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이 없다’는 말을 하거나 들어본 적이 있나요? 말과 행동이 상황과 맥락에 맞지 않을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개념은 생각입니다. 생각도 노력과 연습이 필요합니다. 본문에서 다루고 있는 스물일곱 개의 개념 혹은 용어는 익숙한 듯 낯설기도 합니다. 지식과 정보에 실시간으로 접속하는 시대를 살아가며 개념 하나를 붙잡고 문학과 사회, 철학과 과학, 문화와 예술 사이를 오갔습니다. 개념과 용어보다 단어 하나, 문장 하나가 씨앗이 되어 생각하는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한곳에 머물지 않고 그 생각이 확장되고 흘러넘쳐 다른 생각과 합쳐지는 과정은 오롯이 한 사람의 깊이와 넓이에 닿을 것입니다.
흔히 독서가 취미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여유를 즐길 때 책 읽는 취미는 나쁘지 않으나, 인생은 실전이고 책은 실전을 치를 때 꼭 필요한 무기라고 생각합니다. 인문학적 개념, 철학 용어, 경제 이론이 취미일 수는 없습니다. 실전에서 문제가 생기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인생은 실전이고 책은 무기입니다. 독서는 무지를 자각하며 타인과 세상을 이해하는 통찰력을 선물합니다. 이 책이 스스로 성장하며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거듭날 수 있는 마중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자기 인생에서 ‘마침, 바로 그때!’를 기다리며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바라는 사람은 원망이 쌓이고 분노만 커질 뿐이다. 기다려도 하늘에서 동아줄은 내려오지 않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스스로 돕는 힘을 기르는 것은 고독한 일이지만, 오직 그럴 때만 우리는 자신만의 스타일을 만들어 낼 수 있다. 하늘의 동아줄도, 데우스 엑스 마키나도 우선 자기만의 스타일로 노력하는 사람이 얻는 게 아닐까. 간절함과 열정이 없다면 기회도, 우연도 찾아오지 않을뿐더러 찾아와도 눈치채지 못한다.
--- 「마침, 바로 그때! #데우스 엑스 마키나」 중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건 DNA에 새겨진 운명이 아니라 창조적 밈이다. 이기적 유전자에 저항하는 힘이 바로 밈이 아닌가. 생물학적 필연을 넘어 문화적 유전자인 밈이 퍼지는 현상은 놀랍고 아름답기까지 하다. 우리는 유전자 기계로써 조립되었지만, 밈으로 교화된 존재이다. 지구에서 유일하게 인간만이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들의 전제에 반항할 수 있다. 다른 동물과 달리 유전자의 본능을 극복하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며 문명을 이루는 과정이 놀랍기만 하다. 이제 인터넷 밈은 현생 인류가 공유하는 새로운 후천적 유전자가 아닌가 싶다.
밈은 어떤 문화권 내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 퍼지는 생각, 행위, 또는 스타일이라는 함의를 갖기 때문에 원대하고 훌륭한 밈일수록 지속해서 복제되며 널리 퍼져나간다. 공동체가 지향하는 가치, 즉 자유와 평화를 존중하는 문화, 어떤 차별도 없는 태도, 다 함께 잘 살려는 의식 등이 유전된다는 상상은 얼마나 행복한가. 인간의 의지와 노력, 창조적 상상력이 다음 세대에 전해지고 그것이 생존에 유리한 본능이 된다면 우리는 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인권, 차별, 나눔, 환경, 평등, 정의, 평화와 관련된 밈도 기대가 된다. 네트워크 시대의 밈은 실시간으로 시공을 뛰어넘을 준비가 되어 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노력은 나의 행복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 「이기적이지 않은 문화 유전자 #밈」 중에서
실패하여 넘어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일어나지 못하는 게 문제라는 지적질은 넣어 두시라. 넘어진 채 누워있고 싶은 사람은 없다.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걷고 뛸 때까지 곁을 지키며 기다려주는 사람이 없을 뿐이다.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하고 쓰러질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는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경계를 넘는 창조적 상상력, 현실을 뒤집는 일탈과 유희 정신이 즐거운 인생을 만들고 활력 넘치는 세상을 만든다. 유머로 충만한 자신감과 당당함이 불안을 극복하는 힘이다.
하지만 우리 앞에 위태롭고 불안한 현실은 웃음과 거리가 멀다. 넘어지면 끝장이라는 불안을 잠재울 수 없다. 가난이 낮은 지위에 대한 물질적 형벌이라면 무시와 외면은 속물적인 세상의 중요한 상징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리는 감정적 형벌이다. 다행인 점은 가난한 사람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현실은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낮은 지위에서 벗어날 도움닫기를 마련하고 속물적 세상을 향한 인문학적 성찰을 요구해야 한다. 과연 개인의 노력과 열정만큼 잘 살 수 있는 세상인가. 청년에게 희망이, 노인을 위한 보살핌이 있는 사회인가.
--- 「불안은 희망을 기다린다 #다모클레스」 중에서
‘인간이 자신의 목적을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인 자유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개인의 욕망과 사회적 윤리가 부딪치는 지점을 정확히 짚어내어 평등의 가치를 공유하면 다수가 행복하다. 이기적 소수를 억누르는 힘은 다수의 연대와 실천에서 나온다. 우리 모두 구조와 시스템을 감시하는 회의주의자로 살아야 하는 이유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이나 단체에서도 사람 사이에 힘의 균형을 이루는 ‘경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안전하기 위해 담을 높이 쌓아 올릴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입장을 공감하고 서로에게 힘을 줄 수 있는 관계가 공존할 수 있도록 ‘관계적인 경계’를 세우길 바란다. 우리의 존재 밑바탕에 경계와 경계의 사이를 관계로 메울 수 있으면 좋겠다. 그뿐만 아니라 경계와 관계를 명확하게 구별 짓는 공적 시스템과 공동체의 문화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 상피제의 정신을 오늘의 시스템으로 재해석하고 보이지 않는 음서제를 걷어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 「경계와 관계 사이의 관계 #상피제」 중에서
돌아보면 사춘기가 엊그제다. 고개를 들면 벌써 마흔이 보인다. 거울 속에 환갑 넘은 노인과 마주치는 순간도 금방이다.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시간 앞에서 우리는 겸손을 배운다. 영원한 젊음은 불가능하고 노년을 거부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역동적이고 유연한 몸과 마음에서 차분하고 단단한 몸으로 변하는 과정은 자연스러운 순환법칙이다. 그러니 시간을 되돌리려면 생각이 굳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세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연습과 투명하게 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젊음을 유지해야 한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이별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사랑처럼. 누구에게나 들뜬 가슴이 뜨겁던 시절은 있다. 순수는 맹목의 다른 이름이다. 열정은 무모함의 포장지다. 현실에 눈을 뜨고 이해관계를 따지며 세속적 욕망이 스멀거리기 시작하면 나이와 무관하게 사람들은 변해간다. 설레며 꽃 한 송이를 연인에게 내밀던 손과 두근거리던 가슴은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애틋함과 그리움이 없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한가. 인간의 삶은 ‘생존’에만 기댈 수도 없고 ‘현실’에만 집착할 수도 없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방황하며 흔들리고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그 과정에서 매번 본능과 이성이 충돌한다. 이상은 멀고 현실은 가깝다. 앎이 삶이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 「낯섦에 대한 환대 #이디오진크라지」 중에서
몹시 슬플 때는 해지는 모습이 좋다는 어린 왕자의 말 때문이었을까. 가끔 붉은 노을이 아름다운 지평선에서 춤을 추는 상상을 한다. 어쩌면 하루에 마흔세 번이나 석양을 볼 수 있는 자유와 권력이 부러웠는지도 모르겠다. 소혹성 B-612를 소유한 어린 왕자는 지구에서 하루를 견디는 우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구에 온 그는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사막의 여우를 만나면서 생각이 조금씩 바뀐다. 작은 별에서 자기만의 세상에 갇혀 있던 어린 왕자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관찰하며 끊임없이 질문한다. 호기심은 타인과 세상을 향한 관심이다. 알고 싶은 마음은 대상에 대한 사랑으로 발전한다.
세상에 모든 사랑은 상대에 관한 관심과 이해로부터 시작된다. 어린 왕자는 자신의 공간적 한계를 벗어나 새롭게 태어난다. 도마뱀, 장미, 여우 등 길을 걷다 만나는 모두에게 말을 건넨다. 순수한 호기심, 대상을 향한 질문을 통해 이해의 폭을 넓히고 앎의 세계로 한 걸음씩 나아간다. 어린 왕자는 그렇게 조금씩 성장한다. 우리는 자신을 객관화하지 못해도 타인은 너무 쉽게 평가한다. 어쩌면 어린 왕자의 슬픔을 통해 우리는 잃어버린 동심이 아니라 타인의 눈에 비친 자기 모습을 읽는 게 아닐까. 인간의 성장은 타인과 세상을 파악하는 데서 출발하지만 결국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오는 시작도 끝도 없는 머나먼 여행이다.
--- 「노을 아래서 춤을 춘다는 건 #타나토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