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0년대 파리 생 셰브랑 가의 인쇄소에서 견습공으로 일하던 니콜라 콩타는 당시 인쇄공들에게 가장 즐거운 추억인 사건 하나를 기록했다. 신인 소설가의 소설집에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듯한 감각적인 제목, '고양이 대학살'은 이 사건에서 나왔다. 콩타가 기록한 사건이란 제목 그대로 콩타와 그 동료들이 동네 고양이들을, 특히 주인의 고양이를, 모의 재판 후 판결에 따라 곤봉으로 학살한 것이다.
이 사건을 그대로 현대에 가져오면 그 괴상함은 쉽게 드러난다. 서울, 특히 을지로에 밀집해 있는 인쇄소의 직원들이 대한극장 앞이나 청계 고가도로 아래쯤에 모여 동네 도둑 고양이에게 곤봉을 휘둘러 반쯤 죽여서 자루에 처넣거나 인쇄소 사장의 애완 고양이의 등뼈를 부러뜨려 홈통에 처넣었다면, 별의별 사건을 다 취재한 사회부 기자라고 해도 자기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주인과 그 아내가 고양이 시체를 보고 기절할 만큼 놀라는 것에 이보다 더 재미있을 수 없다는 듯 배를 움켜쥐고 웃기까지 했던 것이다.
저자, 로버트 단턴은 서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구체제(앙시엥 레짐)로부터의 편지(18세기 프랑스인들의 기록들)를 읽으면서 놀라움에 마주치지 않기는 어려운 일이다." 고양이 대학살이라는 사건에 대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감정 역시 이 놀라움일 것이다. 구체제로부터의 편지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빨간 망토 이야기'이다. 당시 프랑스 농민들 사이에 퍼져 있던 빨간 망토 이야기는 그림 형제와 페로 등 후세 동화 작가들의 윤색을 거쳐 오늘날에도 많은 어린이 전집에 끼어있는 '동화'다. 여러 동화집의 빨간 망토 이야기도 교훈이나 의미를 알아보기 힘들지만, 윤색 이전의 빨간 망토 이야기에서도 우리는 놀라움을 만난다.
일단 소녀는 빨간 망토도 모자도 쓰지 않는다. 소녀보다 먼저 할머니 집에 도착한 늑대는 할머니를 죽여서 피는 병에 담고 살은 접시에 놓는다. 늑대는 소녀의 옷을 차근차근 벗기고 침대로 끌어들인다. 그리고는 소녀를 먹어치운다. 도와주는 사냥꾼도 없으며, 할머니와 소녀는 늑대 뱃속에서 살아나지도 않는다. 도대체 당시 프랑스 농민들은 무엇 때문에 이런 얘기를 몇 번이고, 몇 사람이고 되풀이하며 웃고 떠들었을까?
물론 이 기묘한 얘기에 대한 관심은 로버트 단턴이 처음이 아니며, 특이한 것도 아니다. 무수한 유럽 동화들은 유형별로 분류되어 있었으며, 에리히 프롬을 비롯한 심리학자들은 이 얘기에서 사춘기의 성적 호기심과 사회적, 심리적 억압을 찾아내었다. 또, 근래에 출간된
『신화, 인류 최고의 철학』과 같은 논문이나
'인랑'과 같은 저패니메이션에서도 이 이야기에 대한 관심을 찾을 수 있다. 로버트 단턴이 이들과 구별되는 것은 접근 방법이다.
그는 18세기 프랑스 민속의 이야기들을 판본 대조를 통해 유형화하고 '원본'에 최대한 접근한다. 결국 이 텍스트가 제 발로 걸어 나와 빨간 망토 이야기와 고양이 학살에 대한 우리의 의문에 대답하도록 했다. 레비 스트로스가 인류학을 통해 카두베오족 거주지로 우리를 안내했다면, 로버트 단턴은 똑같은 방법으로 우리를 18세기 프랑스로 데려가는 것이다. 그 속에서 우리는 볼테르를 '대단히 나쁜 용의자'로 분류한 경찰감독관의 메모를 읽어볼 수도 있고, 루소를 흠모하는 중년 남자를 만날 수도 있다.
『사생활의 역사』제3권이 18세기 유럽인들에 대한 내셔널 지오그라피 스타일의 장편 다큐멘터리라면, 이 책은 인생극장 풍의 밀착 르뽀르타쥬에 해당한다.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에 한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2000년대 한국의 허무 개그나 '아햏햏'처럼 괴상한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정신분석학이나, 인류학적 방법들 - 그때엔 이미 현대보다 훨씬 발전했을 것이 분명한 - 을 사용하여 학술발표회장이나 대학에서 진지하게 연구하고 토론하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난다. 역사학계의 논쟁을 불러온, 진지하며 엄밀하기 그지 없는 이 역사서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그들의 세계관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의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고양이 학살과 빨간 망토 이야기의 배경과 의미는 무엇이냐고? 예고편이나 소개 프로그램에서 영화의 결말은 보여주지 않는 건 영화 팬에 대한 예의다. 마찬가지로 『고양이 대학살』의 예의 바른 소개글은 '직접 읽어보시오'라는 권고로 끝내야 한다. 1984년에 출간되어 20년이 되기도 전에 새로운 고전으로 평가받는, 더할 나위 없이 논쟁적이며 흥미로운 역사서가 당신의 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