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4년 03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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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40쪽 | 464g | 145*210*30mm |
ISBN13 | 9788932025551 |
ISBN10 | 893202555X |
발행일 | 2014년 03월 1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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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340쪽 | 464g | 145*210*30mm |
ISBN13 | 9788932025551 |
ISBN10 | 893202555X |
책머리에 프롤로그 : 감정의 사회적 문법 1. 나도 모르는 나 2. 감정은 사회적으로 구성된다 3. 한국인의 마음 풍경 1장 모멸감,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감정의 응어리 1. 수치심의 두 얼굴 2. 모멸, 수치심을 일으키는 최악의 방아쇠 3. 치욕과 폭력의 악순환 4. 부끄러움과 부러움의 자본주의 5. 미소 뒤의 분노, 감정노동 2장 한국 사회와 모멸의 구조 1. 언어에 반영된 한국인의 정서 지형 2. 귀천에 대한 강박 3. 신분제의 붕괴, 신분의식의 지속 4. 위계 서열과 힘의 우열 5. 공동체의 붕괴, 집단주의의 지속 6. 인종주의와 콤플렉스 3장 모멸의 스펙트럼 1. 인간 이하로 취급_비하 2. 열등한 존재로 구분 짓기_차별 3. 비웃고 깔보고_조롱 4. 대놓고 또는 은근히 밀어내기_무시 5. 시선의 폭력에서 섣부른 참견까지_침해 6. 불쌍한 대상으로 못 박기_동정 7. 문화의 코드 차이_오해 4장 인간적인 사회를 향하여 1. 품위를 잃지 않도록 2. 문제는 감수성이다 3. 물리적 쾌적함, 생리적 청결함 4. 화폐의 논리를 넘어선 세계 5. 소수자들의 연대와 결속 6. 환대의 시공간 5장 생존에서 존엄으로 1.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2. 누가 나를 모욕한다 해도 3. 감정의 주인이 되려면 4. 행복감은 우월감이 아니다 맺음말 음악과 감정_유주환 1. 음악에 나타난 감정의 흔적 2. 현악 사중주를 위한 열 개의 단상, 모멸감이 나오기까지 연주자 약력 |
요즘과 같이 날이 후덥지근하고, 좋은 일 보다는 안 좋은 사건사고가 범람할 때는, 사람들 모두 신경이 날카롭다. 그렇지 않아도 다혈질사회인 우리사회에서 이럴 경우 감정에 휩쓸리기 쉽다. 때문에 곳곳에서 언성이 높아지고, 가슴 속에 품어온 말들이 아무런 여과 없이 쏟아진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수치심을 안겨주고, 또 이유도 없이 모욕을 받고 가슴 속 분을 삭이느라 전전긍긍 한다. 이처럼 우리사회는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각종 결핍과 공허를 채우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타인에 대한 모멸을 택하는 경우가 많다. 누군가를 모욕하고 경멸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모멸은 당하는 사람에게 심한 수치심을 느끼도록 만든다.
감정은 우리들의 생각과 행동을 좌우한다. 오랫동안 함께 지낸 가족이나 친구의 마음조차 종잡을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물론, 나 자신에게도 종종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다. 이런 감정은 이성보다 더 근본적이며 강력하다. 그러기에 감정을 다스리고 조절하는 능력이 리더의 중요한 항목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특히나 우리 사회는 경제성장에 비해 시민사회나 인권의식이 덜 성숙했기에 타인에 대한 모멸이 심하게 나타나는 사회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우리들이 가진, 당연시되는 감정들은 일정한 사회문화적 조건 속에서 형성된 마음의 습관이라고 말한다. 즉, 감정은 개인의 내밀한 영역이면서도 사회의 거시적인 차원과 맛 물려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감정을 사회적인 지평에서 분석하고, 역사적인 차원에서 이해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야 우리에게 익숙한 마음의 습관들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는 사회적 유대가 생존을 좌우하는 열쇠이었다. 따라서 집단의 질서가 중요했고, 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법과 도덕이었다. 이 중 법은 물리적 징계를, 그리고 도덕은 심리적 압박의 수단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수단들이 효과가 있으려면 지탄의 대상이 된 사람이 수치심을 느껴야 한다. 수치심은 타인의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볼 때 느끼며, 인간이 사회적 구성원으로 살아가는데 필수불가결한 감정으로, 타인에게서 모욕을 받았을 때 나타난다. 흔히 모욕의 사전적 정의는 타인을 업신여겨 욕되게 하는 것이며, 모욕감은 누군가로부터 모욕을 받았다는 느낌, 다시 말해 나의 존재가 부정당하거나 격하될 때 갖게 되는 괴로운 감정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처럼 직접적이고 적나라한 형태의 모욕보다, 우리사회에서 더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은 일상 속의 은근한 모욕으로, 이는 무시나 경멸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이렇게 당할 때 느끼는 감정을 우리는 모멸감이라고 부른다. 모욕은 그 감정을 유발한 사람을 분명하게 지적할 수 있으나, 모멸은 상황자체가 불러 일으킬 수도 있으며, 낮은 자존감 때문에 느끼기도 한다. 우리들은 우리들이 느끼는 감정 중에서 슬픔이나 외로움은 종종 표현하고 위로를 받지만, 또 불안이나 분노도 쉽게 드러내고 때로는 공감을 얻을 수도 있지만, 모멸감은 드러내지 않는다고 한다. 모멸감 속에는 수치심, 열등감 그리고 분노 등이 뒤섞인 채 억눌려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멸은 인간 내면의 가장 깊숙한 부분을 파괴하며, 그 기억은 자신에 대한 혐오와 타인에 대한 맹렬한 공격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즉, 폭력은 수치심을 느끼고 있다는 것을 필사적으로 감추고 싶은 마음에서 나타나기 쉽다는 것이다.
저자는 우리사회에 모멸감이 만연하게 된 것은 전통사회에서 형성된 귀천의식이 아직까지도 우리사회를 짓누르고 있고, 제도화된 신분세습제가 자각에 의해서가 아니라, 외부의 힘에 의해 붕괴된 상태에서 급격하게 추진된 산업화에 그 배경이 있다고 분석한다. 자본주의 시대에 소비의 급수에 따라 삶의 높낮이가 판정되는 것은 일반적인 상황이지만, 한국사회에서는 아파트나 자동차의 크기 등 외형적으로 드러나는 몇 가지 요소로 높낮이를 따지고, 귀천을 따지는 속물적 문화가 첨예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기존의 신분적 지배질서는 무너졌지만, 차별의식은 더욱 보편화되어 학력, 빈부, 지위 등이 강력한 기준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가 하면 삶은 급속하게 개별화 되어 가는데 개인주의는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서, 타인에게 관심을 갖고 또 간섭하기를 좋아하는 것도 그 원인의 하나라고 한다. 따라서 체면과 위신에 대한 집착이 심하고,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예민해 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모멸감을 증폭시키는 또 다른 원인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구별 짓기와 선 긋기를 통해 스스로의 잘남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사회, 이처럼 자신을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삶은 타인을 수단으로만 대하는 관계와 맛 물려, 우리사회를 아무런 생각 없이 서로에게 모멸감을 주고 받는 사회로 만들고 있다고 한다.
이런 모멸감은 우리사회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날까? 저자는 모멸의 존재방식, 즉 모멸감을 유발하는 상황을 7가지로 분류하여 설명한다. 상대방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비하, 열등한 존재로 구분 짓는 차별, 비웃고 깔보는 조롱, 대놓고 또는 은근하게 밀어내는 무시, 시선의 폭력에서 섣부른 참견까지 마다하지 않는 침해, 불쌍한 대상으로 못박는 동정 그리고 오해가 그것이다. 이처럼 타인의 인격을 부정하는 풍토는 결국 자신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결과를 낳지만, 우리사회는 이러한 무형의 폭력에 대해서는 둔감하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이런 모멸감을 뛰어넘어 품위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품위 있는 사회란 구성원들이 자기가 모욕당했다고 간주할 만한 이유가 있는 조건에 맞서 싸우는 사회, 또는 그럴만한 이유를 제공하지 않는 사회라고 한다. 이를 위하여 저자는 세가지 측면에서 그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구조적인 측면으로는 사람들 모두가 팍팍한 삶에서 생존 가능해야 최소한의 품위를 갖출 수 있으며 이는 정치의 몫으로 수렴된다고 한다. 두 번째는 문화적인 차원으로 가치의 다원화를 들고 있다. 모든 가치가 가격으로 매겨지는 시대, 우리는 사람의 가치도 돈으로 따져 하는 셈법에 익숙해져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하는 것은 돈을 넘어선 그 무엇을 통해서라며, 돈으로 환산되기 어려운 의미를 발견하고 실현하는 문화와 사회풍토로 바꾸는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 측면으로 저자는 개인적인 측면을 들고 있다. 개인 모두가 내면적인 힘을 키워 품위 있는 삶을 지향하고, 그러기 위해서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겐 너그러운 성품을 가꿔 나가자고 한다.
우리의 삶이 특별해지는 순간은, 자신이 더 이상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라고 한다. 무시와 경멸로 모멸 권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우리 감정의 주인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저자는 자극과 반응 사이에서 잠시 멈추어 보라고 한다. 존중과 자존의 문화는 여럿이 만드는 것이지만, 그 출발과 귀결의 지점은 우리 각자의 내면에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을 넘어, 상대방의 입장에서 느끼는 감수성이야말로, 우리가 모멸 권하는 사회에서 모멸을 좀 덜 주고받는 품위 있는 사회를 만드는 길, 이라는 저자의 말이 울림으로 다가온다.
단연코, 마스터피스라 할 만하다. 저자가 단독저자로 저술한 9번째 작품인 이 책은 그동안의 지적여정이 문장에 함축되어 사르르 녹아있다. 참신하게 표현하기 위해 오랫동안 고심한 듯한 문장을 발견하며, 쉽지만 가볍지는 않게 서술하기 위해 오랜 시간 잠 못 자며 고군분투했을 나날이 쉬이 그려진다. 저자의 강의에서 어느 날, 저자는 책을 읽다가 좋은 표현을 만나면 수첩에 적는 등 한국인이지만 한국어도 열심히 공부한다면서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정확하고 아름답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 책은 그런 맥락에서 의미있는 결과물이다. 서평하는 본인 역시 예약판매를 통해 이 책을 처음 접한 후 하이라이트 1개의 물이 다 빠지도록 줄을 그었다. 그동안 읽었던 저자의 글 중 가장 좋았다.
책의 주요 취지는 "'모멸감'이라는 감정을 프리즘 삼아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조명하면서 삶과 마음의 문법을 추적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수많은 다양한 사례는 이 책의 가장 큰 묘미이다. 동양의 <논어>와 <서경>에서 드라마 <직장의 신>과 EBS 다큐멘터리 <두 얼굴의 인간>까지, SK 상담원의 실제 사례에서 일제의 형평사 운동의 역사적 사건까지, 저자의 개인적 군 복무 경험담부터 모파상과 호손의 소설까지, 이화여대 석좌교수 김우창의 저서에서 현대작가 박민규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까지, 영어 표현이나 한자 단어뿐 아니라 라틴어 어원 추적(hum)에서 일본어의 표현(쿠와시)까지, 심지어 정신의학계의 용어에서 콩고 말까지, 20세기 로버트 카파의 사진에서 17세기 렘브란트의 그림까지, 저자의 연세대 문화인류학 전공강의에서 제출된 리포트에서 서울북공업고등학교의 국어시간에 제출된 시까지, 다양한 사례를 넘나들며 '모멸감'을 분석해 나간다.
감정이 "부수적이고 지엽적인 잉여가 아니라, 중대한 인간사를 좌우하는 핵심"이며, "서양의 근대학문은 이성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면서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감정을 소홀히 다뤄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중 특히 행복이나 정의보다 '모멸'이라는 감정이 인간사에서 더 중요하다고 예리하게 캐치해 내는 능력이 탁월하다. 저자는 더 나아가 예리한 각도로 진입해 층차를 내고 의제설정을 하는데, "정의에 어긋나는 상황은 객관화 하기 쉽고 개선을 요구할 명분도 확실하지만, 품위를 떨어뜨리는 조건이나 행위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어려워서 사적인 문제로 치부되거나 주관적인 느낌으로 무시되기 쉽다"라고 말한다. '모욕감수성'을 제안하며 이런 감정을 공론화할 필요 있다는 저자의 설명도 합당하다. 이때, 모멸이 이루어지는 맥락과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 비하, 차별, 조롱, 무시, 침해, 동정, 오해의 일곱 가지 범주로 나누어 그 스펙트럼을 조망하는 방법론적 접근도 적절하다.
첨언하자면, "빵의 문제로 허덕이느라 잠시 잊고 있었던 장미 한 송이에 대한 소망을 클릭해주었다"는 책의 표현 중 저자가 오래 생각한 듯한 표현이었고, 미국의 '미루는 사람의 협회'가 아직도 발기인 대회조차 미루고 있다는 이야기는 정말 우스웠다. 흑인으로 위장하고 인종차별이 심한 남부를 횡단여행한 백인의 이야기인 <블랙 라이크 미>의 사례는 처음 들었는데 대단히 인상 깊었다. 아울러, 동화작가 권정생 선생이 어렸을 때 일본인 여학생에게 못생겼다고 놀림받았다는 이야기도 울림이 있었으며, 저자가 면접을 할 때 동료 일본인 면접관에게 의도치 않게 행한 결례를 언급하며 반성을 하는 부분은 인간적인 매력이 있었다.
수록된 현악4중주의 음악도 훌륭하다. 모멸감이라는 감정을 어떻게 음악으로 표현할 것인가? 이것은 구매해서 직접 음악을 들어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2번, 4번, 7번과 10번이 마음에 들었다. 4번과 7번은 재밌었다. 4번은 졸부 부인네 사이의 허풍적 대화를 밝게 그리며 풍자했다면, 7번은 거머리가 기어가는 듯한 감정을 첼로와 탄력적인 보잉으로 잘 처리했다. 한편 2번과 10번은 모멸감이라는 감정이 잘 나타나 있어서 듣고 난 이후에도 한동안 귓가에 여운이 남아 있었다. 바이올린의 강한 스트로크가 뻣뻣함을 잘 표현하고 있었던 4번에 비해, 주로 반복적인 선율과 하이톤으로 누에에서 실 뽑는듯한 느낌과 비틀고 뒤엉키는 센티멘탈의 다소 이율배반적인 조합을 잘 결합했다.
그러나 어떤 마스터피스에도 티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보석이 세공되어 나왔는데 아직 덜 연마된 부분이 있다고 해서 보석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유려하게 서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간혹가다가 논리의 흐름이 잘 이어지지 않아 개인적으로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고속도로를 잘 달리다가 장애물에 막혀서 급정거를 하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214쪽에 감정노동을 하는 비행기 승무원이 진상고객에게 대응 하는 법을 조언하는 부분에서 '베테랑 직원이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베테랑 직원의 능란한 수완이 요구된다"고 주장하다가 갑자기 "그런 일을 귀찮아하면서 책상만 지키고 앉아 있는 관리자"라고 연결되는 부분에서 맥이 끊긴다. 베테랑 직원도 직원이며, 그 이전까지는 직원의 고충을 설명하다가, 그 힘든 일을 귀찮아 하는 것이 관리자라고 수식하는 부분은 안일한 접근이 아닌가하는 의문은 둘째치고 일관성에 어긋난다. 더불어, 223쪽에 형식적으로 자원봉사하러 가는 청소년이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시간만 때우게 되는데, 그런 푸대접 속에서 스스로를 비하하기 쉽다"는 부분도 고개가 갸우뚱 거린다. 비하보다는 오히려 냉소하게 되지는 않는가?
그리고 169쪽에 열등한 존재로 구분 짓기를 '차별'이라고 지칭하는 부분에서 '경멸'이라는 표현이 더 낫지 않는가 싶다. 차별은 계층 혹은 계급 사이의 시선을 전제하기 때문에, 열등한 존재로 경계를 짓는 행위는 위에서 아래의 시선이 내재하는 경멸이 올바른 것 같다. 마지막으로, 147쪽에서 저자는 "한국인의 외국인 혐오증이 노골적으로 표출"되는 까닭을 "오랫동안 동질적인 문화를 이루어 살아왔고, 단일민족의 신화가 탄탄하게 유지되어 온 역사적 배경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더욱 상세한 서술이 필요하다. 이는 저자가 진단한 한국사회의 병폐인 '외국인 혐오증'의 '원인'을 넘어서 그 원인을 더욱 강화하는 요인이다. 저자 스스로 표현하듯 단일민족은 '신화'이다. 1907년 고종이 퇴위하며 근대국민국가가 없는 상태에서 국가형성의 정치적 주체로서의 민족이 등장하게된 것과 식민지와 분단을 거치며 저항적 민족주의가 형성된 전후맥락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최소한 1문단의 부가적 설명 없이 한국의 인종주의의 문제점으로 넘어가는 것은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저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단일민족의 신화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140쪽 해커의 자기 효능감을 설명하는 부분 역시 조금 더 상세한 기술이 필요하거니와, 122쪽의 "인도의 카스트제도가 근대사회로 완전히 이행하지 못한 결과"라고 보는 부분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근대사회로 꼭 이행해야하는가? 그것은 우리 안에 내재한 서구중심주의 아닌가? 우리 역시 신분제도는 없어졌어도 신분의식은 존재한다고 저자가 판단한 것이 옳다면 인도의 카스트제도와 마찬가지 아닌가? 인도의 카스트제도가 현대인도에서 적용되는 맥락을 더 꼼꼼히 살펴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이 부분을 접근하는 저자의 태도는 원래 본연의 섬세함과 신중함을 볼 수 없다.
몇 가지 아쉬운 점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이 책은 반짝반짝 빛난다. 133쪽에서 저자는 김우창 교수를 인용하는데, 이어서 자신의 생각을 적고 또 다시 인용을 하는 부분에서 "김우창 교수의 말을 더 들어보자"라고 한다. 이는 영상처럼 매끄러운 진행이다. 파워포인트의 페이드인과 같이 부드럽게 넘어가게 만들어주었다. 저자는 늘 '대안적인 공동체나 자발적인 결사체의 형성'을 강조하는 데 모멸감을 접근하며 그것의 해결책으로 이를 제시하는 부분도 저자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어서 좋았다. (저자의 박사논문이 일본의 마을 만들기가 아니었던가!)
서평에서 언급한 부분은 빙산의 일각이다. 일독을 강력하게 권한다. 총총.
우리나라는 유달리 남과 자신을 비교해 뭐라도 하나 우월한 구석을 찾아내 그것으로 위안을 삼아야 직성이 풀리는 문화가 저변에 깔려 있는 것 같다. 좋은 대학과 기업으로의 진출이 자아실현의 방법이 아니라 때론 남에게 별것 아닌 사람으로 인식되지 않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렸음은 이전 포스팅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에서 충분히 언급한 바 있다. 감정이 우리의 행동을 지배하고 인간관계에 있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함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담론은 아직까지 많지 않았던 점에서 이 책 <모멸감>은 제목부터 단연 내 구미를 당겼다.
자신과 타인을 구별하는 이분법은 다양하다. 나는 선하고 너는 악하다.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 나는 똑똑하고 너는 멍청하다. 나는 유능하고 너는 무능하다. 나는 강하고 너는 약하다. 나는 예쁘고 너는 못생겼다. 나는 깨끗하고 너는 더럽다..... 이런 구분 속에서 스스로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고 상대방의 열등감을 자아낸다. 단편적으로 사람의 격을 나누고 자의적으로 가치를 매기는 속에서 모멸감을 주고 받는다. - p.174
자신도 모르게 섣불리 남을 판단하게 된 기준이 있진 않은가. 자신이 단지 연장자란 이유로,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나 학벌을 가졌다는 이유로 혹은 타고난 외모의 준수함을 무기삼아 알량한 콧대를 세운 적은 없는가.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레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또 잊지 못할 수모를 당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기도 했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자존심이란 것이 때론 한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감정의 핵이 된다는 것은 가끔 뉴스에 보도되는 자살과 살인 등의 원한범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복수나 단죄의 코드로 만들어지는 작품에 자신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되어 흥분을 느껴본 경험이 한번쯤 있을 것이다. 남자친구의 어머니가 고액의 돈봉투를 건네주며 자기 아들과 헤어짐을 강요하고 가정교육과 부모운운하며 끼얹는 물까지. 막장드라마에 빠지지 않는 레퍼토리지만 그 속에서 우리가 매번 마주치는 건 표현의 식상함이 아니라 굴욕과 인격모독의 현주소일 것이다. 이 같은 모욕과 수치는 우리의 일상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비하, 조롱, 무시, 경멸, 침해, 차별, 동정, 오해등이 그것으로 저자는 문학작품과 실제 있었던 에피소드를 예로 들어 이해가 쉽게 설명하고 있다.
한편 말투를 비롯해 표정, 시선, 몸짓 하나에도 오해를 일으켜 의도치 않은 모멸감을 타인으로 하여금 느끼게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자신의 구체적 일화로써 또한 증명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이 모두 그렇겠지만 나 역시 남이 내게 하는 말과 행동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데 사소한 업무지적이나 꾸지람, 또는 칭찬과 짜증에 그 날 하루 컨디션이 좌우될 때가 많다. 특히 한국사회는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큰 반면 타인에 대한 존중과 평등의식이 부족한 이유로, 모멸은 부지불식간에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적 악감정이 되어 버렸다.
한국전쟁이후 급변한 경제속도에 미처 발맞추지 못한 대중의식 저변에는 아직도 옛 신분제의 잔해가 남아있다. 내가 누군줄 알고, 어따 대고, XX주제에~ 등 이렇게 상대방을 깔보고 짓밟는 발언은 낡은 귀천의식에 젖은 자신이 모멸감에 찌든 삶을 살았다고 시인아닌 시인을 하는 셈이다. 가치를 나누는 기준이 돈과 지위에 국한되어 그 외에는 다 의미없는 것들로 치부되는 지금의 현실이 '억울하면 출세하라' 그릇된 사고방식을 낳은 것이다.
저자는 순간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한걸음 물러서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욱하는 성질과 자동반사적으로 나가는 행동을 자제하고 한 템포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반응을 결정하라는 것. 그러면 점차 분노와 화를 조절하는 감정의 통제능력이 생기고 비로소 자신이 감정의 주인이 된다는 것이다. 누가 보기에도 화를 낼 법한 상황에서 달관하거나 침묵, 유머로 받아치는 자세는 상대로 하여금 숙연함을 느끼게 할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각 개인의 노력을 시작으로 사회적인 차원에서도 의식구조 자체를 단순한 등급과 서열에 따라 자신의 행복이나 가치를 결정짓는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 상대적 가치의 재발견, 가치의 다원화가 절실히 이루어져야 한다고 덧붙인다. 나는 오늘 하루 감정의 온전한 주인이었는지, 타인의 단점 들추기가 나의 자존감을 높이는 수단으로 이용되진 않았는지 돌아보는 반성에서, 모멸은 사라지고 품위있는 사회로 가는 그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