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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리터러시

: 혐중을 넘어 보편의 중국을 읽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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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외교 top20 1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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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6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356쪽 | 496g | 148*217*18mm
ISBN13 9791160405248
ISBN10 1160405247

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들어가는 글: 안에서 본 중국과 밖에서 본 중국

1부 생소한 중국, 생생한 중국인 이야기

문약한 송나라가 중국 최고의 ‘리즈 시절’로 꼽히는 이유
홍콩과 대만, 그 회색 지대에 대한 상상
암흑의 숲속에서 인드라망을 찾다: 《삼체》로 살펴보는 중국 SF 오디세이
성장과 리스크 관리를 아우르는 중국의 쌍순환 전략
한중일 제조업 장인들의 얽힘과 설킴의 역사

2부 추상적인 거악을 넘어 새로운 보편으로

네이션 스테이트, 하나의 중국이라는 도그마
대중문화에 대한 검열과 규제, 중국몽은 백일몽이 될 것인가
중국식 유교 관료 사회의 기원과 한계
제로 코비드 정책의 기쁨과 슬픔
중국, 법가와 법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다

3부 도그마 너머의 중국과 한국을 만나다

혐중 정서의 또 다른 기원, 르상티망 플러스
플랫폼으로서의 중국과 지속 가능한 한중 관계
방법으로서의 자기, 방법으로서의 K
한국과 중국, 서로 다른 ‘도덕과 정의’를 말하다
한중일,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감과 거리감

4부 두려움과 부러움 사이에서 발견한 새로움

지금, 중화 민족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
중국의 ‘민족’ 대신 ‘지역’과 ‘사람’을 만나자
남쪽으로 열린 새로운 차이나: 이상국 문학상 수상작이 그린 남방 해양 중국
동아시아 화합을 모색할 새로운 무대: 중국식 판타지 현환 작품 속 둥베이

나가는 글: 중국인의 ‘생활 세계’를 찾아서
참고문헌

저자 소개 (1명)

책 속으로 책속으로 보이기/감추기

‘중화 중심주의’는 존재한다. 2006년 베이징에 머물 당시, 한번은 내가 재직하던 다국적 회사의 사내 행사에 참석했다. 그때 미국에서 온 한 중국인 동료를 만났다. 그는 초면인 나에게 다짜고짜 공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한국인들은 왜 더 이상 한자를 사용하지 않는 거죠? 한국 전통문화에서 중국 문화를 몰아내려는 거 아닙니까?” 기습적인 질문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홍콩인 동료가 나를 대신해서 답해 줬다. “한국도 경제가 발전하고 국력이 신장되면서 자기 전통문화를 더 중시하는 것이겠죠. 그들이 자기 언어와 문자를 사용하겠다고 결정한다면 누가 간섭할 일이 아니지 않을까요?”
--- pp.12~13

2020년 한국 언론이 중국의 애국주의와 청년 인터넷 애국주의자인 ‘소분홍(小粉紅)’을 비판하는 기사를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우선 국가와 시민을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중국 정부의 애국주의 정책과 이를 이용하는 ‘독재자 시진핑’을 비판할지언정, 시민들을 싸잡아 ‘중국’이라는 추상적 기호로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더 많은 관찰과 생각을 한 후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과연 국가와 시민을 온전히 분리하는 것이 가능할까?”
--- p.17

중국의 MZ세대 시청자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드라마 장르 중 하나는 역사 판타지와 타임 슬립(time slip)물이다. 그래서 어느 시대로 시간 여행하고 싶은지 물으면 송나라(宋朝)라는 답변이 돌아온다고 한다. 공산당의 ‘위대한 중국’ 프로파간다에 열광하는 애국주의 청년들을 미심쩍게 바라보는 이웃 나라 시민들 입장에서는 뜻밖의 발견이다.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무제나 고구려를 동북아 지도에서 지운 당태종의 시대가 아니라 문약(文弱)한 송이 그들의 로망이라고?
--- p.27

중국이나 일본처럼 비교적 단일한 민족 정체성을 가진 국민 국가에서도 이런 변경 지역을 상상해 볼 수 있을까? 만일 제주도나 오키나와 같은 지역의 거의 완전한 자치를 인정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중략)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냉혹한 국제 사회의 현실과 지정학적 이유를 들어 이런 질문들이 어리석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내 질문의 초점은 단순히 이 시나리오의 실현 가능성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당신은 과연 당신이 ‘우리의 일부’라고 믿는 어떤 그룹 사람들이 국민으로서의 소속감을 거부한다면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나아가 그들이 아예 새로운 민족 정체성을 형성하고 국가로서의 독립을 주장한다면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나는 제주도를 대만, 부산을 홍콩에 비유하고 사람들에게 ‘만일 이들 지역에 대해 일본의 식민 종주국 지위나 그 영향력이 100년 넘게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대체 역사 소설을 한번 상상해 보라’고 질문을 던져 본 적이 있다.
--- pp.49~50

“중국 업체와의 경쟁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냐고요? 저도 답이 없죠.” 경남 지역의 용접 노동자 출신 저자 천현우 씨의 《쇳밥일지》 북토크 행사를 우연히 유튜브로 접하고 청년 세대의 반중 감정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먹고사니즘’이라는 것을 재확인했다.(중략) 수도권과 지방,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구성된 한국의 이중 경제 구조 속에서 후자에 속한 평범한 청년들에게 안전하고 안정된 삶과 미래가 보장될 수 없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 환경은 이 기업들이 중국 제조업체들과의 가망 없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중략) ‘가성비’ 좋은 노동력과 잘 정비된 생산 인프라를 좇아 끊임없이 유동하는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덕을 본 것도 사실이고, 세계 최대의 국내 시장도 상수다. 하지만 불과 20년 만에 세계적 공업 대국 일본, 한국을 차례로 앞지른 중국 제조업의 이 ‘어마무시’한 실력의 문화적 기원은 어디에 있을까?
--- pp.84~86

‘하나의 민족이 하나의 국가를 이뤄야 한다’는 ‘네이션 스테이트(nation state)’와 ‘하나의 중국’이라는 도그마에 언제까지 매달려야 하는 것일까?(중략) 중국이 대만을 놓칠 수 없는 것은 민족의 통일 정서도 있지만 그보다는 중국의 남쪽 바다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적 타협을 통해 미국의 개입을 제한하면서 대만의 정치적 독립 문제를 대만 사람들이 스스로 결정하게 할 수는 없는 것일까? 당연히 이런 방침의 전환은 국제 사회의 전폭적 지지를 받을 것이다. 반대로 홍콩과 우크라이나의 사례처럼 민족주의적 정서를 등에 업고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통합 정책을 사용하면 내부적으로도 치유가 불가능한 큰 상처를 남기는 역효과가 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p.109

한국의 누리호 발사나 K-무기 개발에 관한 중국 뉴스들, 그리고 최신 한국 하드 SF 영화 등에 대한 중국 내 평을 살펴보면 유독 비꼬는 댓글이 많다. 바로 한국인들을 분노하게 만드는 소분홍식 관점들이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중국인들 상당수가 이 화제를 두고 상당히 껄끄러워하고 부담스럽게 의식한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 중에 조금 천박한 수준의 중화 중심주의를 가진 사람들이 앞서 말한 댓글을 다는 것이다. 아예 관심을 둘 만한 가치도 없다면 굳이 뉴스를 들여다보거나 댓글을 달지도 않았을 것이다. 소분홍의 이런 행위는 한국의 반중주의자들이 ‘차이나 포비아’와 무거운 르상티망에 잠겨 즉자적으로 반응하는 것의 거울 이미지다.
--- p.182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보통 중국인들의 관심은 현저히 줄고 있다. 2022년 말에 행해진 대만 지방 선거에서 독립을 반대하는 국민당이 승리하자 중국 내에서 대만을 협박하던 매파의 목소리도 함께 사그라들었다. 2027년 중국의 대만 침공설을 기정사실화하는 중국 바깥의 미국 주도 여론과는 달리 중국 내에서는 무력 통일을 주장하는 강경한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는다. 2023년 초 시진핑은 러시아의 푸틴을 방문하여 중러 양국 간 경제 협력 대화를 나누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해결 방안을 논의했다. 또 베이징에서 중국이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평화안을 중재했다. 이제 중국 정부는 G2 패권 국가로서의 힘자랑 대신 몸을 숙여 ‘평화주의자’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 p.194

예전에는 중화가 중심이 되는 ‘천하’ 세계 하나뿐이었지만 지금은 미국이라는 플랫폼이 존재하고, 중국도 미국도 아닌 제3지대의 결성도 고려해 볼 수 있다. 즉, ‘몰빵’하지 않아도 된다. 훨씬 가벼운 마음으로 ‘골라 먹는 재미’를 누리면서 해 볼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책은 중국을 주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 집중하고 있지만, 나와 독자 여러분들은 한반도가 200년 전처럼 중국의 세계관과 영향력에 일방적으로 포섭되는 ‘리차이나(ReChina)’를 바라는 게 아니다. 그렇게 되면 중국, 일본, 미국이라는 종주국 위치가 한 바퀴 돌아 다시 중국으로 넘어가는 것에 불과하다. 물론 균형을 맞추기 위한 긴장은 항상 존재할 것이다. 그런데 원래 한국인들은 이런 긴장감 넘치는 게임 같은 세상인 ‘재미난 지옥’에서 살아가는 것을 즐기지 않았던가?
--- p.208

나는 2022년의 우크라이나 전쟁, 2021년의 미얀마 군부 쿠데타, 그리고 2019년의 홍콩 사태와 신장 인권 문제 논쟁을 접하면서 이 상황들을 지켜보는 한국과 중국의 시각 차이 사이에서 상당한 갈등을 느껴야 했다. 양국의 국익이나 민족주의 담론과 관계된 대립보다는 한국인들의 과잉된 도덕주의적 태도와 중국인들의 지나친 무관심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특히 홍콩 사태는 내가 사는 광저우에서 불과 수백 킬로미터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벌어진 일인 데다가 내게는 많은 홍콩 친구가 있었기 때문에 좌불안석이 되었다.
--- p.243

중국 사회는 사회 구조상 복수의 여론 계층이 존재하기 때문에 국가가 개입하지 않는 이상 한국처럼 인터넷과 레거시 미디어가 상호 작용하며 여론을 증폭시켜 단일한 ‘국민 여론’을 만들어 낼 수 없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자신의 ‘키배’ 상대인 중국 네티즌이 중국 보통 사람들의 생각과 관심을 대표하는 것으로 착각한다.(중략) 이제 한국인들도 ‘중국의 지역’, 그리고 그 안에 살고 있는 ‘뼈와 살로 이루어진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물론 나는 중국에 별 관심 없는 한국 사람들이 억지로 중국을 만나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에 살면서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중국을 의식하지 않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많든 적든 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돕기 위해 실질적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은 아마도 한국의 미디어와 지식인, 그리고 문화 예술인들일 것이다.
--- pp.304~305

기업 문화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전문가들 중 중국의 거대 기업에 좋은 조건으로 취업했다가 ‘단물만 빨리고’ 쫓겨났다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중국 기업과 중국인들을 믿을 수 없다”라고 험담한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의 디테일을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는 중국 기업에 본질적인 문제가 있다기보다, 상호 간의 언어와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한 소통 문제 해결이나 기대 관리(expectation management)에 실패했을 수도 있고 중국 기업들의 기업 문화 성숙도나 국제화 수준이 모두 부족했을 가능성도 높다. 마치 삼성이나 LG와 같은 한국 대기업들이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추구하면서 외국인 직원들을 채용하기 시작했을 때 벌어진 일들과 다르지 않다.
--- p.314

나는 이런 주장이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되기를 바랄 뿐 우리의 미래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면 한다. 여기서 내가 제안하는 내용들은 그런 차원의 시각 전환을 촉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문화는 우리의 사고방식과 행동에 영향을 끼치긴 하지만 ‘한번 결정되면 영구불변’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중략) 나는 이 책을 통해 세간에 유행하는 ‘뒤집어 보기’를 유도하는 것은 아니다. ‘가치의 전도’가 아니라 ‘가치의 상대화’를 권할 뿐이다. 나, 우리와 그들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세상을 이해하려는 작은 노력이다. 내 시도가 한 사람의 생각에 작은 변화라도 이끌어 낼 수 있을까? 그것은 알 수 없지만 독자 여러분의 의견은 내 생각에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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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생활 세계를 통해 바라본 조금은 다른 중국

다국적 기업의 금융 IT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포기하고 생태 교육과 생활 공동체 등 지속 가능한 라이프 스타일 활동가로 커리어를 전환할 때만 해도 저자 또한 중국에 대한 오해와 편견, 팔이 안으로 굽는 ‘한민족 중심주의’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2015년 무렵 중국의 농촌과 교외 지역에서 평범한 중국인들의 일상 속으로 깊이 들어가 ‘생활 세계’를 경험한 후에야 우리가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중국과 중국인을 잘못 ‘읽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저자가 경험한 사례 중 하나가 동북공정 문제다. 그는 국내 주간지에 기고할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상하이의 한 고등학교 역사 교사인 친구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하지만 그 친구는 동북공정을 단순히 지역 개발 프로젝트로 착각할 정도로 이슈 자체에 대해 무지했다. 또 중국의 주류 역사학계나 역사 교사들도 옆 나라의 역사일 뿐인 고구려에 대해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를 거라고 덧붙였다.(10쪽) 중국 남방의 주요 명절 중 하나인 단오가 우리에게는 큰 의미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중국인들은 ‘이기적이고 비도덕적이어서 곤경에 처한 타인을 잘 돕지 않는다’거나 ‘믿을 수 없고 속을 알 수 없는 음험한 존재’라는 선입견은 또 어떠한가? 이런 이미지는 길을 가다가 쓰러진 노인을 도와줬더니 너 때문에 다쳤다고 억지를 부리며 배상을 요구했다는 일종의 자해 공갈 사건(일명 ‘펑츠 사건’) 같은 가십성 일화 때문에 형성되었다.(154쪽) 하지만 중국인의 현실적이고 보수적인 윤리관은 한국인의 생각처럼 이기적인 것이 아니다. 사회와 공공에 대한 윤리적 감각이 다를 뿐이다. 중국은 한국과 다른 역사적 경로로 발전해 왔기 때문에 ‘보편 가치’에 대한 관점이 한국과 다소 차이가 있다. 한국인이 옳다고 믿는 가치를 중국에 일방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이지도, 정의롭지도 않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18쪽)

중국에 대한 무관심과 무시의 확산에는 한중 간 문화 교류 부족도 한몫했다. 한류와 K-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흥행한 가운데 중국의 대중문화 수준은 여전히 낮게 평가하며 중국을 표절의 왕국, 지적 재산권과 저작권 개념이 없는 무법 지대, 프로파간다 콘텐츠의 천국으로 여겼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오랫동안 자국 대중문화를 보호하며 전략적으로 육성해 온 결과 다양한 장르에 걸쳐 웰메이드 작품이 선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SF다. 중국의 SF는 ‘SF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을 연이어 수상하는 등 국제적 위상이 한국보다 훨씬 높다.(52쪽) 그 외에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 웹툰, 웹소설, 게임 등 대중문화 콘텐츠의 창의성과 완성도는 글로벌 수준이며 이를 소화할 수 있는 내수 시장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거대하고 탄탄하다.

물론 우리가 여태 알지 못했던 중국의 새로운 면모에는 긍정적인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이동, 언론, 학문의 자유가 제한되고 인권 의식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하나의 중국’을 외치지만 소수 민족을 차별하는 이중적 행태, 중국식 유교 관료주의의 한계, 대중문화에 대한 검열과 규제, 제로 코비드 정책의 명과 암, 가부장적 악습과 전제 통치를 위한 악법 등에 대해 저자는 강도 높게 비판한다.

그렇다면 중국에 대한 이런 무관심과 몰이해가 혐중과 반중의 원인일까? 물론 충분한 배경이기는 하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한중 국민들의 집단적 잠재의식에서 비롯된 무언가가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보고 있다.

혐중의 배경에는 ‘르상티망 플러스’가 있다

한국은 1992년 대중 수교 이후 줄곧 ‘가난하고 낙후한’ 중국에 대해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계기로 크게 성장한 중국의 문화적 역량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한령으로 인한 수출, 관광, 서비스업의 침체는 한국 서민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끼쳤다. 여기에 대만과 홍콩 문제, 신장과 티베트의 인권 문제, 미세먼지와 코로나19 팬데믹까지 겹치게 되었다. 이처럼 한국의 보통 사람들이 중국에 대해 키운 반감은 중국이 자초한 것도 있고, 중국을 악마화해야 하는 미국이나 이에 동조하는 한국의 우파 세력이 과도하게 부추긴 점도 없지 않다.(175쪽)

저자는 혐중과 반중의 배경에 새로운 형태의 ‘르상티망(ressentiment)’이 있다고 말한다. 르상티망은 숙명적으로 도저히 능가할 수 없는 상대에게 품은 원한을 일컫는다. 그래서 니체는 ‘주인에 대한 노예의 감정’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흔히 한반도의 지정학적 운명을 고래 사이에 끼인 새우에 비유하곤 한다. 이를 외줄 타기와 같은 처세로 이용하자는 부류도 있지만, 조선의 엘리트들은 중화 중심주의를 내면화하며 문명의 변방에 위치한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는데 이것은 일종의 르상티망으로 해석된다. 더 나아가 로마 제국에 죽음으로 저항한 스파르타쿠스나 중국에 대한 대만과 베트남의 감정처럼 한국 또한 “아주 오래되고 찐득한” 정서, 패권 혹은 ‘추상적인 거악’에 대한 반역과 저항 정신을 가졌다고 보는데 저자는 이를 ‘르상티망 플러스’라고 명명한다.(179쪽)

《삼국지》 《영웅문》 등을 보고 자라면서 우아하고 장엄한 중국 문명에 대한 호감과 호기심을 가졌던 현재의 중장년 기성세대와 달리 중국의 문화와 역사를 제대로 접할 기회가 없었던 MZ세대는 동년배 중국인 유학생이나 인터넷 게임 상대를 통해 중국을 접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조별 과제 실패나 비매너 게임 플레이 등 중국인 때문에 현실적인 손해를 입으면서 그들에 대한 비호감을 키웠다. 중국의 제조업과 문화 산업 역량이 높아지면서 미래의 경쟁자가 될 것이라는 무의식적 두려움, 혐오를 부추기는 정치적 갈라치기 전술과 부족주의에 대한 호응도 MZ세대의 혐중 정서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197쪽)

그렇다면 중국, 특히 중국의 청년 세대의 혐한 정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자기편일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오히려 자기를 적대한다고 느끼면 사람들은 생판 남보다 더 미워하는 경향이 있다. 한중의 젊은이들이 서로를 싫어하게 되었지만 중국 내 반한 정서는 혐중의 반작용에 가깝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249쪽)

중국을 떠올릴 때마다 화를 내는 것은 아무런 실익도, 의미도 없다. 더욱이 우리는 미워해도 되지만 너희는 미워하면 안 된다는 ‘내로남불’식 사고는 한중 관계 개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은 자급자족해도 풍족하게 누릴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에너지, 식량, 자원 등 상당 부분을 외부에서 들여올 수밖에 없다. 또 한국의 특기 중 하나가 외부의 지식과 기술로 탁월한 부가 가치를 만들어 내는 것 아닌가? 국제화 시대에 여러 문명, 세력과의 교류는 피할 수 없다. 하물며 수천 년을 부대끼며 지내 온 징글징글한 이웃인 중국과도 마찬가지다. 피할 수 없다면 즐기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저자는 중국을 하나의 민족이나 국가가 아닌, 우리가 이용해야 할 플랫폼으로 바라보는 방법을 제안한다.

플랫폼으로서의 중국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현재 한국인이 중국을 바라보는 관점은 지나치게 국민 국가화되어 있다. 한중 간에 문제가 생기면 사안이 무엇이든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의 대립 구도로 보는 것이다.(304쪽) 하지만 중국에는 56개의 민족이 살고 있으며, 한반도 혹은 대한민국 크기만 한 성급 행정 구역은 31곳이나 존재한다. 2022년, 광둥성의 GDP는 이미 한국 전체 GDP를 넘어섰고 상주인구는 1억 명 이상이다. 면적이나 인구 같은 단순 체급으로만 따졌을 때 중국은 한국을 30개 합쳐 놓은 나라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한국을 유럽 전체나 미국이라는 슈퍼파워와 직접 비교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러 지표의 규모에서 유럽과 미국을 능가하고, 조직의 운영 방식이나 구조도 다른 중국을 한국과 일대일로 비교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285쪽)

중국은 인류의 고문명 중 지금까지 민족과 국가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유일한 나라다. 세계 최하위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는 우리 민족이 과연 중화 민족보다 더 오래 존속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는 쉽지 않다. 중국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미국과 동등한 역량을 가지거나 추월할 가능성이 높고 앞으로도 우리와 공존해야 할 이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중국과의 관계를 어떤 방식으로 가져가야 유리할까?

저자는 한국이 3가지 방법을 동시에 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첫째, 미국을 위시한 서방 핵심 국가와의 관계를 중시하되 우리가 나서서 반중을 하지 않는다. 둘째, ‘비중비미(非中非美)’를 해야 하는 우리와 비슷한 입장의 나라들, 특히 아세안 국가들과 함께 연대하고 상호 협력해야 한다. 셋째, 중국을 한국과 동등한 경쟁국으로 여기기보다는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으로 간주하고 우리 스스로를 플랫폼 참여자로 포지셔닝한다. 플랫폼은 규칙에 맞게 사용하면 되는 도구지, 인격을 부여하고 그 관계와 과정에 정서적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208쪽)

그렇다면 어떻게 ‘플랫폼으로서의 중국’을 잘 활용해 윈윈 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 저자는 많은 한국 청년이 미국과 서구 사회로 진출해 공부하고 일하는 것처럼 중국을 찾아 활동하는 것을 추천한다. 평범한 중국 사람들의 생활 세계를 경험하면 그들의 입체적인 면모를 파악하고 보다 유연하게 이해하며 궁극적으로 새로운 기회와 돌파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베이징과 상하이처럼 중화 중심주의 성향이 짙은 대도시보다 지역 거점을 찾는 것이 좋단다. 지역민들은 한국 사람들을 더 환대하고 진지하게 대화에 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307쪽)

이때 조선족 동포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하나의 팁이다. 한국인과 조선족 동포와의 관계는 한중 관계만큼이나 멀어졌다. 하지만 한국인과 조선족 동포들의 관계 변화는 한중 관계 변화의 축소판일 수 있다. 우리보다 중국 사회와 문화를 더 잘 이해하고 언어 구사에도 불편이 없는 그들과 파트너십을 갖고 도움을 주고받는다면 보다 효과적으로 기회를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213쪽)

한국이 유연한 경계 국가를 추구해야 하는 이유

중국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바라보는 방법만큼 우리에게 실리적으로 유용한 도구가 또 있다. 바로 ‘방법으로서의 K’다. 독일 막스플랑크 사회인류학 연구소 소장인 중국 출신 인류학자 샹뱌오는 우리의 물리적 ‘부근, 주변’과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깊이 관찰하고 이해하기 위해 ‘방법으로서의 자기’라는 사유법을 제안했다.(20쪽) 중국은 역사적으로 ‘중화(中華)’라는 ‘방법으로서의 자기’에 익숙하다. 세계를 바라보고 이해하고 상대할 때 항상 자신을 중심에 두고 자기를 방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은 결국 중국이 미국과 서구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세계의 중심에 서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면 우리의 조상과 우리들은 한 번도 자기를 방법으로 삼아 본 경험이 없다. 강대국들의 힘이 정면충돌하는 위치에 놓인 지정학적 운명 탓이다. 우리는 조선 왕조 500년, 혹은 그 이상 동안 중화라는 방법에 의탁해야 했다. 그리고 식민지와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100년간 일본이라는 방법을 거울로 삼았다. 이제 미국이 제시하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우리 삶의 척도가 되었다.(221쪽) 그러다 보니 종종 ‘중심과 최고’를 부러워하고 여기에 집착하곤 한다. G5나 핵심 국가라는 말에 과한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좋은 예다. 오죽했으면 ‘심리적 G8 국가 반열에 올랐다’는 자평이 나왔을까.

하지만 저자가 생각하는 ‘방법으로서의 자기’는 단순히 ‘천상천하 유아독존’이 아니다. 경쟁보다 연대와 협력을 중시하고,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자신만의 만족을 위해 노력하며, 스스로 자족함을 알고 삶을 즐길 줄 아는 자세다. 그러므로 우리는 핵심이 되기 위해 애면글면하기보다 핵심과 변방의 사이를 우리 의지와 상황에 맞게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경계 국가’로 남아 유연함을 무기로 실리를 챙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226쪽) 대표적인 경계 국가로 싱가포르와 베트남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역사적 원한과 혐오라는 감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기 객관화를 통해 자기 자신과 주변을 잘 이해한 덕분에 실질적 국익에 도움이 되는 외교를 펼치고 있다. 우리 또한 이미 상당 부분 그런 위치와 능력을 갖췄으니 자신의 아이덴티티 설정만 제대로 하면 될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방법으로서의 K’, 그리고 우리만의 리듬과 속도로 보편과 시대의 흐름을 좇아 문제와 모순들을 해결해 나가는 태도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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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이야기는 대개 연결의 부재보다 과잉 때문에 미궁에 빠진다. 무수한 연결을 따라가고, 매듭을 풀고, 때로 새로운 연결을 만들면서 한국인들의 이해, 논쟁, 성찰의 화두로서 ‘중국’을 등장시키는 작업이 쉬울 리 없다. 《차이나 리터러시》는 연결을 업으로 살아온 저자의 이력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책이다. 중국에서 일상을 살면서, 동시에 한국과 부단히 접속하면서 마주친 인물, 매체, 사건을 다채롭게 엮어 근래 쟁점이 된 ‘혐중’을 통찰하고 중국과 마주하는 법에 관해 흥미롭고 논쟁적인 주장을 펼친다.
- 조문영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
김유익은 중국과 한국 사이의 단순한 매개자가 아닌, ‘지리적 중간물’이다. 그는 중국의 문제의식으로 한국을 들여다보고, 다시 한국의 문제의식으로 중국을 들여다보며 두 나라가 지닌 여러 문제를 성찰하게 만든다. 그가 이 성찰을 통해 내놓은 대안은 단순하고 임시방편적인 화해가 아니라 이 지역이 처한 모순들을 새롭게 바라보는 눈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 책에서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을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 하남석 (서울시립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 교수)
중국과 한중 관계를 고민하는 저자의 시선은 결국 한국 사회에 대한 질문으로 나아간다. 이제는 ‘준서구인’이라는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언제 주변부로 밀려날지 몰라 조바심하는 우리의 불안이 ‘공산당 중국 오랑캐’에 대한 혐오를 정당화하는 것은 아닌지, 도발적인 질문도 던진다. 추상적 거대 담론을 넘어 구체적인 중국을 만나고, 중국을 플랫폼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보자는 이 책의 제안은 갈등 너머 공존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소중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
- 박민희 ([한겨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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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리뷰  차이나 리터러시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베*이 | 2023.07.10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나에게는 일본만큼이나 좋지 않은 존재가 중국이다. 그 시절 일본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는 중국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역사에 '만약'은 없다. 중국을 싫어하고 일본을 싫어하지만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하긴 내 나라의 역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남의 나라야 어쩔까. 지피지기를 시전해 보려고 한다. 중국을 생각할 때 같이 따라오는 것은;
리뷰제목


나에게는 일본만큼이나 좋지 않은 존재가 중국이다. 그 시절 일본이 아니었다면 우리나라는 중국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역사에 '만약'은 없다.
중국을 싫어하고 일본을 싫어하지만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하긴 내 나라의 역사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남의 나라야 어쩔까. 지피지기를 시전해 보려고 한다.


중국을 생각할 때 같이 따라오는 것은 홍콩과 대만이다. 둘 중 영국령이었던 홍콩은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되었다. 홍콩은 영국, 중국, 일본의 지배를 거쳤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지배를 받은 노란 피부 영국인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까, 본토 중국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까? 홍콩과 중국은 서로 호의적이지 않다. 국가가 곧 주체성이 아니라 그들이 사는 지역이 주체성이다. 중국 반환을 앞두고 꽤나 혼란스러웠던 홍콩의 지금은 어떨까?



중국의 인구는 세계 최대다. 어마 무시한 규모에서 오는 중국의 힘은 막강하다. 반대로 그 힘을 골고루 분배하고 균형을 이루는 것이 그들의 최대 숙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나라와 다르게 공산주의로 국가 통제가 강하다. 그럼에도 모두 평등하지 않다. 도시와 농촌에서 발생하는 빈익빈 부익부는 넓은 중국을 황폐화 시킬 수 있다. 성장과 발전도 중요하지만 리스크의 관리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현재의 중국은 도시화율이 60%에 불과한 향촌 중시 국가이다. 거대 인구를 살릴 식량을 결코 축소시킬 수 없다.


중국이 가진 가장 큰 무기는 가성비 좋은 노동과 막대한 시장이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도 수요 되지 않으면 소용없다. 그것에 일본도 미국도 결국은 잡혀먹혔다. 그들과 다르게 한국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장담하는 건 세상 물정 모르는 하루살이의 생각과 같은 것이다. 중국은 무섭게 기술과 과학 격차를 좁히고 있다.


중국의 역사는 아주 길다. 세계 4대 문명의 발생지이기도 하다. 그렇다며 한족, 중화 민족, 소수 민족 중 어느 입장에서 바라봐야 할 것인가. 그들 나름의 입장과 시각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중국은 결코 소수 민족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한한령으로 K 문화 금지령이 내려졌다. 중국은 한국, 일본의 프로그램을 대놓고 베끼는 저급한 문화를 거침없이 보여줬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싸구려 콘텐츠가 아닌 웰메이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어처구니없는 정책으로 찬물을 끼얹는 건 중국 정부다. 소통의 부재 그리고 모호한 검열 기준은 대중문화의 발전을 가로막는다. 표현의 자유를 막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의 근자감만 부추긴다.


현재 중국도 더 이상 고속 성장의 시대가 아니다. 이제 중산층은 포화되었고 경제적 계급이 고착화되었다. 중국의 분산과 쏠림, 중심의 이동 역사는 다수 민족의 영토 점령과 함께 중국을 이리저리 꼬았다. 이 책을 읽는 동안도 중국은 어렵다.


한국인이 중국에 갖는 감정의 뿌리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중원의 황제에게 가장 충성하는 조공국이자 유교 문화권의 우등생인 조선과 베트남은 조금씩 중국을 앞서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중국의 그늘에 있었으며 강대국들 사이에 새우를 자처했던 한국은 강국들 사이에서 망하지 않고 살아남았다. 외교적인 처세술이 뛰어났다. 하지만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조선은 항상 긴장해야 했다.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중국에 가지고 있는 마음은 오랜 역사와 함께 그 무엇보다 찐득하다.


어쩌면 문화적, 역사적, 혈연적 친연성이 가장 깊은 세 나라 한중일. 하지만 지금 한중일 동아시아 공동체는 어디에도 없다. 그럼에도 중국은 일본은 약간의 선망의 대상, 한국은 동생으로 취급한다. 왜 그럴까? 중국의 인구는 14억 명이다. 과연 이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볼 수 있을까? 중국은 행정구역에 따라 생김새, 말투, 성격, 식습관이 천양지차다. 과연 동일 민족으로 볼 수 있을까? 역사 시대라고 불리는 그 시절 시작된 고대 문명 중국은 지금도 존재한다. 그들은 같은 민족 또는 나라인가?


한중일의 관계는 복잡하다. 적당한 힘겨루기를 하고 있다. 누구 하나 힘을 빼거나 더 당기지 않는다. 우린 중국, 일본을 항상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나라를 유지할 수 있다. 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 대한민국은 그럼에도 5천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이 오랜 역사가 앞으로도 오래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중국은 내개 연결의 부재보다 과잉 때문에 미궁에 빠진다.
p5

모두가 잠재적 과객이었던 홍콩에서 압도적인 폭력과 자유를 향한 혼란스러운 갈망이 충돌하는 가운데 수많은 젊은이가 죽고 다친 후 홍콩 청년들은 그곳을 떠나 다시 완전한 이방인이 되었다.
p38


#차이나리터러시 #김유익 #한겨레출판사 #하니포터 #하니포터6기 #동양정치사 #중국정치 #한중일 #한한령 #혐한 #혐중 #혐일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1. 좋은 글귀, 마음에 드는 가사 인상 깊은 영화 대사 등을 메모해 주세요.
2. 출처를 넣어주세요. ex) 234page, 4번 트랙<사랑해>, <브리짓존스의 다이어리>에서 브리짓의 대사
1. 좋은 글귀, 마음에 드는 가사 인상 깊은 영화 대사 등을 메모해 주세요.
2. 출처를 넣어주세요. ex) 234page, 4번 트랙<사랑해>, <브리짓존스의 다이어리>에서 브리짓의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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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리터러시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e********4 | 2023.07.06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중국인 아내와 광저우 근교 마을에 살면서 서로 다른 국적, 언어, 문화를 가진 사람과 지역을 연결해 주는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김유익은 중국 현지에서 경험하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과 인문학적 견문을 결합해 경향신문에 정기 연재를 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매체와 SNS에 기고하고 있다.우리도, 중국인들도 개인적인 자기의식이든 집단적인 정체성이든 모두 네트워;
리뷰제목
중국인 아내와 광저우 근교 마을에 살면서 서로 다른 국적, 언어, 문화를 가진 사람과 지역을 연결해 주는 코디네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김유익은 중국 현지에서 경험하고 느끼고 깨달은 것들과 인문학적 견문을 결합해 경향신문에 정기 연재를 하고 있으며 그 외에도 다양한 매체와 SNS에 기고하고 있다.

우리도, 중국인들도 개인적인 자기의식이든 집단적인 정체성이든 모두 네트워크 속에서 주변과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지, 원래부터 본질적으로 반드시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저자의 편견없는 마인드가 시작부터 매력적이었다.

그 중 소분홍의 주장을 다루고 있는 부분이 여러 의미로 인상적이었다. 소분홍은 애니메이션 속 주인공이 팔다리는 길고 얼굴은 갸름하게 눈은 큰 미남 미녀 형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형상뿐 아니라 서사 자체도 항상 긍정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저자는 서구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이들이 실은 서구 중심주의적 미학에 경도되어 있는 것이 아이러니한 일이며, 결론적으로 하급 정부와 지식인, 언론인들이 사회적 여론의 압력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고, 이런 일부 사회적 여론은 암묵적인 중앙 정부의 비호를 받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말에 깊이 공감하는 바이다.

원인은 2021년 중국 정부가 시행한 일련의 정책들이 조성한 거대한 흐름에 거역하기 힘들다는 것들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에 저자의 말처럼 각각의 정책들이 시행된 배경에는 합당한 이유들이 존재하지만, 민간 사회의 자율성을 해치고 활력을 없애 결국 사회 발전이 정체될 것으로 보이는 관점에 대해서 중국은 좀 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저자의 많은 말들 중 가장 와닿았던 건, 이러한 주장들이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설명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되기를 바랄 뿐 우리의 미래에는 영향을 끼치지 않았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나, 우리와 그들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세상을 이해하려는 작은 노력이라는 바램처럼, 이 책이 중국을 마주하는 부분에서 시각 전환이 되길 나 또한 바래본다.

?? 중국의 대중문화 평론가와 애호가들은 결과적으로 K-컬쳐에 대한 애호를 숨기지 못한다. 가장 유사한 문화권의 공감대 안에서 거의 무한한 표현의 자유를 지켜보는 쾌감과 이를 통해 얻어 내는 치유의 감각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 뤄샹이 존경하는 중국 근현대 법학의 태두 선자번은 100년 전에 이렇게 말했다. "법가는 전체 통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아서 민중에게는 언론의 자유가 없다. 반대로 법치의 중요한 명제 중 하나는 권력을 구속함으로써 민중에게 자유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다." 법치를 유난히 사랑하는 한중 양국의 위정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대목이다.

?? 지금 한국도 새롭게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다. (??) 이 과정에서 특정 세력을 배척하고 어떤 세력을 편애하는 도그마에 빠지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다른 별에서 지구로 뚝 떨어진 사람들이 아니라 과거에서 현재까지의 총합으로 이뤄진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서평단 활동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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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이해하기 위한 문해력, 차이나 리터러시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스타블로거 : 블루스타 책* | 2023.07.06 | 추천1 | 댓글0 리뷰제목
올해 들어 중국과의 외교 갈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은 '리터러시'의 부족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랫동안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오랜 역사동안 함께 해 온 나라이기에 더더욱 갈등의 골이 깊지 않나 싶다. 이웃나라일수록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냉각기로 흐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앞으로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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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중국과의 외교 갈등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은 '리터러시'의 부족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오랫동안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오랜 역사동안 함께 해 온 나라이기에 더더욱 갈등의 골이 깊지 않나 싶다. 이웃나라일수록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되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냉각기로 흐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앞으로 서로 간의 관계 재정립을 위해 서로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이 무엇인지, 서로가 잘 알고 있다고 하지만 막상 뚜껑을 펼쳐보면 서로의 이해도가 부족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들이 꼼꼼히 집어 주고 있다. 방대한 분량과 영역을 다루고 있어 자칫 독자들이 읽어나가는 부분에 있어 힘든 부분이 없지 않아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또한 중국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반증이 아닌가 생각해 볼 부분이다.

 

저자는 한국인으로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아내가 중국인) 양 국가를 누구보다도 더 잘 아는 처지에 있는 위치에 있다. 저자가 분석하고 있는 다양한 영역에서의 중국 리터러시를 읽고 이해할 수만 있다면 누군가에 의해 편승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를 마련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중국 리터러시의 출발점으로 이 책을 추천한다. 시간적 여유를 두고 읽어 내려가면 서서히 이해의 폭이 넓어짐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이 가장 민감하게 여기는 부분이 국토, 민족성, 문화, 경제적 패권, 외교 부문인 것 같다. 국토로 따지자보면 우리나라도 예외가 없다. 늘 일본과 갈등의 골을 좁힐 수 없는 영역이 국토다. 독도 관련하여 일본의 거침없는 주장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남녀노소 구분하지 않고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이처럼 중국도 중국인의 눈으로 바라보면 홍콩 문제, 대만 문제, 신장 위구르 문제, 소수 민족 문제등이 결국 국토 분쟁과 맥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가령 예를 들면 이렇다. 우리나라를 보고 북한은 엄연히 다른 국가이며 대한민국이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하면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국 보고 대만은 중국과는 다른 나라이기에 관심을 뚝 끊으라고 하면 중국을 제대로 리터러시 하지 못한 경우가 된다. 중국은 중화민족이라는 단일대오를 갖추기를 원한다. 적은 면적의 국토이지만 대만, 홍콩과 같은 단일대오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국가를 적으로 취급한다. 독도가 우리 땅인 것처럼 중국에게는 대만과 홍콩은 자기네 땅이지 타협할 부분이 아니라는 점이다. 소수 민족의 문제도 맥을 같이 한다. 

 

중국의 문화가 미국의 선진 문화의 문턱을 넘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경제적인 부분은 점점 대등한 위치에 다다랐지만 문화만큼은 질적인 면에서 근접할 수 없다고 많은 분들이 이야기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중국을 제대로 리터러시한다면 그런 시선에서 바라보는 이면의 보이지 않는 부분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문화와 결이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폄하하거나 혐오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중국을 리터러시하는 부분은 차선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당장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와도 같은 것이다.

 

정치인을 비롯한 많은 한국인들이 인접 국가를 이해하기 위한 문해력들을 좀 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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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평 (2건) 한줄평 총점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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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의 진짜를 읽어내는 힘은 결국 승자가 되는 길일 것이다. 진짜 힘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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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 | 2023.07.10
평점3점
워낙 민감하고 어려운 문제다. 혐중의 문제를 논하기에 저자의 한계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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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9 | 2023.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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