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오타니에 대한 내 마음을 단번에 표현할 단어는 없다. 다양한 감정이 한데 뭉쳐졌다. 애정이라는 껍데기 안에 경외심, 응원, 우려, 대리만족 등이 들어 있다. 그러나 오타니에게 빠져들게 만든 결정적인 감정은 정확히 기억한다. 그건 ‘부끄러움’이다. 그 감정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영화 〈기생충〉을 만든 봉준호 감독과 있었던 일을 이야기할까 한다. 나는 20대 초반에 등단하고 소설이 영화로도 만들어질 정도로 운이 좋았던 작가였다. 소설가 대부분에게 길고 긴 무명과 가난의 세월을 견뎌내야 열리는 기회의 문이, 나에게는 너무나도 일찍 열린 것이다. 그러나 나는 행운의 열쇠를 손에 넣고도 의심하고 또 의심했다. 소설과 영화라는 분야에서 성공해봤자 얻을 수 있는 결실이 그리 커 보이지 않아서였다.
--- p. 11, 「1장 생존과 본능」중에서
나는 오타니에게 완전히 빠져버렸다.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해도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용기에 반했다. 안락함과 적당한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더 높이 날아오르는 도전 정신에 반했다. 거듭되는 실패와 사람들의 비웃음에도 굴하지 않고 묵묵히 재기를 준비하는 평정심에 반했다. 불굴의 의지, 수도승 같은 절제, 이 모든 것을 갖췄음에도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에 반했다. 스포츠에서 기록을 깨뜨리는 일에 우리는 왜 그렇게 열광할까? 인간의 한계에 대한 도전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스포츠의 본질이기도 하다. (…) 오타니의 여정이 끝날 때까지 그를 응원하기로 마음먹었다. 응원만 하지 않고 그를 연구하고, 기록하고, 그와 관련한 물건들을 수집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생일이었던 2021년 6월 26일, 오타니가 생일을 축하해주듯 쏘아 올린 홈런을 보면서 한 결심이다.
--- p. 36, 39, 「1장 생존과 본능」중에서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 포르쉐가 로망인 경우가 많은데, 내 경우에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소위 말하는 드림카(지금은 8시리즈로 모델명이 바뀐 BMW 그란쿠페)는 타봤고, 딱히 다음에 타고 싶은 차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20년 넘게 하드탑을 고수하던 벤츠 SL 신형이 소프트탑으로 변경되어 나온다길래 다음 차로 타볼까 생각해본 정도? 오타니 화보를 보기 전에는 길거리에서 타이칸을 봐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니 타이칸에 대한 열망은 차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순전히 오타니와 똑같은 차를 타고 싶다는 심리였다. 자동차 동호회에서는 차를 바꾸고 싶은 생각이 들 때 ‘기변 뽐뿌’가 온다는 표현을 쓰는데, 아주 뽐뿌가 제대로 왔다. 결국 포르쉐 매장을 찾았다.
--- p. 82, 「3장 행복의 조건」중에서
이제는 꽤 알려진 일화인데, 오타니는 슈퍼스타가 된 후에도 틈날 때마다 경기장에서 쓰레기를 줍는다. 심지어 다른 팀 홈구장에서도 쓰레기를 줍는 모습에 사람들이 놀라곤 한다.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오타니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누군가가 흘린 운을 줍는 겁니다.” 오타니만큼이나 낭만 넘치는 인물이었던 쿠바의 혁명가 ‘체 게바라’는 이런 말을 했다.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엔 불가능한 꿈을 간직하자.” 이 말은 오타니의 만다라트와 일맥상통한다.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오타니는 불가능하게 보였던 ‘8개 구단 드래프트 1순위 지명’이라는 꿈을 가슴에 간직한 채, 사소해 보이는 행동 지침들을 따르는 리얼리스트였다. 당신의 불가능한 꿈은 무엇인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행동 지침은 무엇인가?
--- p.113, 「4장 오타니의 가르침」중에서
하지만 자신의 도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마지막에 오타니가 직접 말한다. 나는 이 영상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비겁하게 떠나보낸 어린 시절 꿈에 미안해져서. (…) 내가 타협을 선택하며 스스로 설득하는 근거로 삼았던 것들은 그저 핑계였다. 물론 내가 다른 길을 택하고 도전했다고 성공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다만, 너무 많이 자신을 의심했고 너무 빨리 타협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빌어먹을 세상은 의심으로 가득하다. 나의 꿈과 도전에 고개를 끄덕여줄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부모조차 고개를 젓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니, 내가 나를 믿어주지 않으면 누가 나를 믿어주겠는가? 믿음이라는 끈이 사라지는 순간, 설렘으로 가득 찬 꿈의 풍선은 잡을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버린다.
--- p.117~118, 「4장 오타니의 가르침」중에서
누군가에게 관심을 쏟고 감정을 의탁하고 싶은 마음은 삶의 형태가 어떠하건 그대로다. 연인이나 친구 혹은 반려동물이 가족의 자리를 대신할 텐데, 덕질도 그에 못지 않은 보완책이 될 수 있다. 특히 덕질의 대상이 사람일 경우 애착 관계와 흡사한 감정적 효과가 생긴다. 좋아하는 아이돌을 누나나 이모 혹은 삼촌의 마음으로 응원하는 팬들이 좋은 예다. 트로트 가수 중에는 어머니 또래의 팬들이 정말 많은데, 자식들이 성장해 출가한 뒤 겪은 빈 둥지 증후군을 덕질을 통해 극복했다고 입을 맞춘 듯 고백한다. 단순한 취미 활동으로는 얻을 수 없는 보상이다. 앞으로의 세상에서 덕질은 더 흔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대상에 너무 깊이 들어가기가 망설여졌던 분들은 눈 딱 감고 뛰어들어보기를. 나 역시 오타니에 대한 감정이 가끔 아들을 대하는 아빠처럼 될 때가 있다.
--- p.193, 「7장 단순한 취미 활동으로 얻을 수 없는 보상」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