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이런 사랑을 해본 적이 있나요?]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세계가 무너져버린 사람들의 절실하고 파괴적인 여정을 담은 소설. 사랑 앞에선 비정상적인 이들이 그 미친 감정을 어떻게 끌고 나가는지 속도감 있게 서술해냈다. 읽다 보면 어느새 간절히 그들의 뜻이 이뤄지길 바라게 되는, 뜨거운 에너지가 있는 작품. - 소설/시 MD 김유리
인회는 자신의 삶이 늘 그런 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이 없어서 버려진 자루를 뒤집어쓰기에 급급한 삶. 한번 옷을 잃고 나면 자신에게 맞는 옷을 되찾기가 쉽지 않아서 포대 따위에 연연하게 된다. 그저 배가 고픈 사람이 된다. 검은 산을 헤매는 사람이 된다. 사랑에, 아니 사랑의 진위에 왜 그렇게 집착하느냐고 묻는다면 사랑을 하고 사랑받는 사람은 그렇게 아무 포대나 걸치지 않아도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p.74
“넌 그걸 사랑이라고 생각하냐?” 허인회는 눈을 가리고 있던 팔을 치웠다. 얼굴이 새빨갛게 타고 있었다. 인회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사랑이 아니야. 그 사람만 보면 심장이 뛰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데. 내 눈에 그 사람밖에 안 보이는데 어째서 이게 사랑이 아니야!” --- p.145
“왜 너한테 오진홍을 줘야 하는데. 너희 뭐야? 사랑했어? 아니잖아. 운명의 상대인 척, 서로가 아니면 안 되는 척, 그렇게 척들을 해놓고 왜 이러고 있어? 왜 병들어서 버림받았어? 이게 사랑이야? 너희가 십년 동안 지랄하며 쌓았던 사랑이야?” 보라는 기묘한 얼굴로 인회를 바라보다 물었다. “지금 오진홍이랑 내가 사랑하지 않았다고 화를 내는 거야?” “너 같은 것들은 죽어버려야 해. 완전히 죽어야 해.” --- pp.253~254
“그들이, 그 신혼부부가 서로 사랑하지 않아서 죽인 거죠? 저도 결혼과 관련된 일을 했어요. 식장에서 많은 커플을 만났고요. 세상에는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사랑을 외치는 인간들이 너무 많아요. 저도 그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 pp.299~300
진짜 사랑의 얼굴을 보았습니까? 본 적이 없었다. 사랑이 뭐냐고 물으면, 허인회는 사랑을 간절히 원했던 때를 떠올린다. 아버지의 술 냄새, 얻어맞고 내동댕이쳐졌던 교실, 옷을 벗은 채 헤매던 검은 산, 공부를 더 하고 싶다며 울던 언니, 사랑을 잃은 어머니의 얼굴, 으슥한 골목과 험악한 남자의 손, 간신히 구한 반지하의 곰팡이 핀 하숙집, 남자를 가지고 노는 년이라고 적힌 글씨, 그녀를 속이는 사람의 얼굴, 아이의 흔적이 담기지 않은 빈 초음파 사진 같은 것들. 이상한 일이다. 사랑을 끝없이 기다리지만 진짜 사랑이 나타나지 않아서, 인회는 자꾸만 착각을 한다. 아버지의 화난 얼굴이나 술 냄새 따위가 사랑의 자리를 꿰차버린다. 그런 것들이 사랑의 얼굴이 된다. 할머니를 너무 간절히 기다린 나머지, 그녀를 죽인 범인이 집에 왔을 때 그를 할머니라고 착각하고 문을 열어주는 아이처럼, 허인회는 일그러진 사랑의 얼굴들에 문을 열어준다.
사실 사랑은 끝나는 순간보다 시작되는 순간이 파괴적이지 않은가, 그편이 종말에 가깝지 않은가. 왜냐하면 한 사람의 완벽한 세계를 박살낼 균열의 시작이니까. 『러브 몬스터』는 사랑에 구체적으로 미쳐버린 사람들의 배드 로맨스인 동시에 한 우주의 물리적 종말을 그린 아포칼립스다. 당신을 다치게, 병들게, 숨 막히게 할, 끝내는 최후를 예감하게 할 강력한 파괴?사랑의 서사. 감히 이 사랑을 거부할 용기가 우리에게 있을까? 갈가리 찢기고 산산이 부서질지라도 사랑이여, 그 짜고 치명적인 맛을 다시 한번.
- 박서련 (소설가)
스티븐 킹 『미저리』의 애니가 만일 다른 여자에게 남편을 빼앗긴다면 『러브 몬스터』의 허인회가 될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구원이 갈급한 인물들의 대단히 괴이하고 소름 끼치는 여정을 보여준다. 절실한 마음은 언제나 안타깝고 무섭고 흥미진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