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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우주는 곧 나의 우주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106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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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7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44쪽 | 352g | 140*205*14mm
ISBN13 9788954449090
ISBN10 8954449093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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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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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윈터와 소피아는 물론이고 테리도 이 유적지의 끝까지 가지 못한다. 활을 쏘지도 못하고 정자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오래된 도시를 바라보지도 못한다. 지금, 이 세상에 끝이 들이닥쳤다. 머지않아 세상이 닫히고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할 것이다. 휴대폰에서 ‘전원 끄고 다시 시작’을 누르듯이. 이번 초기화는 테리의 작품이 아니었다. 결단코, 절대로.
“말도 안 돼!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 p.12

“여기가 어디……예요?”
“말씀 드렸다시피 이곳은 다비드호랍니다.”
우리 동네 근처의 바다를 도는 유람선 이름이 다비드호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여기는 유람선이 아니라 우주선이다. 창밖의 저 푸른빛이 푸른 별 지구가 확실하다면. 그리고 한 가지 더, 내가 제정신이라면.
“하지만 전 코스모스 그룹을 찾아온 건데요?”
“코스모스 그룹은 다비드호로 건너오는 통로예요. 다비드호는 여름 양에게 맞춤 정보를 제공하는 안내소고요. 우주의 초기화를 도와주는 곳이지요. 그렇지, 말 나온 김에 이 말씀을 드려야겠군요. ‘코스모스’는 바로 우주란 뜻이랍니다.”
--- p.38

나는 0의 제왕, 세상 돌아가는 꼴이 마음에 안 들거나 기분이 언짢아지면 곱셈 우박을 퍼부어 초기화를 했다. 어떤 수든 0과 곱하면 0이 되듯 초기화는 모든 것을 사라지게 하거나 첫 출발선으로 되돌렸다. 초기화를 거듭하는 나에게 인생이란, 신어 보지도 않고 산 신발 같았다. 뒤꿈치가 빠져나오며 벗겨지려 하는 신발처럼 헐렁헐렁, 나와 겉돌았다.
--- p.76

“내 우주에서 할머니가 왜 난리냐고요!”
그쯤 해 두라니까! 이건 내 우주거든? 테리는 뜨거운 콧김을 내뿜었다. 최대한으로 양보하자면, 최소한 테리의 우주‘이기도’ 했다. 토끼인지 꿀벌인지 이 사기꾼들, 대체 몇 명한테 우주를 팔아먹은 거야! 저 메뚜기 소녀는 기껏해야 중학생쯤 되어 보이고 테리는 예순이 훌쩍 넘었다. 속아도 테리가 먼저 속았고, 주인공이란 간질거리는 자리에 먼저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쪽도 테리다. 그러므로 이 운석은 테리의 것이었다. 테리는 젤리 벽으로 몸을 내던졌다.
--- p.95

테리는 옥수수밭에서 할머니가 해 주었던 이야기를 불현듯 떠올렸다.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도 어찌 보면 우주와 같단다. 누군가를 알게 되어 가까워질 때 둘 사이에 새 우주가 생겨나. 별 두 개뿐인 우주여도 무한히 넓고 큰 시공간이지.’ 설원에서 만난 여름이, 그 아이가 이번에도 태어났을지 테리는 궁금했다. 태어났다면 이 우주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여름이는 이번에도 초기화를 할까? 만약 내가 주인공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 p.151

“난 다른 세상 말고 여기 있을래. 완벽하진 않지만 너랑 겨자도 있고, 지금이 좋아. 그리고 레아 언니가 그랬거든. 문제없는 인생은 없다고.”
레아 언니가 그 말을 설아에게도 했구나. 그래, 누구에게나 우울한 날이 있으니까.
“다이어리 쓰다 보면 망할 때 있잖아. 글씨가 이상하거나 스티커를 잘못 붙였거나. 처음엔 조금만 맘에 안 들어도 다 뜯어 버렸는데 이젠 안 그래. 그냥 놔둬. 나한테 다이어리는 하루하루 완성해 가는 책 같은 거거든. 아쉬운 데가 있다고 뜯어내면 책 내용이 끊기잖아. 인생을 그런 식으로 편집하는 건 아닌 거 같아, 난.”
어딜 가든 지니고 다니는 미니 다이어리에 이토록 심대한 철학이 담겨 있었다니. 나도 다이어리를 써 봐야 하나.
--- p.191

“그렇게 자꾸 다시 시작하다 보면 언젠가는 아무도 아프지 않고 슬프지도 않은 세상이 나오지 않을까, 그런 꿈을 꾸겠지?”
그 말에 오히려 설아가 한 말이 떠올랐다. 완벽하지 않아도 지금이 좋다던, 망친 페이지를 뜯지 않는다던. 겨자가 병을 못 이겨 잘못되었다 해도 그건 설아에게 없애고 싶은 페이지가 아니겠지. 완벽하지 않은 삶의 일부일 거야.
“나도 그런 꿈을 꾼 적이 있어. 하지만 잊지 말라고, 채여름. 결국 모든 것은 지금 여기, 이 순간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걸 말이야.”
--- p.211

“아 참, 나중에 건강하고 평화롭고 행복한 할머니가 되길 바란다고 전해 달래.”
나는 생뚱맞은 시점에 아무런 설명도 없이 테리의 안부 인사를 전했다. 역시나 설아는 어리둥절해한다.
“누가? 레아 언니가?”
“아니. 있어, 그런 사람.”
테리는 젤리 벽을 지나 자신의 우주로 잘 돌아갔겠지? 오래된 도시락 가게와 후계자로 점찍어 둔 윈터가 있는 세상으로.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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