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 당연하기에 의심하지 못할뿐더러 있는지조차도 잊고 사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몸입니다. 생명체라면, 그리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으니까 특별히 생각해보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죠. 늘 함께하는 몸에 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정신을 가다듬고 몸을 이야기하려는 순간 끝없는 호기심과 이야기가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 p.5, 「프롤로그|몸의 모든 순간」 중에서
인간의 얼굴은 단순히 오감을 잘 감각하고 위협적인 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만 진화한 것이 아닙니다. 인간은 ‘생존’을 뛰어넘어 ‘삶’을 살아가는 존재이며, 인간의 얼굴은 삶이 더욱 풍성해질 수 있도록 진화를 거듭한 결과물이죠. 인간은 얼굴을 통해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이란 것을 합니다.
--- p.22, 「1장|우연이 만든 위대한 진화」 중에서
외모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8등신 비율을 추앙하지만 애초에 8등신은 우리 인간에게서 거의 나타나지 않는 비율입니다. 오직 신만이 가질 수 있었던 비율이고, 행여 8등신의 몸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건 아주 우연한 확률로 태어난 돌연변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99.9퍼센트 이상의 인간은 모두 8등신이 아니니까요. 그러니 자신이 8등신이 아니라고 해도 낙담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7등신 안팎의 비율을 갖고 태어난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연한 일입니다.
--- p.51, 「2장|아름다움을 향한 순수한 욕망」 중에서
그러나 사도세자를 강한 왕으로 키우고자 했던 영조의 강박은 양육이 아닌 혹독한 훈련과 강압적인 교육으로 변질되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당한 고통을 자식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노력했던 영조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당한 고통 그 이상의 것을 자식에게 행사해버렸습니다. 심리학에서는 부모가 자신이 어렸을 때 당했던 고통을 자식에게 그대로 행사하려고 할 때 나타나는 폭력적 심리 기제를 ‘파괴적 권리’라고 부릅니다. 영조는 자신과 후궁 사이에서 태어난 사도세자 역시 적장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신하에게 핍박받을 상황을 염려했습니다. 그런데 그 선한 걱정이 폭력이 되고 말았죠.
--- p.83, 「3장|몸을 파괴할 권리」 중에서
고통받는 타인의 몸 이미지는 종종 자신이 지닌 고통의 크기와 비교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됩니다. 미디어와 인터넷이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는 빈곤한 국가에서 기아에 시달리는 ‘말라버린 몸’이나 끔찍한 전쟁을 겪으면서 ‘파괴된 몸’ 등의 이미지가 무차별적으로 실시간 공유됩니다. 이러한 이미지는 기아와 전쟁 같은 극한의 고통이 없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안심과 위안을 느끼도록 만드는 장치로 소비됩니다. 상대적 고통을 덜고 상대적 위안을 얻기 위해, ‘고통받는 몸의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소비하는 것이 바로 현대 사회가 지닌 상대적 고통의 역설입니다.
--- p.103, 「4장|우리를 둘러싼 고통」 중에서
이처럼 흑인의 검은 몸은 혐오의 대상이었습니다. 동시에 백인에게 흑인은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백인을 대신해 고된 육체노동을 하는 흑인 노예의 몸은 자연스레 백인보다 훨씬 강인해졌습니다. 백인은 강해진 흑인이 언제든지 손과 발을 구속하고 있는 사슬을 끊어버리고 자신들을 죽일 수도 있다는 공포를 지니고 있던 겁니다. 때로 그 공포는 현실이 되기도 했죠. 바로 ‘마룬스’의 탈출과 ‘생도맹그 혁명’입니다.
--- p.126, 「5장|우월하다는 오만」 중에서
타란티노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의 결말에서 나치 독일의 허황된 아리아니즘이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통쾌하게 폭로합니다. 그토록 우월한 아리아인이 자신들의 이념을 자화자찬하는 영화를 보다가 몰살당하고, 영화 속 실제 전쟁 영웅이 유대인 여자를 사랑하다 죽는 모습, 란다가 쉽게 나치 독일과 아리아인을 배신하는 모습 등 다양한 관점에서 벌어지는 아리아니즘의 몰락을 보여줍니다.
--- p.158, 「6장|지울 수 없는 낙인」 중에서
인간이 아닌 동물에게 에로티즘은 불가능합니다. 오직 죽음의 파멸을 인지하고 심리적 쾌감을 위한 성행위를 추구하는 우리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차원적 경험이 바로 에로티즘입니다. 인간의 성행위는 결코 성적 욕망에만 사로잡힌 단순한 쾌감이 아닌, 고차원적 수준의 욕망이 획득하는 쾌감이라는 사실을 바타유는 에로티즘으로 이야기한 것이죠.
--- p.174, 「7장|강렬한 쾌락의 탐닉」 중에서
세포 중에서도 특히 몸의 내부와 외부에 존재하는 위험 인자에 대해 경계 능력이 뛰어나고 전투를 잘하는 세포가 있습니다. 바로 ‘대식세포’인데 우리 몸이 지닌 선천적인 면역세포입니다. 대식세포는 사멸한 세포나 이물질, 미생물, 암세포, 이상 단백질 등을 집어삼키는 역할을 합니다. 몸에 해가 되는 성분을 먹어 치우는 대식세포 덕분에 우리는 면역력을 유지할 수 있죠.
--- p.206, 「8장|질병과 노화의 숙명」 중에서
작품은 백신 접근성이 높고 용이한 사람이 일부 존재한다는 사실도 놓치지 않습니다. 정부 고위 관료나 백신 개발자, 백신 유통자 등은 제비뽑기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일반 국민과 달리 암암리에 서로 백신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컨테이젼》은 자신이 암암리에 구한 백신을 지인에게 나눠주는 질병예방센터장 치버와 자신에게 공급된 백신을 들고 우선순위에서 한참 밀려난 개발도상국을 향해 달려가는 오란테스의 모습을 대비해 보여줍니다.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또는 무엇이 이해할 만한 선택인지를 관객에게 질문하죠.
--- p.251, 「9장|치명적 바이러스의 창궐」 중에서
최소한의 물리적 공간에 몸을 고립시키거나 스마트 기기에 지나치게 정신을 몰입하는 환경에 몸을 방치함으로써 전체적인 건강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세계는 손끝에서 시작되고 무한히 펼쳐지지만, 실제 세계에서는 이전보다 훨씬 더 유약한 몸 상태를 갖게 된 것이죠. 즉, 디지털 세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할수록 그에 비례해 손을 제외한 현실의 몸은 둔하고 유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디지털 세계를 매우 활발하게 활보하지만 현실의 움직임은 최소화되는 몸의 괴리가 발생한 겁니다.
--- p.261, 「10장|편리함에 배신당한 건강」 중에서
꽃의 전쟁은 1450년대에 시작되어 50여 년 동안 지속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 기간 동안 꽃의 전쟁이 일어날 때마다 적게는 수백 명에서 많게는 8만 명 가까이 되는 인간의 몸이 신에게 바쳐졌습니다. 인신공양의 방식은 펄펄 끓는 불화로 속에 던져버리거나 흑요석으로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내고 피부를 벗겨서 바치는 등 상당히 잔인한 방식을 취했습니다. 꽃의 전쟁이라는 이름과는 달리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끔찍한 인신공양 전쟁이 아즈텍 제국에서 행해졌던 겁니다.
--- p.284, 「11장|무엇을 위해 몸을 바치는가」 중에서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수준의 물질에 따른 몸의 분열을 소재로 아주 흥미로운 소설을 쓴 작가가 있습니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라는 불후의 명작을 쓴 로버트 스티븐슨은 이 작품에서 약물로 선한 자아와 악한 자아를 분열시키는 것을 소재로 삼았죠. 그는 심지어 약물로 선한 자아와 악한 자아의 외모까지 변화할 정도로 몸이 완전히 분열하는 모습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 p.304, 「12장|몸의 주인은 누구인가」 중에서
지구 생명체의 오랜 역사 속에서 새로운 종과 마주하는 순간은 언제나 불안이나 갈등 국면을 불러오기 마련이었습니다. 더구나 호모 사피엔스 종 내의 분화와 분열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새로운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매우 농후합니다. 우리가 미래의 인간을 상상하며 이름 붙인 ‘사이보그’cyborg ‘트랜스휴먼’transhuman ‘포스트휴먼’posthuman 등과 같은 새로운 인간형이나 기존 인간과는 다른 몸의 구성을 지닌 존재는 순정한 몸을 가진 인간과 갈등하고 대립하게 될 것입니다.
--- p.324, 「13장|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중에서
이 책의 모든 이야기를 통해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인간적인 몸은 무엇이며, 인간적인 몸을 대하는 태도는 무엇인가 입니다. 인간의 몸을 갖고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은 다른 몸에 대한 선한 의지와 다른 몸 역시 자신의 몸만큼이나 삶의 의지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겁니다.
--- p.338, 「에필로그|태초에 몸이 있었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