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수줍어서 대중 앞에서 말을 별로 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제는 말이 점점 많아지고 용감해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을 원하면서도 식물식의 가치를 접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방에 늘 식물식 자료를 들고 다니며 길이나 버스에서 만난 사람, 학부모, 아이 담임선생님, 택시 기사님 등 처음 만난 사람에게 식물식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현미식물식 전도사’, ‘현미식물식 안내자’라 칭할 때도 많습니다. 나 하나로 세상이 바뀔 수 있음을, 미친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믿으며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비건식 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시골에서 조용히 살아도 되는 평화로운 세상이 오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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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붉은 달맞이 순, 마른 검불 사이로 뾰족이 솟은 연둣빛 원추리 순, 땅에 방석처럼 퍼진 망초, 향이 좋은 냉이, 초록 잎이 윤기 나는 양지꽃 순 등 밭을 한 바퀴 도니 봄나물을 한 소쿠리나 장만했습니다. 이른 봄에 봄나물로 귀하게 먹었던 풀들은 밭에 뿌린 씨앗이 자라기 시작할 즈음이 되면 억세져서 먹기 힘들어집니다. 풀들을 베어서 텃밭 곳곳에 놓아두면 다른 채소의 생장을 도와주는 거름이 됩니다. 자연에서는 풀 한 포기라도 아주 쓸모없는 것, 필요 없는 것은 없습니다. 『잡초는 없다!』라는 책 제목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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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먹은 밥이 똥이 되고 내가 눈 똥이 밥이 되게 하려면, ‘뒷간’에서 똥을 누고 그 똥을 논과 밭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수세식 화장실에서 똥은 거름이 되기보다는 수질오염, 환경오염의 원인이 됩니다. 거기다 수세식 화장실은 물도 많이 소비합니다. 무엇보다도 똥은 더러운 것으로 여겨집니다. 내가 좋은 것을 잘 먹었다면 내 몸에서 나온 똥도 나쁘고 더럽지 않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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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래기를 건지고 군고구마를 구워내고도 가마솥은 아직 따뜻합니다. 그 속에는 시래기 삶은 물이 있습니다. 그 물을 퍼서 구수한 시래기 냄새를 맡으며 머리를 감았습니다. 비누나 세제를 쓰지 않고요. 마지막에는 맹물에 헹구었습니다. 비누와 세제가 드물었고 물을 아껴 쓰던 옛날에는 채소 삶은 물에 목욕도 하고 머리도 감았답니다. 설거지물 쓰는 건 기본이었고요. 가마솥에 삶은 무청 시래기는 찬물에 우려낸 뒤 건졌습니다. 된장에 버무린 무청 시래기를 다시마와 무로 우린 국물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곡식과 씨앗을 넣어 만든 두유 국물을 부어 찌개를 끓였습니다. -
--- p.127
청소노동자들이 힘들게 생활하는 현실은, 누군가 더 맛있게 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는 현실과 별다르지 않습니다. 더 편하게 살고자 누군가가 이기심을 부린 결과입니다. 나도 좋고 너도 좋은, 내가 살기 위해 네가 희생되지 않아도 되는 진정한 생명살림으로, 평화롭고 살기 좋은 참세상이 자연스레 찾아오기를 염원합니다.
--- p.146
그러고 보니 저도 명절에 제사 보이콧을 한 여성 중 한 명입니다. 식물식을 지키면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고기, 생선, 달걀, 우유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알고 나니 일체의 동물성 식품을 더는 먹을 수도, 만질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명절 차례상과 제사상을 준비할 때 동물성 식품을 만지지 않겠노라고 선언했습니다. 그 결과 시댁에 가 산더미 같은 음식을 장만해야 하는 의무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결국 며느리가 당연히 준비해야 했던 명절 차례와 산소 성묘도 점점 간소화되더니, 이제는 원하는 사람이 음식을 준비하고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칼날처럼 매서운 눈총을 받기도 했지요. 이제는 명절 때 시댁에 가더라도 명절 음식을 준비하는 대신 시댁 근처에 가보고 싶었던 곳을 찾거나, 보고 싶었던 지인을 만나고 옵니다.
--- p.160
북극곰이 살고, 소가 살고, 사람이 살 수 있는 길은 하나로 연결됩니다. 동물식을 멈추고 완전 식물식 또는 식물식 위주의 식생활로 전환하는 길이 우리 모두가 살길입니다. 인간은 동물을 마음대로 먹고자 공장식 축산을 발명했습니다. 이는 생태계 파괴, 지구온난화 가속, 토양 오염, 수질 오염, 인수공통전염병 유행, 시민건강 위협, 식량난 급증, 에너지 낭비 등을 초래했습니다. 고기를 안 먹겠다는 태도는 동물을 위하는 듯해 보여도 결국은 나를 위한 길입니다.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는 길이 곧 나를 위하는 길입니다. 진리는 하나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 p.181
가슴이 먹먹해져 수업이 끝날 때까지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수업 참관 평가서에 ‘동물성 가공식품의 예시는 교육적으로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내용적으로 조금 더 평화로운 접근을 고민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적은 뒤, 조용히 교실을 나왔습니다. 왔던 길을 되돌아 좁은 인도를 걷고 논두렁, 밭두렁 길을 걸었습니다. 집으로 오는데 눈물이 나오려고 했습니다. 울음을 삼키며 걷는 길옆에는 축사가 보였습니다.
--- p.215
사람 사이에서도 한때는 피부색이 다르다고, 성별이 다르다고, 민족이 다르다고, 이념이 다르다고 차별하거나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름을 인정하며 공존해야 한다는 게 상식입니다. 사람 이외의 동물을 공존의 벗으로 대할 때 세상은 더 평화로워지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평화를 위해 애썼던 수많은 성인과 평화주의자는 식물식을 선택했으며, 그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평화는 밥상에서부터 비롯될 수 있습니다. 음식을 바꿈으로써 세상을 더 평화롭게 바꿀 수 있습니다.
--- p.231
인간사회에서 갈수록 심각해지는 성 착취가 종식되기를 바란다면, 인간이 비인간동물을 대하는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먹을 것이 많은데도 동물성 식품을 먹으려는 탐욕으로 다른 동물을 성폭력 하는 일에 동참한다면, 인간사회의 성 착취 사건도 없애기 어렵습니다. 인간이 서로 사랑하며 평화롭게 살기를 원한다면 지구에 존재하는 다양한 생물이 더불어서 조화롭게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인간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비인간동물을 생각해야 합니다. 고래와 코알라, 북극곰을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 내는 사람이 많아지듯이, 소와 돼지, 닭도 음식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바라볼 수 있을 때 인간사회의 성문화는 더 성숙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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