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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의 말
005 인생이란 시간을 따라 걷는 하나의 순례이다 1장 비우니 향기롭다 - 히말라야에서 보내는 사색 편지 012 들어가는 말 위대한 사랑을 꿈꾸며 014 왜 떠나는가 020 천연의 사원 026 신의 창으로 들어가다 033 우유의 강을 건너면서 037 실패하기 위해 히말라야에 온다 041 히말라야는 묵음의 언어이다 048 갈망과 염원이 솟아날 때 054 우리가 별처럼 영원할 수 있을까 061 왜 산사람들은 정상에 오르는가 067 색계에서 욕계를 보다 071 빙하 위를 걸어서 간다 080 사색을 잃어버린 근대화의 길 085 다시, 카트만두 088 풍요의 여신 안나푸르나 092 티베트 불교의 성지 묵티나트 가는 길 097 천 년의 바람 마르파 102 세계에서 가장 깊은 다울라기리 계곡 106 푼힐 언덕에 해가 뜰 때 111 부족한 ‘여기’와 그리운 ‘저기’ 사이 2장 카일라스 가는 길 - 영혼의 성소를 찾아서 120 박수무당이 내게 한 말 122 왜 카일라스인가 127 하늘길 132 흔들리는 영혼, 라사 137 옴마니밧메훔 143 티베트의 젊은 꿈과 이상 148 달라이 라마의 여름 궁전 153 티베트 사람들의 축제 158 본성 그대로의 남쵸 호수 165 천장 170 티베트 제2의 도시 시가체 177 길 없는 길 186 마침내 신의 얼굴을 보다 194 눈물의 돌마라 고개에서 202 우주의 자궁 마나사로바 206 다시, 옴마니밧메훔 3장 그 길에서 나는 세 번 울었다 - 산티아고 순례 212 바람의 길에 대한 예감 217 그해 봄 떠날 무렵 길 앞에서 중얼거리다 229 아주 오래된 길 233 아주 오래된 욕망 239 아주 오래된 짐 244 바람의 숨결 247 아주 오래된 도구 252 동행자 257 본성의 길 262 아주 오래된 침대 267 아주 오래된 행복 272 아주 오래된 갈망 278 아주 오래된 기도 288 꽃으로 필 다른 날들을 기다리며 4장 새로운 순례길의 황홀한 초입에서 - 폐암일기 292 길이 걷는 나를 보살핀다 296 어느 더운 여름날의 추억 299 존재의 품격 302 보자기로 싼 폭탄을 안고 306 나의 모든 사랑에게 308 생존율 27퍼센트의 길 311 취꽃 315 비밀 316 옹골찬 파동 |
朴範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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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게 위로받고 싶어서 창을 열다 말고 아, 하고 나는 입을 벌립니다. 이렇게 소낙비처럼 쏟아지는 별빛은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습니다. 우주가 다 내 안으로 물밀듯 들어오는 놀라운 경험을 나는 오늘 밤 하고 있습니다. 신의 창 앞에 서 있는 것이지요.
---「032 신의 창으로 들어가다」중에서 문장이 불러오는 오해와 오류의 함정이 독자와 나 사이에 언제나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고통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오해와 오류의 함정을 피해를 피해 그리운 당신들에게 갈 수 있을까요. 그런 길이 있기는 있을까요. 분명한 것은 지금 내가 올려다보고 있는 저 설산들과 나 사이엔 아무런 오해가 없다는 것입니다. ---「035 우유의 강을 건너면서」중에서 나는 비로소 눈물겹게 확인합니다. 불멸의 주인은 에베레스트가 아니라는 것을, 오르고 또 올라도 허공을 넘어설 수 없다는 것을, 모든 길은 허공에서 시작되고 갈라지고 끝난다는 것을요. 살아서 무엇을 이룬다고 할지라도 근원적으로 우리가 불멸의 환희에 도달할 수 없는 건 스스로 허공이 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요. ---「079 빙하 위를 걸어서 간다」중에서 나는 매 순간 눈물겨웠습니다. 나의 존재가 너무도 가벼워 눈물겨웠고, 죽을 둥 살 둥 일벌레로 살아온 우리네 젊은 날의 초상이 안쓰러워 눈물겨웠고, 동강 난 조국에 살면서 그래도 세계의 중심으로 우뚝 서겠다는 장한 꿈을 좇아 오늘도 다리가 찢어져라 내달리고 있는 조국에 대한 연민 때문에 눈물겨웠습니다. ---「114 부족한 ‘여기’와 그리운 ‘저기’ 사이」중에서 살아서 불멸은 꿈일진대, 사랑 이외에 우리가 진정을 다해 말해야 할 것이, 사랑 이외에 우리가 목 놓아 울어야 할 것이, 사랑 이외에 우리가 모든 진심을 맡겨도 좋은 것이 과연 무엇이 있겠는가 하고 생각한 날이 많았습니다. ---「116 부족한 ‘여기’와 그리운 ‘저기’ 사이」중에서 ‘모든 생명은 언젠가 나의 어머니였던 적이 있다’는 잠언은 티베트 불교에서 수행의 으뜸가는 계율 중 하나다. 티베트인들은 가문을 인정하지 않고 성씨도 따로 쓰지 않는다. ‘너의 조상이 언젠가 나의 조상’이었기 때문이다. ---「141 옴마니밧메훔」중에서 티베트 사람들이 성스러운 전설과 신화가 깃든 곳을 순례하는 것은 순례하는 그 시간만이라도 죄를 쌓지 않기 때문이다. 죄 없이 유지되는 생명은 없다. 살아있는 것은 어쨌든 다른 무엇을 소비하지 않고선 그 명줄을 유지할 수 없으므로 본질적으로 보면 오래 살수록 죄가 쌓인다. 자꾸 나이 드는 게 미안한 건 그 때문이다. ---「186 마침내 신의 얼굴을 보다」중에서 부엔카미노는 ‘좋은 길’이라는 뜻으로서 순례길에서 누구에게나 통하는 축복의 언어다. 부엔카미노, 부엔카미노, 하다 보면 사람과 사람, 사람과 풍경이 경계 없이 한통속이 되는 느낌이 든다. 바람에 흔들리는 밀밭 한가운데를 여러 시간 혼자 걷다가 불현듯 “부엔카미노!”라는 환청을 들은 적도 있다. ---「235 아주 오래된 욕망」중에서 햇빛은 타는 듯 빛나고 바람은 몸을 관통해 지나가며 나는 절룩절룩 기분 좋게 걷는다. 저 마을에 도착하면 빵이나 간단한 샌드위치, 음료를 파는 카페가 있을 것이다. “저곳에 카푸치노가 있어.” 나는 중얼거린다. ---「236 아주 오래된 욕망」중에서 나의 숨소리는 우렁차기 그지없었고, 한없이 깊었으며, 또 어떤 순간 나의 숨소리는 신의 음성처럼 자애롭고 헌칠했다. 내 안에 깃든 신이 숨 쉬는 것 같았다. 고독과 정염과 분열은 물론 날숨과 들숨 사이에 깃든 아픈 방황도 나는 느끼고 보았다. 내 존재의 영광과 오욕이 그 숨결의 노래에 깃들어 있었다. ---「246 아주 오래된 짐」중에서 과일 속 씨처럼, 살아있는 모든 것의 중심엔 죽음의 씨가 들어있다. 시간이 지나면 과육이 조금씩 썩고 씨앗 하나만 발라당 배를 내밀고 누워있게 되듯이, 사람도 그러하다. 늙는 건 그 씨앗의 민낯을 만나려고 걷는 지난한 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274 아주 오래된 갈망」중에서 암종癌腫이 나의 숨구멍에 똬리를 틀고 앉았다는 전갈을 듣고 나는 순간적으로 이제까지 걸었던 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순례가 시작되겠구나 하고 생각한 것 같아요. 마침내 하나의 먼 길이 끝나고 또 다른 하나의 먼 길이 시작되는 문 앞에 당도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292 길이 걷는 나를 보살핀다」중에서 어스레한 삶의 뒤란에서 당신 역시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무엇인가를 떼어 내주며 살아왔다는 거, 알고 있어요. 그러면서도 늘 ‘내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라며 순하게 웃는 당신, 당신은 참 놀라운 사랑이에요. ---「306 나의 모든 사랑에게」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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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무엇을 찾아, 이 낯선 길을 흘러 다니는 것일까
누군들 그렇지 않겠는가. 냉혹하기 이를 데 없는 경쟁, 자학적 수준에 도달한 정신적 분열, 효율성의 구호 아래 일사불란하게 서열화를 이룬 생명의 가치, 실패하면 죽는다는 불안….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이 대충 이렇다. 육체와 정신이 서로 다른 곳을 배회하니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있는지 모를 지경이지만, 이것만은 알겠다. ‘산다는 게 이건 아니지!’ 작가는 걸핏하면 짐을 쌌다. 짐은 헐거웠지만, 가슴은 열망으로 가득했다. 초월에 대한 열망이었고, 신성에 대한 열망이었으며, 순수에 대한 열망이었다. 매년 떠난 히말라야에서 고산증으로 정신이 가물거리기도 했고, 킬리만자로 허리에 엎드려 울기도 했고, 캅카스산맥 삼나무 그늘이나 시베리아 자작나무숲에서 술에 취해 쓰러져 잠든 적도 있었고, 산티아고로 향하는 멀고도 텅 빈 길에서는 또 여러 번 울었다. 히말라야든 킬리만자로든 피레네산맥이든, 그곳이 돌밭길이든 진창길이든 길은 모두 같았다. 자동차도 오토바이도 소용이 없으니 빨리 가고 늦게 가는 것이 별반 차이가 없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위아래가 없고 사람과 당나귀 사이에도 높고 낮음이 없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게 공평하게 열려 있을 뿐이니, 이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걷는 것뿐이다. 두 다리 외의 어떤 이동수단도, 편리를 제공하는 물건도, 시중을 들어 줄 사람도 없으며 오직 내 앞에 놓인 길만이 나를 도울 뿐이다. 그러니 이 길 위에 흐르는 존재들은 몸은 고될지언정 불안감에 사로잡히지 않고 영혼은 분열하지 않는다. 순례는 사실 걷는 게 아니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아득바득 다가가는 것이 아니다. 길 위에 올라선 채 길이 흐르는 대로 나를 가만히 맡겨두는 일이다. 돌아올 날을 완주의 성취를 기약하는 것이 아니다. 설령 먼 곳에서 바람으로 떠돌다가 혹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영영 잃어버리더라도 주저하지 않는 것, 그것이 흐르는 길에 대한 예의이며 참 순례라고 할 수 있다. 인생도 그렇다. 인생도 결국 하나의 순례이니까. 길 위에선 아무도 가면 뒤에 숨을 수 없고, 누구도 불안에 떨지 않는다. 자신이 본래 그 텅 빈 본성으로부터 걸어 나왔다는 충만감으로 마음속이 환해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숨결을 정밀하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으며, 자신의 숨결이 본래의 자신과 일치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는 마치 자신 안에 깃든 신이 숨 쉬는 것만 같다. 살을 파고드는 배낭끈이 속살 자체가 되는 듯한 고통마저 신비한 기쁨으로 다가온다. 비로소 ‘고통은 업장을 쓸어내는 가장 커다란 빗자루’라는 말을, 뜨겁게 고통을 바친 순례자들의 비밀스런 축복을 알 것만 같다. 작가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폐렴을 얻었고 돌아와 폐암 판정을 받았다. 이제까지 가본 적 없는 새로운 길이 그 앞에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묵묵히 병고의 순례길을 걸었다. 흩어진 마음을 모아 진심 어린 기도를 드리며…. “만약 내가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고 해도 사랑하는 이여, 나의 죽음을 결코 차갑게 여기지 마소서. 내가 태어날 때와 내가 죽을 때를 구별하지 마소서. 혹 슬플지라도 ‘환하고 따뜻한 슬픔’으로 나를 느끼소서. 내 평생 따뜻한 물로 흐르며 살기를 간구했으니, 갓 낳은 달걀을 두 손으로 쥐었을 때처럼, 탄생처럼, 죽음으로 떠나는 나의 영혼도 부디 따뜻한 파동으로 느끼소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