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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빛

[ 양장 ]
리뷰 총점9.7 리뷰 7건 | 판매지수 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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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4월 03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388쪽 | 436g | 137*197*30mm
ISBN13 9788937456053
ISBN10 8937456052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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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부모님은 범죄자 비슷한 두 남자에게 우리를 맡기고 떠났다. 우리 집은 런던의 루비니 가든이라는 거리에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어머니였던가 아버지였던가, 식사 후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자더니, 두 분이 앞으로 일 년간 우리를 떠나 싱가포르에서 지내다 올 거라고 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겠지만 그렇다고 짧은 여행도 아니라면서. 물론 그동안 우리를 잘 돌봐 줄 사람을 구해 두었다고 했다.
--- p.13

그때 알았어야 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뛰어넘었다. 언젠가는 어머니가 베드퍼드셔의 칙샌즈 수도원, 그리고 그로스브너 하우스 호텔 꼭대기의 “새 둥지”에서 헤드폰을 끼고─이쯤에서 누나와 나는 이곳이 ‘화재 감시’와는 별 상관이 없는 곳이라는 걸 짐작하고 있었다─무전기에서 나오는 복잡한 주파수에 귀를 바싹 기울이며 독일군의 메시지를 가로채 영국 해협 너머로 전송하는 일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우리는 어머니가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기술을 지닌 존재임을 알아 가고 있었다. 그 아름답고 흰 팔과 섬세한 손가락으로, 명확한 의도하에 사람을 쏘아 죽인 적도 있었을까?
--- p.23

우리가 나방과 살았던 첫 겨울이 지나갈 무렵 어느 날, 레이철 누나가 내게 지하실로 따라오라고 했다. 누나가 방수포와 상자 몇 개를 치우자, 어머니의 납작한 트렁크 가방이 드러났다. 저게 싱가포르가 아니라 여기, 지하실에 있다니. 마술을 보는 듯했다. 가방이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지하실 밖으로 나가는 계단을 올라갔다. 아마도 그토록 주의 깊게 개켜서 가방 안에 꾸려 놓은 옷들 사이에서 찌부러진 어머니의 시신이라도 발견할까 겁이 났던 것 같다.
--- p.40

“고양이 기억하니?”
“고양이라뇨?”
“예전에 키웠잖아.”
“그런 적 없는데요.”
“키웠어.”
나는 예의를 차리려고 입을 다물었다. 나는 고양이를 키운 적이 없다. 고양이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저는 고양이를 피해요.”
“알아. 그런데 왜 그런 것 같니? 어째서 고양이를 피하게 됐을까?”
난롯불이 푸시식 소리를 냈다. 나방이 무릎을 꿇고 가스계량기에 동전을 넣어 불을 되살렸다. 그의 얼굴 왼쪽에 불빛이 번졌다. 나방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몸을 뒤로 젖히면 다시 어둠에 파묻히리라는 걸 안다는 듯이, 자신을 봐주기를 바라는 듯이, 친밀한 순간을 유지하고 싶다는 듯이.
“넌 한때 고양이를 키웠어.”
--- pp.44~45

“익힌 머리를 가져다줘요.”
그가 웨이터에게 주문했다. 그토록 의뭉스럽고도 무시무시한 문장을, 화살은 회향가지 하나만 가져다 달라는 듯 태평하게 말했다. 그녀는 염소 머리를 먹는다는 말에 아연실색했고, 다른 손님들은 곧 터질 커플 싸움을 보려고 식사 속도를 슬슬 늦췄다. 비록 화살이 연극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해도, 한 시간 30분 동안 대여섯 쌍이 지켜보는 가운데 두 사람이 벌인 것은 스트린드베리식 연극이었다.
--- p.79

어느 날 다가올 주말에 대해 우리가 나누던 대화를 들은 화살이 우리를 템스강 사업에 끌어들였다. 마치 누나와 내가 옆에 없다는 듯이 우리를 데려다 자기 일을 좀 돕게 해도 되겠느냐고 나방에게 물었다.
“낮일인데, 밤일인데?”
“아마 둘 다.”
“안전한 일이야?”
나방은 우리가 들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하듯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완벽하게 안전해.”
화살은 가식 어린 미소를 띠고 우리 쪽을 보며 큰소리로 대답하면서, 안전은 확실히 보장한다는 듯 퉁명스럽게 손을 내저었다. 합법적인 일이냐는 질문은 나오지 않았다. 나방이 웅얼거렸다.
“너희 수영 못하지?”
우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화살이 한마디 던졌다.
“쟤네 강아지들 같지 않아?”
이번에는 나방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정말로 강아지들 같은지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면서.
--- pp.110~111

문득 어둠 속에서 나를 만지는 손길이 느껴져 나는 깨어났다.
“안녕, 스티치.”
어머니 목소리였다. 어머니가 걸어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어머니가 의자 하나를 끌고 가고 있었다. 방 맞은편에는 긴 탁자가 있었고, 그 앞에 아서 매캐시가 흰 셔츠에 피를 묻힌 채 앉아 있었다. 어머니는 그 옆에 앉아 말했다.
“누구 피가 묻은 거지?”
--- p.168

잠시 후 누나와 나는 카펫 깔린 계단을 함께 내려갔다. 로비에 몇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어머니, 평복을 입은 남자 여섯 명--- p.어머니는 우리를 지키기 위해 온 사람들이라 했다), 매캐시, 화살까지. 바닥에는 수갑이 채워진 남자 둘이 누워 있었고, 그들과 따로 떨어진 채 담요에 반쯤 덮여 있는, 피투성이여서 알아볼 수 없는 얼굴로 우리를 응시하는 남자 한 명이 있었다. 누나가 숨을 헉 들이켰다.
“누구예요?”
한 경찰이 몸을 굽혀 담요를 끌어 올려 그의 얼굴을 덮었다. 누나가 비명을 질렀다. 그러자 누군가 누나와 나를 사람들이 못 알아보도록 코트로 머리를 덮어서 길거리로 이끌었다. 코트 속에서 누나가 우는 소리가 조그맣게 들려왔다.
--- p.172

번갯불이 번쩍이는 찰나, 나는 어머니가 수렁에 빠지는 걸 보았다. 내가 둬야 할 수는 뻔했지만, 그것과는 또 다른, 잘못될 수도 있지만 어쩌면 더 나을지도 모를 수가 눈에 보였다. 나는 곧바로 말을 옮겼다. 어머니는 내가 둔 수를 보았다. 주위로 온통 굉음이 쏟아졌지만 우리 둘 다 그 소리를 그저 듣고만 있었다. 홍수 같은 번갯불이 온실을 환히 밝힌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보였다.
그 표정은…… 무엇을 드러냈을까? 놀라움? 일종의 기쁨?
그렇게 해서 우리는 마침내 어머니와 아들이 되었다.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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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치는 마법을 통해 전쟁과 사랑, 죽음과 상실 그리고 과거의 어두운 수로로 이어진 어슴푸레한 세계로 우리를 데려간다.
- 허마이오니 리 ([뉴욕 리뷰 오브 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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