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3년 08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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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48쪽 | 720g | 142*210*35mm |
ISBN13 | 9791168341289 |
ISBN10 | 1168341280 |
포함 국내도서 2만원 이상 구매 시, 무드등 증정 (포인트 차감)
발행일 | 2023년 08월 3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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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548쪽 | 720g | 142*210*35mm |
ISBN13 | 9791168341289 |
ISBN10 | 1168341280 |
MD 한마디
[심사위원 만장일치 2022년 부커상 수상작] 1990년 스리랑카를 배경으로 25년간 이어진 내전의 아픔을 유령들의 입을 빌려 말하는 ‘저승 누아르‘. 갑자기 살해당한 사진기자 말리가 유령으로 지내며 자신의 죽음의 행방을 쫓는다. 스리랑카의 쓰라린 현대사부터 인간의 보편적 삶과 죽음을 솜씨 좋게 다뤄냈다. 2022년 부커상 수상작. - 소설/시 PD 김유리
제목과 소개글을 읽고 여름에 읽기 좋은 판타지 소설인가 했다. 기회가 닿는 대로 역사서를 읽는다고 해도, 모르는 아픔이 더 많다. 1990년대 스리랑카 내전에 대해서는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게 없었다.
한국사회의 상처 깊은,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아픈 역사를 소설의 형식으로 작가들이 되살리고 되새기고 위로를 건네듯, 이 책 역시 죽어도 잠들 수 없고 죽을 수도 없는 사연을 소설의 형식으로 기록해 둔 글이다.
“네가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은 영원히 그것이 전부다. 그러니 다시 잠드는 것이 차라리 낫다.”
등장인물을 먼저 만나고 이름을 대략 외우고 읽기 시작하는 방식이 낯선 역사와 사회로 들어가는데 도움이 되었다. 주요인물은 물론, 다른 인물들도 모두 기록하며, 하나의 달이 지는 동안 어렵지 않은 이름들에 점점 익숙해졌다.
작품 속 저승의 달도 28일 주기인가 했는데, 아니다. 하루에 하나씩 진다. 더 짧아진 저승에서의 시간이 왠지 더 서글프다. 살아서 못 다한 말들과 일들이 죽기 전까지의 삶의 무게만큼 무거울 텐데.
귀, 죽음, 죄책감, 달. 어째서 귀일까. 스리랑카에서 ‘듣는다’는 건 다른 감각보다 좀 더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 주인공 말리가 ‘빛’으로 갈 수 없는 어쩌면 (첫번째) 이유는 귀에 기록된 삶 때문일까.
“귀에는 지문처럼 개인의 고유한 무늬가 있어요, 접힌 부분은 과거의 트라우마를 보여주고, 볼 부분은 과거에 지은 죄를 드러내며, 연골은 죄책감을 숨깁니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이 ‘빛’으로 들어가는 것을 방해합니다.”
하루 동안 만난 인물들의 면면이 생생하고 다양해서, 전쟁이 얼마나 무작위로 아무나 죽이고 마는지 참담하다. 이런 최악의 짓을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럴 때면 문명이, 성취가, 철학이, 노력이 역겹게 빛을 바래간다.
“인간이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악이 아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힘을 지닌 존재.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치를 떨어야 하는 존재다.”
“세상의 광기를 달리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일곱 개의 달이 지고도 죽은 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천 번의 달 동안 방황하는 이도, 여전히 떠돌아다니는 피해자들도 많다고 한다. 죽고 나서도 존재의 형태는 달라진다. 생각과 의지가 원한과 억울함이 남긴 힘 같다.
“빛으로 들어간 사람도 있어. 악마가 된 사람도 있어. 빛은 망각하게 해. 우리는 절대 망각해서는 안 돼.”
눈을 뜰 때마다 꿈이어야 하는 현실이 눈앞에 펼쳐지면, 차라리 눈을 감고 싶다. 그러다 악몽 같은 현실을 최대한 피해본다. 그러다보면 잊고도 산다. 문득 생각나면 답답하고 갑갑하고 호흡이 무거우니 다시 잊고도 싶다.
“빛이 망각하도록 도와준다면, 그게 나쁜 걸까요?”
달의 모양과 색감이 모두 같지 않은 일곱 개의 달이 지는 밤이 펼쳐질 것이다. 하룻밤도 현실의 비극을 짐작해보는데 아주 부족하진 않았다. 작가의 모국어를 모름에도 만날 수 있어 번역이 감사한, 아프고 귀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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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하나의 달, 단 하룻밤을
땀이 배어나는 기분으로 읽었다.
여섯 개의 달, 여섯 밤이 남아 있다.
두근거리기도 하고 두렵기도 하다.
전쟁과 폭력
내전이건 외침이건
부상과 죽음과 상실과 망가짐이
뭐가 다를까.
종교에도 법에도
살인하지 말라고 하는데
살인을 멈춘 적이 없는 인류
사필귀정도 신의 상벌도 다 있었으면.
크고 푸른 달이 점점 가려지는 매일
하나의 달을 읽어나가야겠다.
6일 후 도착지가 참상의 격전지가 아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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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하나의 달 분량을 읽으며 일독을 마쳤다. 다른 탐정 추리 소설처럼 즐길 수는 없었다. 어째서 스리랑카 현대사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이토록 없었는지. 첫 방문한 낯선 곳의 역사를 더듬으며 배워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낯설어서 매혹적이고, 낯설지만은 않은 역사에 슬픔이 덜컹거렸다. ‘억울함’과 ‘한’은 한국의 전유물이 아니고, 내전과 죽음은 현재도 끝나지 않았다. 한국이 분단으로 얼어붙었다면, 스리랑카는 분단 없이 들끓었다. 무려 440년 동안.
세계사와 한국가의 현대사와 복잡한 공학을 모두 이해할 지식도 철학도 부족함에도, 워낙 전개가 매끄럽고 번역이 편안해서 어렵지 않게 읽었다. 혼란스럽지 않게 하나의 매시지로 점차 수렴하는 과정이 두려우면서도 아름다웠다.
살아남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은 대개 비슷하다. 분노와 아픔을 느끼는 공동의 경험 - 역사 - 를 잊지 않고,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생존자들을 위로하고, 재발을 막기 위해, 다른 미래를 위해 애쓰는 것.
인물들이 모두 생생하게 현실적이고, 상상 이상의 다양한 모습들이라서, 글로 쓰인 다큐멘터리를 읽는 듯도 했다. 말리라는 캐릭터 덕분에 거대한 비극을 개인의 이야기로 밀착하여 읽는 일이 어색하지 않았다.
심장이 아플 만큼 놀라기도 했고, 섬뜩함에 소름이 끼치는 장면들도 있었지만, 교묘하게 현대 사회의 갖가지 합법적 장치들로 사람을 괴롭히고 사회적 타살로 몰아가는 바로 지금의 풍경을 생각하면 그저 소설적 장치구나 싶었다.
이상한 일이다. 친절, 사랑, 성실, 책임, 아름다움이 사라진 적이 없는 세상과 거침없이 죽이고 빼앗는 세상의 이런 격렬한 공존. ‘인간’이란 ‘인간성’이란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오랜 질문을 또 묻게 된다.
스리랑카 작가(셰한 카루나틸라카)의 소설을 읽는 건 처음인데, 한국어판 서문에서부터 충격받았다. "1950년대에 나의 할아버지 세대는 판자촌과 빈민가를 '코리야와스(Koreyawas)'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전쟁 직후의 한국은 콧대 높던 실론(스리랑카의 전 이름) 사람들에게 빈곤의 상징이었던 겁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러분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습니다. 스리랑카가 30년간 계속될 전쟁에 휘말려 있던 1988년, 나의 아버지는 대한민국이 올림픽을 개최하는 모습을 보았지요. '코리야와스'라는 경멸적인 표현이 더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되는 것도." (9-10쪽)
'코리야와스'라는 단어가 있었을 정도로 과거의 스리랑카 사람들이 한국을 가난한 나라로 여겼다는 것도 충격이지만, 이후 한국은 빠른 속도로 경제 성장과 문화 발전을 이루어 선진국의 반열에 오른 반면 스리랑카는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빈국이며 팬데믹 이후 경제 붕괴 직전이라는 것이 훨씬 더 놀랍다. 같은 글에서 작가는 한국이 교육과 기술, 노력에 대한 투자를 하는 동안 스리랑카는 분열과 전쟁을 거듭한 것이 현재의 차이를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분석은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2022년 부커상을 수상한 장편소설 <말리의 일곱 개의 달>에도 명확하게 반영되어 있다.
1990년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 사진작가 말리 알메이다(말린다 알메이다 카발라나)가 살해된다. 언제 어디서 누가 왜 어떻게 자신을 살해했는지 아무런 기억이 없는 채로 눈을 뜬 말리는 자신이 저승 카운터 앞에 와 있다는 걸 깨닫는다. 다른 망자들과 함께 안내원에게 설명을 듣는 알리는 '일곱 번의 달이 뜨고 지기 전' 즉 7일이 지나기 전에 지난 생을 정리하고 '빛'으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단, 자신의 몸이 있었던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고, 자신의 이름이 불리는 장소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과연 말리는 죽기 전에 어디서 무엇을 했을까. 누가 죽은 말리의 이름을 불러줄까.
이렇게 시작된 소설은 말리를 살해한 범인을 찾는 스릴러 소설처럼 진행되는 동시에 파란만장한 스리랑카의 현대사를 보여준다. 말리는 생전에 정부군과 반군, 외신 등의 의뢰를 받아 각종 사건 현장을 찍는 사진작가였다. 정파나 종교에 구애받지 않고 의뢰가 들어오는 대로 사진을 찍었다. 그중 어떤 사진이 문제가 되어 결국 목숨을 잃은 것으로 보인다. 문제의 사진은 26년간 7만 명 이상이 사망한 아시아 사상 최장기 내전으로 기록된 스리랑카 내전과 관련이 있다. 내전의 신호탄이 된 1983년 폭동 현장을 찍은 사진작가가 말리였던 것이다.
역자 후기에 따르면 주인공 말리 알메이다의 모델이 된 이는 스리랑카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 배우, 인권운동가였던 리처드 드 소이사다. 스리랑카 내전의 원인은 다수이며 불교를 믿는 싱할라족이 소수이며 힌두교를 믿는 타밀족을 차별, 박해한 것이다. 싱할라인 아버지와 타밀인 어머니를 둔 소이사는 무장 괴한에 의해 납치, 살해되었는데, 나중에 소이사의 어머니가 납치범 두 명이 경찰의 고위 간부라고 주장했으나 사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소설 초반에 남자 두 명이 호수에 시체를 유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마도 이는 소이사가 실제로 어떻게 죽었는지를 묘사한 것 같다)
<말리의 일곱 개의 달>는 스리랑카의 실제 역사에 기반한 소설이지만, 판타지를 가미해 몽환적이면서도 코믹하고 드라마 또한 풍부하다. 말리는 전쟁 사진작가인 동시에 못 말리는 도박꾼이자, '여사친'과 커플인 척 하면서 같이 살고 있지만 사실은 남자를 좋아하는 게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완벽하지 않아도 나름 즐겁게 살고 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더 깊은 공감과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