곳 사람들이 만 달러는 썼어.” 맥신이 주장했다. --- p.183
제트기가 하강하기 시작한 순간 나는 창문 밖을 응시했다. 멀리 산과 구름과 눈이 보였다. 그리고 늘어선 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나는 비행기를 타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전용 비행기를 타고 있다. 임무에 집중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창문 밖으로 보이는 광활한 풍경에 푹 빠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수 없었다. 그런데 이런 인생은 내 것이 아니라는 느낌도 떨칠 수 없었다. --- p.213
제임슨은 나를 옷장 속으로 끌어당겼다. 아까는 노천탕 생각을 그만두는 것이 힘든 정도였는데 지금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그레이슨 형의 능력이 좀 과한 것 같네.” 제임슨은 나를 더 가까이 끌어당기며 내 목에 대고 속삭였다. 우리는 옷들이 끝없이 걸린 옷걸이 뒤로 몸을 숨겼다. 나는 꼿꼿이 서서 숨을 쉬었다. 내 뒤에 서 있는 제임슨도 나처럼 서 있을 게 뻔했다. --- p.271
장검은 이렇게 근거리에서 휘두르는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데도 그는 계속 다가왔다. 이제 내 칼이 수직으로 서고 나와 그 사이에 두 칼만 남을 때까지 다가왔다. 그의 호흡이 보이는 것 같았다. 숨소리가 들리고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내 어깨와 팔 근육이 쑤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른 곳은 더 아팠다. “우리 지금 뭘 하는 거죠?” 내가 속삭이자 그는 두 눈을 감으며 몸을 살짝 떨었다. 그레이슨은 뒤로 물러서더니 칼을 내리며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빈털터리 소녀 에이버리가 텍사스의 최고 부자 토비아스 호손의 상속녀가 된 이유를 마침내 알아냈다고 생각한 순간, 진실은 또 다른 수수께끼를 던진다. 죽은 줄 알았던 호손의 아들이 살아 있다! 그는 에이버리와 체스를 두었던 노숙자 ‘해리’였다. 에이버리는 대중과 매스컴의 악의, 목숨을 노리는 위협 속에서 호손의 손자들과 함께 모든 질문에 답을 해줄 이 남자의 행방과 그의 과거를 파헤쳐나간다. 진실을 찾으며 위험에 빠질 때마다, 마음이 괴로울 때마다 적극적으로 돕고 위로하는 그레이슨과 제임슨에게 에이버리는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세 사람 사이에 흐르는 묘한 긴장감 속에서 호손 가문에 깊은 어둠이 있음이 밝혀지고, 에이버리는 상상도 하지 못한 곳에서 과거와 현재의 중요한 연결고리를 발견하고 혼란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