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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가고 여름

[ 양장 ] 민음의 시-313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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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희곡 top100 2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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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4월 21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286g | 124*210*20mm
ISBN13 9788937409332
ISBN10 893740933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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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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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작하게 익어 가는 열매를 따먹으며
우리는 이 도시에서 늙어 가겠지만

꽃은 제 심장을 어디에 감추어 두고 지려나

여름 가고 여름 온다
---「여름 가고 여름」중에서

아홉 개의 힌두사원이 있는 산길을
신의 등허리를 타고 오른다

나를 놓치지 말아다오
사람들은 외롭지 않겠다고 사원을 지었던 거란다
두려운 것은 신이 아니라 외로움이거든
---「아홉 개의 힌두사원으로 가는 숲」중에서

잊혀진다는 건
세월이 주는 모멸을 견디는 것이었지만

이제는 기도조차 모국어로 하지 않는다고

떠나온 나라의 폐사지를 걸어 나오듯
당신은 낡은 휠체어 바퀴를 매만지며
천천히 사원을 빠져 나간다

저녁 아잔 소리가
거친 이마 주름을 따라 흐른다

오늘은 금요일
---「금요일」중에서

안녕, 하는 말은 비행기를 닮았어요
날렵하고 매끄러운 금속 같아요

언제부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방방곡곡 병실에 누워
작별의 인사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없는 동안에도
사랑을 멈추지 말아요
---「출국」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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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숙의 시를 읽으면서 왠지 모르게 가슴 한쪽이 흔들리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별의 술상에서 불렀던 노래처럼. 생을 관통해 그리워했던 사람에게 끝내 못 참고 쓴 편지처럼. 그러나 불태워 버린 편지처럼. 채인숙의 시에는 재가 되어 버린 서사가 있다. 현대시가 잊고 있었던 재의 서사가 열대의 나라에서 날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고통 속에서 부른 노래만이 고통을 담을 수 있는 법. 미분되어 날아가 버리는 시들이 득세한 세상에 쌓이고 쌓여서 도달한 슬픔을 읽는 아련한 시간이 있었다.
- 허연 (시인)
바람결에 적은 편지와 같고, 자리를 지키며 고요히 바라보는 나무 같고, 제 속을 보이지 않지만 길을 열어 주는 바다 같은 몸으로. 여름을 건너 우리에게 닿은 이 시들은 이제 더 이상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는 시”가 아니기에 굳이 “희망”을 노래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언제나 혼자였을 시이나 이제는 독자의 손에 함께인 시이므로, “주목나무 아래”에서 “혼자 낭독”하던 목소리에 하나둘 보태어지는 목소리를 기대해도 좋겠다.
- 소유정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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