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것이 무르익는 때 / 원숙 ripeness
오십의 시작, 이제 어떤 모습은 탐스럽고 풍성하기도 하지만, 어떤 모습은 세상의 풍파에 시달려 찌든 얼굴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흐트러지지 않은 바로 오십의 나이에서만 얻을 수 있는 외적 부드러움과 내적으로 성숙된 어떤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은 강인한 모습입니다. 아주 풍성하든, 아니면 세상 풍파에 흔들리어 보잘 것 없는 모습이라 하여도 그 모습은 각자가 가진 그대로의 모습 그대로 아름다운 모습으로 빛나기 마련입니다. 바로 이것이 오십에서 보게 되는 원숙미입니다
우리는 욥이 고난을 이겨내고 성숙한 모습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비록 욥만큼의 고난을 아니더라도 젊은 시절의 고난을 이겨내고 현재의 성숙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바로 오십에 들어선 우리의 지금의 모습은 바로 이런 고난 후에 다가온 성
숙한 아름다움의 모습입니다.
성인이 된 스물부터 우리가 살아갈 나이 팔십까지, 꼭 인생의 중간기가 바로 오십입니다. 인생의 중간 결산기, 오십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원숙한 인격이 드러날 때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역자들을 불러들이실 때, 그냥 바로 사용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랜 시
간 긴 시간을 두고, 그들을 훈련시키신 뒤에 사용하셨고, 다시 소명을 부여하셨습니다. 성경의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모세입니다. 모세는 어린 아이 때 죽음에서 구원을 받아, 40년간 이스라엘 왕궁에서 자랐고, 다시 40년을 광야에서 보낸 후, 인생의 3분의 2가 지난, 나이 80에서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고난을 겪고 원숙해진 나이 80이 된 후에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이끌어낸 것입니다. 우리 의지가 죽고 하나님의 인격이 그리워지는 때가 인생의 가장 원숙한 나이 오십입니다. 이때가 바로 다시 주님의 부르심을 경험하며, 주님께 나아가 소명을 다시 입을 때입니다.
- 기품 넘치는 가장 큰 아름다움 / 절제 temperance
전도서는 우리 각양의 삶이 때가 있음을 알려줍니다. 청춘으로 세상을 출발할 때, 희망도 가득했지만, 한 면으로 세상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부담감도 무척이나 컸습니다. 그러나 이제 긴 연륜을 지나 인생 중반에 들어섰습니다. 세상만사가 새옹지마라는 말이 있듯이, 기쁨이 있으면 슬픔이 있고, 슬픔이 있으면 또 다른 기쁨이 찾아옵니다. 이 진리를 잘 설명한 말씀입니다. 이같이 때의 순환의 진리를 알면 사람이 가벼워지지 않게 되고, 경거망동하지 않게 됩니다. 늘 자신의 상황은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십이 차면서 바로 원숙해지고, 절제력을 갖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를 알게 되는 시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과 다른 것은 주님께서 가르치신 교훈인 성경에서 그 인생의 길을 알고, 진리를 배우며,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의 방향을 찾기 때문입니다. 오십은 젊은 시절과 달라졌음을 확연히 느끼는 것은 말과 행동, 그리고 삶의 모습에서 무게감이 있고, 진중해진 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가벼이 의사를 결정하던 젊은 시절과는 달리, 이제는 여느 사람들의 가벼운 접근이 쉽지 않고, 고매한 인품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오십에 들면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 중의 하나가 바로 절제입니다. 젊은 청년기에는 절대로 갖지 못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바로 오십에 있습니다. 어떤 일이든 자제력이 있고, 그러면서도 능력 있는 모습은 바로 이 나이에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 나이는 중후한 모습으로,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터 위에 서 있는 바위 같습니다. 그럼에도 온유와 겸손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 절제의 모습은 하나님의 때를 앎으로 시작됩니다. 현재의 모습뿐만 아니라. 미래의 모습을 예견하면서 더욱 자제력 있는 기품 있는 모습이 존경스러움을 갖게 합니다. 오십은 원숙미가 함께 어우러져 함부로 근접할 수 있는 기품을 형성합니다. 바로 오십에 드러나는 아름다운 절재미의 모습입니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