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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치카 · 스페이드의 여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234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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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9월 27일
쪽수, 무게, 크기 168쪽 | 234g | 140*210*20mm
ISBN13 9788954694759
ISBN10 8954694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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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네치카」

소네치카는 일곱 살 때부터 스물일곱 살 때까지 꼬박 이십 년 동안을 쉼없이 읽고 또 읽었다. 마치 기절이라도 한 것처럼 책에 빠져 있다가 마지막 책장을 넘길 때가 되어서야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 p.10

전쟁은 쉴새없는 독서의 모호한 상태에 머물러 있던 소네치카를 끄집어낸 젊은 시절의 첫 사건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 몇 해 동안 공장에서 일하던 아버지와 함께 스베르들롭스크로 피란을 떠났다. 그곳에서도 그녀의 유일한 희망의 공간은 도서관 지하실이었다. 이것이 역사 속에서 오래전부터 우리 조국에 뿌리내린 전통인지는 분명하지 않았지만, 정신의 소중한 결실들은 마치 농작물처럼 반드시 땅 깊숙이 차가운 곳에 보관되어 있었다. 어쩌면 이는 앞으로 지하 생활자를 남편으로 맞게 될 소네치카의 수십 년의 삶을 위한 예방접종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가 나타난 것은 암담하고 끔찍했던 피란 시절의 첫해였다.
--- p.13

“우리가 이기고 전쟁이 끝나면 즐거운 삶이 시작되겠지?”
그러자 남편은 건조하고 따끔하게 말했다.
“그런 꿈을 왜 꿔? 우리는 이미 행복하게 살고 있잖아. 그리고 이기고 지는 문제에 관해서라면 말이지…… 사람 잡아먹는 놈들 중 어떤 놈이 이기든 우리는 그냥 항상 지기로 하자.”
--- p.24

두 사람 모두 밤의 공원을 좋아했다. 침묵 속의 서로에 대한 이해와, 소네치카 앞에서 입 밖에 내지 않는 부녀만의 비밀스러운 공모에 대한 확인을 나눌 수 있는 것을 높게 평가했다. 고상함을 타고난 로베르트 빅토로비치와 그런 아버지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젊고 어린 타냐는 일용할 양식과 관련된 일이라면 모두 소네치카의 몫으로 남겨두고, 자신들은 선택된 지적인 엘리트들이 누리는 복지를 요구하곤 했다.
--- p.58

집으로 돌아오는 십 분 동안 소네치카는 행복했던 십칠 년간의 결혼생활이 모두 끝났다는 것, 그리고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로베르트 빅토로비치도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하긴 그 사람이 언제 다른 사람에게 속했던 적이 있었던가? 아버지나 할아버지에 가까웠지. 수줍음 많은 자신의 혈통을 하나도 닮지 않은 딸 타냐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도 소냐의 것이 아니었다. 밤이면 한숨짓고 신음소리를 내듯 삐거덕거려 마치 해가 갈수록 낯설어지는 자기 몸을 느끼는 늙은이 같았던 그녀의 집도 이제는 소냐의 것이 아니었다.
--- p.76

건강이 나빠지고 있다. 파킨슨병이 시작되려는 것 같다. 그녀의 떨리는 손에는 책이 놓여 있다. 봄이 되면 그녀는 보스트랴코보 묘지에 가서 남편의 무덤에 뿌리를 내리지 못해 매년 다시 심어야 하는 하얀 꽃을 또 심는다. 저녁이 되면 그녀는 배를 닮은 코에 가벼운 스위스제 안경을 걸치고 달콤한 심연, 어두운 가로숫길, 봄의 물속으로 곤두박질치듯 뛰어든다.
--- p.95

「스페이드의 여왕」

집 전체가 잠들어 있었다. 이는 축복이었는데, 이 축복은 선물이나 장물 같은 것이었다. 예기치 못하게, 아무도 그녀에게서 무언가를 요구하지 않는 자신만의 시간이 두 시간이나 생기자, 그녀는 이제부터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이리저리 고민했다.
--- p.102

스스로 기억하는 바로, 안나 표도로브나는 평생 동안 어머니와 만나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하곤 했다. 어렸을 때는 물속으로 다이빙을 앞둔 수영 선수처럼 어머니의 문 앞에서 얼어 있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최강의 상대와의 대면을 앞두고 승리가 아닌 응당한 패배를 기다리는 복서와 같은 마음가짐이었다. 어머니는 아침이 채 되기도 전에 갑작스레 안나를 덮쳤고, 안나는 처음으로 사전에 준비도 없이 낯선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듯 멀찍이서 어머니를 보았다. 그녀의 앞에는 성별도, 나이도, 그리고 거의 살점도 없는 천사가 서 있었다. 영혼만으로 살고 있는. 그러나 이 영혼이 어떤 영혼인지 안나 표도로브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 p.104

무르는 예전에 자기 삶의 무대배경으로, 자신이 주연인 연극의 단역배우로서 사건들과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지만 해가 갈수록 모든 주변적인 것들은 색을 잃어갔고, 텅 빈 무대의 중앙에는 그녀 혼자만, 그리고 그녀의 여러 가지 욕망만 남았다.
--- p.113

“마레크가 그때 어머니는 마르크스-레닌주의 이론처럼 영원히 살아남을 거라고 말했었지.”
카탸가 흠 하고 소리를 냈다.
“재치 있네요.”
“그렇지. 그런데 네가 보다시피 그이가 틀렸다. 어머니는 감사하게도 마르크스주의보다도 오래 살고 있는걸.”
--- p.116

아이들이 마레크를 바라보며 황홀경에 빠졌기 때문에 안나 표도로브나는 좀 당황스러웠고, 곧 창피함을 느꼈다. 결국은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그는 항상 매력적이었고, 나이가 먹어도 여전히 멋지다는 걸…… 하지만 모호한 쓰라림과 당혹스러움이 그녀의 가슴을 들쑤셨다.
--- p.123~124

마레크는 무언가를 말하고 또 말했는데, 대부분은 눈처럼 날려서 지나갔다. 그러나 갑자기 안나는 그가 더듬거리는 말에 정신이 들었다.
“……마치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는 것 같은 진정한 기적. 이 괴물, 이기주의의 화신, 스페이드의 여왕, 그녀가 모든 걸 파괴하고, 모든 걸 매장시켜버렸어…… 당신은 어떻게 이걸 참는 거야? 당신은 완전히 성녀야……”
“내가? 성녀라고?” 안나 표도로브나는 가다가 기둥을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멈춰 섰다.
--- p.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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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에트 정권하 ‘여자의 일생’을 그린 이 소설은, 일상생활 속 감성과 본능의 생생한 묘사를 통해 기존 소비에트 문학이 칭송하던 모든 가치관에 가장 우아한 이의 제기를 하고 있다.
- 가디언
얽히고설킨 우리의 인생을 류드밀라 울리츠카야는 항상 열정과 관용, 유머를 지닌 채 바라본다.
- 슈피겔
류드밀라 울리츠카야 작품 속의 러시아 여성들은 이제껏 봐온 인물들과 다르다. 매력 넘치고, 지적이고, 유혹하며, 망가진 나라를 짊어질 만큼 강인하다.
- 게리 슈테인가르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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