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괴로움이야.’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면, 선뜻 와 닿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럼 살면서 가장 슬프고 괴로웠던 장면을 한번 떠올려보시라. 어쩌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의 경우에는 죽은 아들의 영정 앞에서 욕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이생에 가장 슬프고 괴로웠던 장면이었다. 저는 오빠가 둘이나 먼저 떠났는데, 그때 어머니가 장례식장에 와서는 죽은 오빠들에게 나쁜 놈들이라며 욕을 퍼부었다. ‘니들이 어떻게 어미한테 이럴 수가 있냐?’라며 영정 사진을 노려보면서 따지는데, 지금껏 그리 슬픈 장면은 본 적이 없다. 아무도 말릴 수 없을 만큼 너무나 괴롭고 슬픈 장면이었지만, 어쩌면 우리가 처한 세계의 실상을 가장 처절하게 직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장면이기도 하다.
--- p.33
인도인들이 시간과 죽음을 동일시했듯이, 유럽 사람들도 분명 죽음과 시간을 함께 받아들여 해석했던 것 같다. “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다.”라고 했다. 듣고 있으면서도 못 들은 척하는 사람에게는 이야기해 봐야 소용없다. 현명한 메시지를 접했을 때, 자는 척하지 말고, 못 들은 척하지 말고, 눈을 떠 ‘무상’한 현실을 직시하자. 그래도 괜찮다. 너도, 나도 무상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 p.73
체코의 프라하 광장에 걸린 멋진 시계도 배터리가 다 되면 멈추게 되어 있다. 조건이 바뀌면 시계가 멈추듯이, 모든 것은 조건이 달라지면 그 역할도 다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가장 크게 마음에 영향을 끼치는 사랑하고 미워하는 감정도 그렇다.
--- p.119
불교 교리를 말할 때 보통 삼법인, 사성제, 중도, 팔정도, 연기 등등을 말한다. 불교를 공부하다 보니 알게 된 재밌는 것은 사성제 안에 삼법인도 들어 있고, 연기도 들어 있고, 팔정도도 들어 있고, 또 중도도 들어 있다는 것이다. ‘모든 동물의 발자국이 코끼리 발자국 안에 다 들어오듯’, 모든 가르침이 사성제에 다 포함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사성제를 잘 아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불교의 거의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 p.132~133
사람이 아픔을 느낀다는 것은 어쩌면 희망이 있다는 이야기다. 아프다는 걸 알아야 치료할 생각을 내게 되기 때문이다. 아프지 않다면 좋겠지만, 아픔을 느끼지 못한다면 굉장히 심각한 일을 야기하기도 한다.
--- p.137
불교에서는 ‘고’의 반대말은 ‘락’이 아니라, 고요한 세계, 평안의 세계, 열반의 세계라고 말한다. 괴로움의 반대는 괴로움이 없는 평온한 삶이라는 것이 불교적 사유방식이다. 그러므로 불교는 고통의 소멸 상태인 열반으로 가는 방법을 가르친다. 고통을 소멸시키고 행복으로 가는 길, 그 길을 설명해 주는 것이 사성제의 가르침이다.
--- p.151쪽
좋은 것만 좋아하는 쾌락, 예를 들어 고요한 삼매에만 머물고 싶은 욕망이 너무 강해 어떤 것에도 방해받고 싶지 않은 것도 쾌락을 좇는 것으로 본다. 수행을 통해 얻어지는 ‘삼매(三昧)’의 경우에는 부도덕한 욕망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걸맞지 않은 듯 보이지만, 제아무리 고상한 종교적 쾌락이어도 지나치게 매어 있으면 극단적 쾌락임에는 분명하다. 부처님은 이러한 것까지도 포함해서 욕망의 끝으로 치닫는 것을 우선 내려놓으라 말씀하셨다.
--- p.241쪽
앞이 보이는 사람이나 보이지 않는 사람이나 자신의 견해에 집착하는 면에서 본다면, 모두가 똑같다. 진리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전체를 보지 않고 부분적으로만 보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조심스러운 것이다. 일부만 보고 전체를 상상해서 말한다면 누구나 다 틀릴 수 있다. 중도의 가르침은 우리가 가진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려준다.
--- p.258~259
혼탁한 세상에서 살아가려면 수많은 유혹에 동요될 수밖에 없다. 저 세이렌만큼이나 강력한 유혹이 마음을 동요시키고, 인생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더러는 진흙탕에 구르기도 하고, 더러는 고인 물처럼 썩어가기도 한다. 화가 부글부글 들끓기도 하고, 번뇌 망상이 잡초처럼 자라거나, 담쟁이덩굴처럼 쑥쑥 뻗어 나가기도 한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묶어줄 밧줄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계율’이다.
--- p.296~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