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집안에 꼼짝없이 갇혀 있던 어느 날 임영웅이 부르는 〈서른 즈음에〉를 텔레비전에서 봤다. 은은한 그의 목소리를 타고 꿈과 희망이 가득찼던 나의 젊은 시절이 밀려들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꽁꽁 얼어붙은 가슴에 커피 향처럼 퍼졌다. 며칠 뒤 같은 프로그램을 시청한 조카가 나에게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 참 좋더라”고 했다. 나는 조카에게 “이 노래는 말이야 김광석이라고 노래 진짜 잘하는 가수가 있었는데……” 하고 그 시절 이야기를 해줬다. 누가 30년 후 또 그 노래를 부른다면 나의 조카 세대는 그다음 세대에게 “이 노래는 말이야 팬데믹 때문에 집안에 갇혀 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 하며 임영웅의 노래를 듣던 그 시절을 이야기할 것이다. 노래에 새기는 우리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그렇게 우리는 기억되고 기억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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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인터넷에서 한국 뉴스를 보는데 〈안녕〉이 흘러나왔다. 어린이 합창이 끝나고 어린이 합창보다 더 해맑은 김창완의 목소리가 나왔다. ‘안녕, 귀여운 내 친구야.’ 뉴스 틀어 놓고 이것저것 하던 내가 갑자기 턱 멎었다. 어린 시절 국기 강하식이라는 것이 있었다. 겨울철 오후 5시, 여름철 6시, 관공서에서 국기를 내리는 시간이면 어디에 스피커가 숨었는지 갑자기 길에 애국가가 울려 나오고 행인들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서서 애국가와 국기에 대한 맹세가 끝날 때까지 서 있었다. 뉴스 끝에 김창완의 〈안녕〉이 나오자 나는 국기 강하식처럼 그 자리에서 굳었다. 수없이 듣던 노래가 또 나를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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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수궁 근처는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했다. 내 모교 건물들은 동관 하나 남고 가루가 되었다. 대법원은 이사 갔다. 정욱이는 대학 이후로 연락이 끊겼고 선생님은 돌아가셨다.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뒤를 이어 다른 사람 둘이 연인이란 이름으로 지나간다. 우리 모두 세월 따라 정동을 떠났다. 이영훈도 ‘이렇게도 아름다운 세상’을 뒤로하고 그가 ‘사랑한 얘기’만 유언처럼 남긴 채 훌쩍 떠났다. 언젠가 이문세도, 그의 노래를 불렀던 모든 가수도 다 가고 나도 가고 1988년 〈광화문 연가〉를 함께 불렀던 모두가 떠나겠지만 노래는 그 시절 우리의 기억을 머금고 남아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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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수봉의 매력은 우선은 특이한 목소리이다. 특유의 콧소리는 때로는 흐느끼는 듯하고, 때론 영혼의 목소리 같기도 하고, 때론 신비롭기도 하다. 일부러 콧소리를 낸다는 느낌 없이 콧소리가 나는 것이 매력이다. 거기에 더해 심수봉은 심금을 울리는 곡 해석력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노래가 자작곡이니 잘 부르지 않겠느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곡은 잘 쓰는데 그 곡을 남이 불렀을 때 훨씬 빛이 나는 사람들이 있다. 내가 자주 하는 말이 하나 있다. “미국에 캐롤 킹(Carole King)이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심수봉이 있다.”
--- p.79~80
하와이 원주민들의 속담에 ‘미래는 과거 속에 있다’는 말이 있다. 역사는 우리의 길을 밝혀 주는 등대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세렝게티에 건기가 오면 그곳에 흐르는 수맥을 찾아 무리에게 물을 먹이는 나이 많은 코끼리의 지혜, 그것은 기억이다. 우리는 그 귀중한 기억들을 노래에 새겨 놓고 서로 나누며 산다. 이 책을 덮으며 덜컹거리는 기차를 타고 시간 여행 한번 떠나 보길 권한다. 노래 속에 새겨진 나와 내 주변 사람들과 내가 살던 동네와 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이었는지 한번 돌아보길.
--- p.94~95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가 내게 다가온 것은 마흔이 넘은 뒤였다. 어느 날 노래방에서 이 노래를 부르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라는 대목에서 가슴이 먹먹해 왔다. ‘언제 세월이 이렇게 흘렀지?’ 어려서는 매일이 똑같았다. 학교 다녀와 숙제하고, 저녁 먹고, 시험 틀린 것 가지고 혼나고, 자고 또 학교로 향했다. 조금 자라 봄이 오면 여름이 오고 그 뒤에 가을이 오고 손을 호호 불며 나가 노는 겨울이 온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도 똑같은 계절이 계속 반복하는 걸로만 알았다. 똑같은 일상 속에서 똑같은 ‘계절은 다시 돌아오지만’ 실은 똑같은 어린아이인 줄 알았던 나는 그 속에서 매 순간 나이 먹고 있었다.
--- p.100
오랜 세월이 지나도 양희은의 노래에 싫증이 나기는커녕 오히려 세대를 초월해 들을 때마다 고향집에 돌아온 푸근함을 느끼는 것은 왜일까? 양희은의 노래에는 아름다운 인간의 목소리와 아름다운 멜로디와 아름다운 가사가 있다. 거기에 양희은의 해맑은 목소리 속에는 힘겨웠지만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살았던 삶이 배어 있다. 행복과 위안은 가장 인간적인 것인가 보다.
--- p.129
나는 〈삼도천〉이 그리는 두 가지 강 즉 현실에서 우리를 가르는 강과 죽음과 삶을 가르는 강 중에 후자에 더 매력을 느낀다.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생각은 없어졌지만, 있을지 없을지 모를 죽음 뒤의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오늘의 내 삶을 삼도천의 시작으로 보고 나를 바꾸려 애써볼 수는 있을 것 같다. 내가 변한다고 세상이 변할지는 몰라도 분명한 것은 나부터 변하지 않으면 세상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조금씩 비우고, 놓고, 잊는 행위를 시작해 본다.
--- p.178
나는 왜 윤종신의 세 곡의 노래에 열광하는 것일까? 첫째 그가 작곡한 〈이층집 소녀〉나 〈부디〉 〈환생〉 모두 곡이 아름답기도 하지만 멜로디가 우리의 일상어와 매우 잘 맞아떨어진다. 가사를 말하듯 소리 내어 읽어 보고 다시 노래로 불러 보고, 멜로디 빼고 랩처럼 리듬만 넣어서 가사를 외워 보면 그의 곡들이 단어의 고저장단을 잘 표현하도록 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거기다 윤종신은 요즘 배우들도 잘 발음하지 못하는 ‘줘’나 ‘과’ 같은 복모음을 정확히 발음한다. 가사 하나하나가 또렷이 들린다. 노래가 말하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니 애절한 가사가 귀에 콕콕 박힌다. 둘째 그의 창법은 담백하다.
--- p.192
정훈희의 〈무인도〉는 우리 가요의 고전이 되었다. 어려서부터 수없이 들어왔지만 나이 들며 들어보니 참 기가 막히게 곡을 썼다는 생각이 든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연주하는 비발디의 《사계》를 들으며 ‘정경화 씨는 어쩌면 비발디가 적어 놓은 시를 읽고 그걸 음악으로 연주해서 사계절의 모습이 내 눈앞에 그림처럼 펼쳐지게 할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새소리, 물소리, 폭풍우, 가을걷이의 기쁨, 을씨년스러운 겨울날의 풍경 등 이 시 없이 정경화의 음악만 들어도 눈에 보인다. 〈무인도〉를 듣다 보면 같은 생각이 든다.
--- p.206
초등학교 때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따라 부르던 아이가 사춘기를 지나 유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고 어느덧 아재가 된 오늘까지 조용필의 노래를 듣는다. 〈서울 서울 서울〉을 들으면 ‘서울 올림픽, 그날의 감격이 되살아오고, 우리가 얼마나 멀리 왔는지 역사가 보인다. ‘못 찾겠다 꾀꼬리, 꾀꼬리’ 하고 신나게 부르던 노래에선 이제 인생이 보인다. 내 인생의 40여 년을 함께한 조용필의 노래들. 그들은 이미 나의 오랜 친구가 되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한 위대한 가수가 스타가 되고 전설이 되어 가는 것을 함께한다는 것은 인생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 p.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