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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보다 SEX (섹스)

자살보다 SEX (섹스)

: 무라카미 류의 연애와 여성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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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사랑 에세이 top100 5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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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4년 02월 28일
쪽수, 무게, 크기 288쪽 | 370g | 140*210*20mm
ISBN13 9788954430067
ISBN10 895443006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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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말했던 거 기억하고 있어?
내가 리카에게 말했던 것과 똑같은 대사를 영화의 주인공이 자기 정부에게 했던 것 말이야. 〈딜린저〉라는 영화야. 워런 오츠가 딜린저이고, 그의 정부로 나오는 여자 배우는 이름이 확실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도 마마스 앤드 파파스의 멤버였을 거야. 딜린저가 탈옥과 은행 강도를 반복하면서 거물 갱이 되어가는 내용의 영화야. 아주 근사한 장면이 펼쳐지면서 그 대사가 나오는 거야.
두 사람은 함께 보트를 타고 있어. 물결이 퍼져나가고 줄지어 선 나무 그림자가 아름다운 호수에서. 보트는 물결에 따라 천천히 흔들리고 딜린저는 이렇게 말하지.
“두고 봐. 온 세상의 은행 금고를 모조리 털어버릴 테야. 그럼 나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겠지. 어때, 그럼 당신은 그 돈으로 뭘 하고 싶어? 뭐든지 다 해주겠어.”
기억하고 있어? 나도 비슷한 말을 했었지. 독립해서 싱가포르에 사무실을 열고 공사채 투자로 큰 돈벌이를 해보겠다고. 돈을 많이 벌게 될 텐데, 그럼 당신은 뭘 하고 싶어, 라고.
딜린저의 창녀 애인처럼 리카도 허풍 치는 나를 따스하게 바라보면서 똑같은 말을 했지.
“그래요, 다시 당신과 춤추고 싶어요.”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오늘은 이만 쓸게. / (본문 14~15쪽)

얼마 전, 긴자의 바에서 모 여배우와 만났다. 이미 나이가 30대 후반인데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빼어나게 예뻤다. 그 여배우에게 남녀가 눈이 맞아 도망치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추락하고 싶어, 라고 그 여배우는 말했다.
전부 버리는 거예요. 일도, 부모도, 친척도, 아는 사람도, 집도, 명예도 죄다 내던지는 거예요. 그리고 남자만, 그 남자만 갖는 거예요. 둘이서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가는 거죠.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 맥도널드, 마루이 백화점 같은 것들이 전혀 없는 외진 곳으로 말이죠. 물론 함께 죽자는 얘긴 아니에요. 둘이서 최소한의 생활을 하는 거예요. 아무에게 거짓말할 필요도 없고, 누구한테 축복 같은 거 받지 않아도 되잖아요? 모두 포기하고 아무 일도 안 하면서 단둘이서만 살아가는 거예요.
나도 잘 안다. 나도 그런 세계를 동경한다. 그렇게 결심하게 행동에 옮기고 살아갔던 두 사람은 절대 지옥에 떨어지지 않는다. 두 사람이 벌을 받을 거라는 이야기는 제도 쪽에서 내세우는 교훈이다. 철저하게 제도와 맞서 싸우다가 죽은 사람은 반드시 천국에서도 맞이해줄 것이다. / (본문 35쪽)

최근에 읽은 일본 소설 가운데 여러 의미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우치다 슌기쿠의 『파자팍카』(1993)라는 작품이야.
처음에 읽었을 땐 복잡한 혐오감이 일었는데, 그건 소재 탓이 아니었어. 아동 학대, 그중에서도 성적 학대는 현재 일본에서는 ‘특별’할 것도 없지. 특별하진 않다 해도 여성에게 이것만큼 심각한 주제도 없을 테지.
우치다 슌기쿠는 마치 일기나 작문처럼 담담하게 가끔은 유머도 섞어가면서 처참한 ‘자전’을 써나갔어. 그게 아주 치졸해 보여서 자신의 트라우마에 제대로 직면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어.
미숙한 문장이 ‘자전’이라는 의상을 입고 무방비하게 상처를 드러내고 있는 듯해서 좋지 않은 뒷맛이 남았지. 소설이라는 장르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썼다는 뜻이 아니라, 작가가 자기 자신을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어.
우치다 슌기쿠는 어쩌면 자신에게 애정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아닐까, 라고도 생각했어.
작가 자신이 가져야 할 애정은 당연히 맹목적인 자기애가 아니라 등장인물들에게 어떤 에너지를 쏟는 일이야. 그러나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작가의 자기혐오만 맛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pp.138~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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