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명문관(자습실 이름)의 터줏대감 역할을 하는 친한 친구 오성균과 오늘도 어김없이 밤 12시까지 야자를 하고, 못내 미련이 남아 서로 아쉬워한다.
그러나 아쉽다고 제한시간에 굴복할 우리가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문을 잠그러 오는 경비아저씨를 따돌리고 이곳에서 더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방법을 상의한 끝에, 가장 원초적인 생각을 실천하기로 했다. 그것은 바로 책상아래 몸을 구겨서 넣고, 의자를 최대한 몸 쪽으로 끌어당겨놓는 방법이다. 오, 놀랍게도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중략)...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이제 자습실 공략쯤은 "식은 죽 먹기다."하며 100% 성공률을 자신하던 오늘도 자연스레 경비아저씨의 발소리를 듣고 책상 아래로 몸을 파묻는다.
평소대로 문은 '끼익~!'소리를 내며 열렸다. 그런데 갑자기, '뿌웅~!'하는 요란한 소리가 함께 들리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는 '끼익~ 뿌웅~!'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그렇다. 이곳에는 당연히 아무도 없는 줄 아시고 수축된 괄약근은 편안히 푸신 것이다. 즉, 이는 누가 판단하더라도 분명한 문소리와 방귀소리의 화음이었다. 그 아름다운 소리에 감탄한 나머지 우리 둘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최대한 안면근육을 고정시키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했으나, 이미 그 아래에서 놀란 심장은 손으로 꽉 부여잡아도 철렁일 만큼 상하로 쿵쾅쿵쾅 뛰었다. "히, 히, 히, 히, 히, 히..." 최소한의 소리로 삭히는 웃음이었다. 그런데 성균이와 나는 서로가 웃음을 참느라 안달이 나있음을 직감적으로 느끼게 되고, 그렇게 암묵적인 합의 하에 웃음을 터뜨렸다. "푸 하, 하, 하, 하,하..." 경비아저씨가 도리어 민망해질 만큼 너무도 큰 웃음이 났다. 결과는 당연지사, 우리는 꼬리가 잡혔다.
...(중략)...
그 날 사건 이후, 좀 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일명 경비아저씨의 철통보안시스템의 견제와, 우리의 막강 창의력, 노가다 근성의 결합체가 대결구도로 맞부딪치기 시작한다.
여지껏 승승장구 해오던 우리가, 연이어 패배의 쓴 맛을 보는 사건이 찾아온다. "어디 제대로 숨을 만 한 곳 없나."하면서 능청스럽게 자습실을 쭉 둘러보았다. 자습실의 지리적 구조를 최대한 분석해보니 ...(중략)... 마침 우리가 찾던 최적의 장소를 발견하곤 부리나케 숨기 시작했다. ...(중략)... 그러던 중, 청천벽력과 같은 경비아저씨의 말 한 마디가 뚝 하고 떨어짐과 동시에, 이번 작전도 참패했음을 실감했다.
...(중략)...
또, 특별히 기억나는 사건은 현관 반대편에 있는 창문 밖으로 나가서 문을 닫아놓고 쭈그려 앉아 숨었는데, 경비아저씨가 그걸 눈치 채고 안쪽에서 창문 잠금을 해놓아서 꼼짝없이 감금된 일이다. 엄청나게 추운 한겨울의 날씨에, 정말 얼어 죽을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우리가 아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단 한 번도 들통 나지 않고 요긴하게 숨었던, 정말 기가 막힌 장소를 발견하는 전환점을 맞이한다.
...(중략)...
아무도 전혀 예상 못할 이곳에서, 온 몸에 일어나는 마비를 참아낸 후, 자습실의 불을 활짝 켰다. 승리의 신호이자, 오늘 새벽자습은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음을 의미했다.
--- pp.27~39
- 세분의 선생님 -
이 영문에세이는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 학교 영자신문 창간호에 실었던 내용들이다. 여태껏 훌륭한 선생님들로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지만, 그 분들 중 특히 내게 가장 큰 영감을 주셨던 세 분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었고, 이 에세이를 한글로 옮겨보았다.
먼저 초등학교 6학년 때, 매우 인상 깊은 선생님을 만난 것이 첫 번째 이야기다. 그 선생님께서는 학교생활에 '즐거움'이라는 중요한 요소를 더해주시곤 했다. 그러나 또 다른 한 편으로는, 매우 엄격한 훈육방법을 고수하시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마다, 아주 긴 운동장을 몇 바퀴씩 달리도록 하는 것이 있었다. 이에 관련된 여러 일화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5월 14일 로즈 데이(Rose day)에 있었던 일이다.
그 날 선생님께선 장미꽃을 학교에 들고 온 친구들을 모두 꾸짖으셨다. 학생은 학생으로서의 의무에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셨고, 이성문제로 인해 자칫 안 좋은 길로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염려하셨다. 지적을 받은 친구들은 200m가량 되는 기나긴 운동장 트렉을 50바퀴씩이나 뛰었고, 끝날 무렵 모두들 기진맥진하여 쓰러졌다. 그 당시만 해도 난 정확히 왜 선생님께서 이것을 시키시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우리가 오랜 시간동안 달리면서 정신적으로 반성도 하고, 더불어 육체적으로는 건강해지길 바라셨던 것 같다. 놀랍게도, 그 훈련은 나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었다. 'Sound mind in sound body(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라는 격언이 지금도 마음에 참 와 닿는다.
두 번째로 소개할 선생님은 중학교 시절 여자 수학 선생님인데, 처음엔 굉장한 카리스마로 날 두려움에 떨게 하던 분이셨다. 선생님을 매우 엄격하셨다. 과제를 제출하지 않거나 수업시간에 떠들 경우, 회초리를 들고 그 학생의 자리로 직접 가서 엄하게 꾸짖곤 하셨다. 당시엔 내가 매우 까부는 부류에 속했기 때문에 자주 혼났고, 왜 이렇게 엄격하신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수학 선생님이 참으로 학생들에 대해 사려 깊고, 애정이 깊으심을 차차 깨닫게 되었다. 그 계기는 나를 수업시간에 굉장히 열중하게 만들었고, 제시간에 과제도 척척 해오게 만들었다. 이 선생님의 수업시간 중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쪽지시험이다. 쪽지시험의 난이도는 꽤나 높아서 만점자가 거의 없다. 즉, 그 말은 점수를 잘 맞으면 내가 돋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내 신조가 '굵게'사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런 요소는 나를 저절로 흥분시켰다. 또한 누구나 그렇듯 칭찬을 들으면, '칭찬은 고래도 춤추기 한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고래같이 들뜨고 신나서 더욱 열심히 하게 되었다. 언제나 수학시간 전날과 당일 나의 긴장감이 불에 탈 수밖에 없었고, 쪽지시험을 준비하고 치는 순간만큼은 마치 전장에 나온 병사처럼 치열해야겠다는 생각이 나를 점점 발전시켜주었다. 이 선생님을 뵌 이후로, 수학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자 확실한 주무기로써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이 사례로 깨달은 노하우는, '어떻게 제가 그 과목의 점수를 올릴 수 있을까요?'에 대한 아주 좋은 답변을 제공해줄 것 같다. '담당 과목 선생님을 존중하고, 그 수업에 열중하면 참 좋더라'라고...
마지막으로 이야기 하고자 하는 선생님은 지금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의 영어선생님이시다. 학생들에게 조금이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소통하면서, 올바른 마음가짐을 갖게끔 영감을 주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늘 깊은 감동을 주신다. 'Tiger pose(타이거 포즈;호랑이 자세)를 취해라!'라며 매 수업 시간마다 자세를 직접 보여주시는 모습이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다. 처음에는 이러한 선생님의 수업방식이 새롭게 느껴졌기 때문에 흥미로웠다. 단, 불행히도 그 자세는 종종 책상에서 공부중인 나를 잠에 곯아떨어지게 유혹하기도 했으나(책상에 밀착해서 엎드린 듯한 자세이므로), 결과적으로는 집중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되었다. 또 다른 사례로, 매 영어 시간마다 영어단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한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자신만의 '단어장'을 만들라고 추천해주시곤 하는데, 이것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학생들은 모두들 큰 효과를 누리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의 선생님들과 함께 가졌던 나의 경험을 토대로 봤을 때, 학생들이 주어진 수업에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집중만 잘 하면, 삶을 크게 변화시킬 귀중한 배움을 선생님들로부터 얻을 수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선생님들은 진정으로 우리들의 삶에 귀중한 영감을 주시는 고마운 분들이다.
--- pp.19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