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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344쪽 | 448g | 140*210*30mm
ISBN13 9788954691536
ISBN10 895469153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게 하나 있었다. 스스로 이곳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 다른 사람은 해줄 수 없었다. 억압적인 아버지에게서 누가 그녀를 구조했던가? 자신이었다. 오로지 그녀 자신. 다른 사람이 아니라.
--- pp.71~72

잠자리에 든 에밀리는 이곳에 온 지 이틀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무기력했던 자신을 자책하는 마음이 일어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기 길 밖으로 나가떨어지는 사람이 아니라고 메리는 말했었다. 아, 그녀는 나가떨어졌고, 산산이 부서졌다. 게다가 자기 길이란 무엇일까?
--- pp.93~94

에밀리는 침대에 누워서도 읽었고 지금 앉아 있는 자리에서도 읽었다. 책은 평온과 고요의 장소, 숨을 수 있는 곳…… 책은 좋았다. 독서는 좋았다. “책 읽으러 올라가니, 에밀리? 기특하다.”
--- p.105

화를 내는 앨프리드를 웃음거리로 여기는 그들에게 앨프리드가 말했다. “아, 웃으려면 웃어. 하지만 내가 맞아. 우리가 전쟁을 조금이라도 경험했다면, 너무 심한 전쟁은 안 되지만, 여하튼 그랬다면 이렇게 매사에 견딜 수 없이 독선적이진 않을 거라고.”
--- p.155

나는 지금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아버지에 관한 글을 써왔다. 길거나 짧은 글로도 썼고, 소설로도 썼다. 아버지는 명료하고 또렷하고 완전히 아버지답게 표현되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쓰자면 책 다섯 권으로도, 한 문장으로도 쓸 수 있다. 이건 어떤가? 활기차고 건강한 남자였던 앨프리드 테일러는 제1차세계대전에서 심한 부상을 당한 뒤 장애가 전혀 없는 양 살고자 했지만 여러 질병이 그를 무너뜨렸고, 그로 인해 짧아진 삶의 끄트머리에 이르렀을 때 “늙고 병든 개는 고통을 끝내주면서 나는 왜 안 되는 거야?”라고 애원했다.
--- p.179

말이 나온 김에 내가 지금 이해하려고 애쓰는 일 중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을 당장 살펴볼까 한다. 어머니가 한 말이나, 다른 이들이 어머니에 대해 한 말, 혹은 지독한 열성으로 눈부신 성적을 거둔 굉장한 청소년기나 아버지를 포함해 믿을 만한 목격자들이 증언하는 간호사 시절, 그토록 즐겁고 사교적이었던 페르시아 시절, 이 모든 것의 그 어떤 면도 당시의 변해버린 어머니와 어울리지 않는다. 어머니가 한 사람이 아니라 각기 다른 여러 사람이었던 것처럼, 그 무엇도 들어맞지 않는다.
--- p.184

편지는 기차로 솔즈베리로 간 뒤 그곳 우체국을 거쳐 베이라나 케이프타운행 기차에 실렸다. 그런 다음 이 소중한 편지가 배편으로 영국의 런던으로 가서 읽히고 나면 갈색 종이로 싼 커다란 꾸러미들이 마련되어 두꺼운 노끈으로 묶인 뒤 케이프타운과 베이라로 운항하는 배에 실렸다. 그런 뒤에 다시 반대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솔즈베리로 가는 기차, 그곳의 우체국, 뱅켓으로 가는 기차, 그곳의 역무실. 역무실에 보관된 꾸러미들은 ‘보이’가, 때로는 우리 어머니가 가서 집으로 가져왔다. 책 꾸러미들이 식탁 위에, 내 방의 여분 침대에 펼쳐졌을 때 그 기쁨이란.
--- p.195

자식이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고 제 본질의 어떤 부분을 ‘흡수’하기를 간절히 필요로 하는 부모들의 운명은 자주 좌절되게 마련이다. 아버지의 필요는, 말하자면 정당했다. 전장의 참호, 그래, 나는 그걸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어머니 역시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필요했으나 나는 어머니의 필요를 모른 척하려 했다. 나중에,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야 나는 참호가 아버지를 갉아먹었듯이 어머니가 전쟁중에 겪은 고난 역시 어머니의 내면을 파헤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 p.200

나는 몇 년, 또 몇 년, 또 몇 년이 걸려서야 깨달았다. 어머니에게 눈에 보이는 흉터나 상처는 없었지만, 어머니 역시 불쌍한 내 아버지와 다를 바 없는 피해자였다.
--- p.202

무엇 때문에 잘못된 걸까?
사후에 내리는 깔끔한 결론은 얼마나 매력적인지! 과거를 돌아보는 자리에서 당연한 것들을 확인하면 얼마나 흡족한지. 당연히 이렇게 하면 저렇게 될 테고……
아무것도 제대로 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지금은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전적으로 부모님의 잘못이었지만 부모님이라고 어떻게 알 수 있었겠는가?
--- p.203

나는 그때를 떠올리면, 어린아이들이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고, 마음 한편에서는 동화를 믿으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그게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는, 그들만의 경이로운 사고방식을 생각하게 된다. 이는 자양분이 되고 구원이 되는 엄청난 능력이며, 이 능력을 갖추지 못한 아이는 어려움을 겪을지도 모른다.
--- p.212

나는 내 부모 세대 어머니들을 돌아볼 때 치를 떨며 생각한다. 오, 하느님,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세요…… 그리고 내 어머니를 돌아보며 깨닫는다. 그녀의 본질, 진짜 에밀리는 농장에 정착한 직후 침대 신세를 졌을 때 죽어버렸다고. 오래도록 나는 아버지가 전쟁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역시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진짜 에밀리 맥비는 내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책을 구해준 교육자였다. 나는 어머니를 그렇게 기억하고 싶다.
--- p.226

나는 거의 매일 밤 열 명이 넘는 영국 공군 장병에게 음식을 해 먹였다. 자신의 삶은 보류된 채로 가정을 이룬 삶을 꿈꾸는 청년들은 아기를 어르고 예뻐했고, 나는 베이컨과 달걀, 소시지와 통조림 콩을 가지고 내 핫플레이트 두 개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만들었다. 그들은 고향에 돌아가면 베이컨과 달걀 요리를 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아, 언제 돌아가나? (.…)

나는 요리했고, 그들은 먹었다. 우리는 딱 한 가지가 비슷했다. 진짜 삶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 지금 생각하면, 모두가 병에 걸렸다가 회복중인 사람들 같았다. 전쟁의 시간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없어서 멍하고 망연자실한 상태. 그 점에서라면 나는 세상이, 심지어 지금도, 전쟁을 ‘이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사실을 부정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 전쟁에 대해, 대개는 나치에 대해, 아무리 많은 영화를 만들어내면 뭐하나. 그때는 온 세상이 전쟁을 치르고 있었고, 우리는 그 모든 분쟁의 영역을 샅샅이 살핀 적이 없다.
--- pp.31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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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여성 내면의 삶을 묘사함으로써 문학의 얼굴을 바꾼 작가.
- 제인 프리드먼 (출판인, 하퍼콜린스 대표)
설득력 있는 이야기꾼인 동시에 날카로운 지식인이자 신념을 위해 용감하게 싸우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다. 레싱의 작품들을 출간할 수 있었던 것은 영광이다.
- 찰리 레드메인 (출판인, 하퍼콜린스 UK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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