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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갑니다, 세계 속으로

: 여행 PD의 출장이 여행이 되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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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5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382g | 135*205*20mm
ISBN13 9791190846127
ISBN10 1190846128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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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이었다. 산과 폭포를 보여주던 휴대폰 화면은 온통 검은색으로 변했고, 화면 상단의 빨간색 N/A(Not Available, Not Applicable) 표시가 큰일이 일어났음을 알려줬다. 드론이 추락했다. 지표면에서 높이 올라간 드론은 폭포에서 점차 멀어지며 샤파다 두스 베아데이루스 국립공원의 넓은 산세를 담고 있었다. 부딪칠 만한 건물도, 바람 한 점도 없는 곳이라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드론을 날렸었다. 추락한 채 전원이 꺼져버린 드론은 GPS 상에 마지막 위치를 남겼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드론이 추락한 곳은 내가 서 있는 곳보다 500미터 가까이 높은 데다 등산로가 전혀 없는, 말 그대로 첩첩산중이었다.
---「따봉은 카메라에 담기지 않는다」중에서

다음 아이템을 정하는 건 내가 아니다. 내가 눈뜨고도 보지 못한 게 무엇인지, 널리 알려야 할 게 무엇인지 가르쳐주는 건 늘 길 위에서 만난 분들이었다. 뉴스에서는 채솟값이 비싸다고 난리인데 왜 제주에서는 양배추 밭을 갈아엎고 있는지,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에는 왜 한국인이 없는지, 영업시간이 끝나면 백화점 식품관의 비싼 케이크는 다 어디로 보내지는지 그분들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것이다. 올해도 인생에서 마주칠 일 절대 없을 누군가를 만날 거다. “그래도 자꾸 알리면 바뀌지 않을까요?”라는 마음으로 낯선 이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내가 버린 쓰레기를 만난 여행」중에서

콜웨지에서 2주를 보내고 떠나는 날, 비로소 나는 스무 살에 시작한 내 여행의 첫 챕터를 닫았다. 지금껏 여행으로 남 눈치 안 보고 자유롭게 사는 건 충분히 배웠으니, 이제 책임 있는 어른이 되자. 지속 가능한 삶을 약속하는 새하얀 기기가 아니라 아이들의 빨간 눈을 기억하고 알리자. 맑은 물과 상쾌한 공기와 푸른 나무를 싫어하는 아이는 없다. 그게 필요하지 않은 아이도 없다. 좀 더러워도 되는 마을과 좀 아파도 되는 아이는 없다. 깨끗한 환경과 건강이 취향이나 특권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코발트 먼지처럼 뿌예진 머릿속에 담아온 이 여행의 감상이었다.
---「아이를 위한 지구는 없다」중에서

최저가를 찾아 무턱대고 떠났던 일본의 작은 도시들, 잘못 찾아 들어간 골목과 비를 피하던 좁은 가게들 곳곳에 무비자 국제 연애 3년의 눈물과 콧물이 묻어 있다. 오이타의 온천에서는 야니스가 변태를 만나 경찰이 출동하기도 했고, 벳푸에서 다카치호 협곡으로 가는 길에는 환승 버스를 놓쳐 수트 케이스의 방수 커버를 머리에 쓰고 시골 논길에서 한참이나 비를 맞아야 했다. 일본을 여행하며 큰 비나 눈을 만나지 않은 적은 없다. 늘 아끼던 구두가 젖거나 하얀 블라우스에 가죽 가방끈 색이 물들어버리곤 했다. 혼자였으면 짜증나고 축축했을 날들, 사진의 나는 언제부터인가 야니스처럼 바보같이 웃고 있었다.
---「우리 여행의 시작과 끝, 일본」중에서

그 여행 동안 엄마는 평소에는 하지 않던 일을 많이 했다. 얼굴만 한 젤라토를 들고 아이처럼 웃는 엄마 얼굴, 거위 가까이 가려고 바지를 걷고 호수로 첨벙첨벙 들어가던 엄마 얼굴, 에스프레소의 씁쓸함에 당황한 엄마 얼굴. 모두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무엇을 준비한들 엄마에게 생색을 낼 수는 없었다. 나의 첫눈, 첫비, 첫걸음마, 첫 아이스크림…, 엄마가 지켜보고 응원해줬을 모든 첫 순간은 셀 수 없을 테니까.
---「엄마의 낯선 얼굴」중에서

당일 배송, 새벽 배송에 빨래부터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사오는 것까지 대행 서비스가 넘치는 서울에서는 최저가와 최단 시간을 골라 ‘일 시킬 사람’을 찾는 게 당연하게 느껴진다. 늦은 밤에 내가 못 하는 일을 대신해주는 사람에 대한 고마움은 ‘당신이 아니라도 그 일할 사람 많아’라는 생각 뒤로 사라져버린다. 두뇌 회전 빠른 여의도 직장인인 나는 가끔 어리숙하고 딱한 여행자가 되어서야 잊고 있던 ‘고마움’이라는 감정을 마주한다.
---「여행의 신은 없다, 사람만 있을 뿐」중에서

3박 5일 패키지여행이든, 혼자 하는 세계 일주든, 맛집만 돌아다니다 오는 여행이든, 동행과 싸우고 눈도 마주치지 않는 여행이든, 일상의 모든 ‘안 하던 짓’은 그 사람의 삶에 색을 칠한다. 그게 쌓이면 눈, 코, 입은 아니라도 표정쯤은 만들지 않을까. 대단한 여행가를 꿈꾸던 나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하지만 평범한 직장인이라는 거푸집을 조금씩 벗어나는 내 모습은 나의 여행들이 만들어준 것이다. 그래서 고맙다. 언제부턴가 인천공항에 돌아온 순간 들리는 한국어가 반가운 것만으로도 늘, 여행이 고맙다.
---「‘안 하던 짓’들이 모이면?」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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