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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솔로지

: 호모사피엔스가 지구의 지배종이 될 때까지의 거의 모든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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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6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480쪽 | 688g | 145*218*30mm
ISBN13 9788965965817
ISBN10 8965965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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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쪽의 형제들이 안전한 열대림 위에서 열매들을 먹고 하루의 대부분을 먹은 음식을 소화시키는 데 사용하며 빈둥거리는 동안 운 나쁘게 안락한 숲에서 쫓겨나 사바나 벌판에 내몰린 동아프리카의 유인원들은 비우호적 환경에서 치열한 생존 투쟁을 시작했다. 이들이 사바나에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두 발을 딛고 일어나 걷기 시작한 것이다. 두 발 직립보행을 택한 이들 선행인류는 혹독한 진화의 투쟁을 통해 결과적으로 서쪽의 형제 종을 압도하는 강하고 뛰어난 종이 됐다. 프랑스 고인류학자 이브 코팡은 아프리카 대륙의 동서에서 일어난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이스트사이드 스토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스트사이드 스토리’의 무대인 동아프리카 지구대는 인류 발생의 인큐베이터가 된다. 이곳의 탄자니아 올두바이 계곡, 에티오피아의 아파르 삼각주에서는 700만 년에 걸친 제각기 시대가 다른 수많은 종류의 호미닌과 호모 속의 화석이 파노라마처럼 발견됐다. 이들 중 수만 년 전 동아프리카 지구대를 탈출한 한 줌의 종족이 오늘날 지구를 지배하게 된다. 호모사피엔스가 그들이다.
---「‘1장 구별: 독특한 생물의 탄생’」중에서

신피질은 호모사피엔스의 무기다. 다른 동물이 지닌 강한 이빨이나 날카로운 발톱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무기다. 이 무기가 발휘하는 가장 강력한 힘은 범용성에 숨겨져 있다. 말하자면 무기를 하나 고르라 했을 때 칼이나 화살이 아니라 무기고의 열쇠를 잡은 셈이다. 신이 소원을 빌라 했을 때 신이 되게 해달라는 소원을 빈 것과 같다. 즉, 이 무기는 메타 무기이자 궁극의 무기다. 그런데 우리를 다른 종들과 구별해주는 이 두텁고 정교한 신피질이 오랜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돌연변이로 만들어졌을 가능성의 증거들이 나타났다.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우연히 받은 선물일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2장 각성: 깨어난 정신’」중에서

지금쯤이면 독자들은 생명의 궁극적 목적이 유전자의 보존과 전달임을 충분히 이해했을 것이다. 유전자 보존의 욕망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것을 후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형질도?설사 그것이 개체의 유전자 전달 이후의 삶을 날려버린다 해도?서슴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을 앞서 이야기했다. 이런 ‘이기적 유전자’의 집단 안에 서로를 돕는 이타성이 나타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며 협력이 피어난다는 것이 기적적인 일일 것이다. 그런데 이 기적이 인류에게서 일어났다.
---「‘3장 결속: 성과 양육과 협력’」중에서

충적세의 인류의 머릿속에는 자연과 동식물을 사회적 관계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사고가 생겼다. 세상을 길들이고, 통제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새로운 사고는 유인원 고유의 지배 성향과 합쳐져 상승작용을 한다. 짝짓기 경쟁자들을 대상으로 하던 낮은 수준의 지배욕은 동식물과 사물과 자연을 통제하려는 원대한 지배욕으로 스케일이 커지게 된다. 거주지 한쪽 구석의 텃밭에 야생식물 몇 줌을 골라다가 심고, 울타리 안으로 야생동물의 새끼를 들여오며 만족감을 느끼던 인류는 충적세가 시작되자 본격적으로 땅을 갈아엎고 물길을 내며 환경을 통제하는 일에 몰두한다. 그렇다. 삶의 질은 어떻게 되든 농경은 인간의 꺾어질 줄 모르는 통제욕과 지배욕을 채우기에 최적의 놀이터를 제공했다.
---「‘4장 구축: 새로운 생태계’」중에서

생명의 비밀을 해독할 기술을 확보한 호모사피엔스의 머릿속에는 인간의 전체 유전정보 게놈(Genome)* 지도를 그리고자 하는 야심이 피어난다. 이 일은 상상을 초월하는 방대한 작업이 될 것이다. 30억 개에 육박하는 인간 DNA 염기서열을 생어의 방식으로 분석하는 것은 여의도 면적을 뒤덮은 1cm 크기 퍼즐 조각들을 손으로 일일이 맞추는 작업과 같다. 때마침 인류에게 이런 어려움을 타개할 돌파구가 생겼다. 전산과학의 발전이다. 슈퍼컴퓨터를 활용하면 수작업에 가까운 일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었다. 이제 인간 게놈 지도를 그리는 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돈과 시간의 문제가 됐다.
---「‘5장 해독: 판도라의 상자’」중에서

아직 인류는 생물학적 경계를 넘어서지는 않았지만 거의 그곳에 도달한 듯하다. 인류가 한 세기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이룬 유전자 재조합과 생명공학의 성과, 정보공학과 인지과학의 흐름을 보면 인간은 진화의 마지막 단계가 아니라 시작 단계에 있는 것 같다. 인류의 유전자에서 모든 결함이 없어지고 전 세계 사람들의 지식과 감정과 기억이 통합되는 시대는 과연 올 것인가? 정신이 해방되고 새로운 몸을 입는 날이 올 것인가? 우리는 이것을 진화라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호모사피엔스의 멸종이라 불러야 할 것인가? 호모사피엔스의 멸종은 새로운 인류(Humanity)의 시작이 될 것인가? 수많은 질문들이 지금 우리 앞에 놓여 있다.
---「‘6장 초월: 역설계’」중에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날, 인류는 자기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지 처음으로 깨달았다. 기술의 발전은 다양한 실존적 위험을 만들어냈다. 핵, 물리학적 재앙, 생물학적 실수, 초지능의 출현, 자원 고갈, 기후변화…… 이 모두는 인류를 멸절시키거나 석기시대로 되돌릴 수 있는 위협이다. 인류가 이런 위험을 피하고 다음 세기에도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럴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1,000년 후에도 인류는 계속 존재할 것인가? 아마도 존재하겠지만 더 이상 호모사피엔스로서 존재하지는 않을 수 있다. 1만 년 후에도 인류의 문명은 존재할 것인가? 그것은 답하기 어렵다. 우리는 지구에서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종이지만 그 예측의 시야는 3세대 앞도 안 된다. 우주의 시간에서 인간의 역사는 찰나에 불과하다. 칼 세이건의 유명한 표현에 따르면, 우주의 역사를 1년으로 잡는다면 인류 문명의 역사는 12월 31일, 자정을 앞둔 마지막 10초 동안 번뜩인 불꽃에 불과하다.
---「‘7장 위기: 실존의 위협’」중에서

25억 년 후면 지구는 이미 태양에 묻혀 은하계에서 사라진 상태다. 이 시점에서 호모사피엔스는 우주의 어떤 의식도 그 존재를 기억하지 못하는 잊힌 역사의 한 점으로 흘러가버렸을지 모른다. 아니면 수십억 년에 걸친 디아스포라로 다중행성종이 되어 10만 년 전 모든 대륙에 퍼진 호모 속들이 그랬던 것처럼 서로의 기원을 잊고 광대한 은하계에 분리되어 살거나 서로 다른 종인 양 각축을 벌이며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전 인류의 정신이 작은 방주에 실려 깊은 우주의 심연을 향해 끝 모르는 여행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주의 변두리 은하계 작은 행성에서 우연히 피어난 우리 정신의 작은 불꽃이 바람 앞의 촛불처럼 깜빡이다 조용히 여정을 마쳤을 때 그 비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으리라. “우리는 시간이나 공간으로 우주의 한 점에 불과했지만 그 점 안에 은하를 아우르는 정신을 갖고 있었다.”
---「‘에필로그: 두 갈래의 운명’」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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