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리스트』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 중 가장 아이디어가 풍부한 작품이다. 세 편으로 나누어 발표했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한 편에 다 넣어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따로여도 좋았을 아이디어들이 하나로 얽히니 얼마나 교묘한가. 시리즈 마지막답게 야심적이고 총체적이고 풍부하다.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번역되어 있던 『웃는 경관』을 내가 읽은 지 사십 년이 훌쩍 넘었다. 엘릭시르에서 전집 출간 계획을 발표하고 그 첫 권인 『로재나』를 내놓은 지도 칠 년이 다 되어간다. 이제 다 끝났구나, 나 이제 무슨 낙으로 사나 싶지만 밝은 면을 보기로 한다. 새 책 왜 안 나오나 목 빠지게 기다리던 시간이 끝났으니 세상 맘 편하고, 이제 첫 권부터 다시 읽을 생각을 하니 새로 발견할 재미를 상상만 해도 신이 난다. 오래 사귄 친구와 처음 만났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겠나. 그때는 이해 안 됐던 언행도 이제는 다 고개가 끄덕여질 테니 얼마나 정이 더 깊어지겠나.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나는 김명남 씨의 번역에서 사랑을 느꼈다. 인물들을 향한 연민과 관심 말이다. 한 역자에게 시리즈 전체를 맡겨준 출판사도 고맙다. 그리고 당연히 셰발과 발뢰가 고맙다. 마르틴 베크와 그의 주변 인물들, 범죄자와 희생자들을 그렇게 창조해주어서. 그런 살인들을 마련해주어서. 인간에 의해 창조된 인물 중 마르틴 베크만큼 내가 마음 깊이 공감한 이는 없다. 내가 베크처럼 평범한 사람이어서가 아닐까 생각해보았지만 ‘평범한 사람’처럼 이 시리즈에 안 어울리는 단어가 또 있을까. 셰발과 발뢰는 열 권의 책에 등장하는 수백 명의 인물 누구도 평범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거리 순찰하는 무신경한 순경의 눈에 평범해 보일 수는 있어도 베크의 눈에는 아무도 평범하지 않다. 다만 베크가 남에게 자기를 소개하면서 평범한 경찰관이라고 표현할 수는 있겠다. 그때 그가 하려는 말은 그저 상식에 근거해 수사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일 것이다.
『테러리스트』에서 마르틴 베크는 경찰관에게 필요한 자질로 ‘체계적 사고, 상식, 성실성’을 꼽는다. 한편 셰발과 발뢰는 같은 책에서 마르틴 베크가 뛰어난 경찰관이 된 이유로 ‘기억력, 끈기, 논리적 사고 능력, 그리고 나중에 무의미한 사실로 밝혀지고 마는 하찮은 일이라도 반드시 시간을 내어 확인하고 넘어간다는 점’을 들었다. 작가가 생각하는 베크의 미덕 쪽이 확실히 구체적이다. 다만 이쪽 어느 분야에서도 베크는 일등은 아니다. 기억력은 멜란데르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끈기라면 스카케를 못 당한다. 논리적 사고의 측면에서는 베크조차 콜베리에게 의지하곤 하지 않나. 그러나 마지막 항목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마르틴 베크는 앞에 세 가지를 최고는 아니어도 골고루 잘하는 사람이고 네 번째 것은 유독 잘하는 사람이다. 특히 이 마지막 미덕이 그동안 시리즈를 꾸준히 읽어온 독자에게 감동을 안겨준다. 베크가 그렇게 해서 해결한 사건들이 몇이던가. 하찮은 것을 일일이 확인한다는 일. 하찮은 사람과 하찮은 일들을 중시하는 사람. 중시한다는 태도 자체로 이미 그것을 하찮지 않게 만든다는 뜻. 내가 마르틴 베크를 사랑하고 존경하는 이유는 그가 평범해서가 아니라 세상 그 어떤 것도 평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어서다.
- 박찬욱 (영화감독)
현실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완전한 사회는 없다. 어떤 추리소설들은 이 당연한 명제를 고의로 감추지만, ‘마르틴 베크’ 시리즈와 같은 경찰소설들은 이를 끝없이 상기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 역사적인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에서처럼 우리의 자본주의 세계에서는 암살 테러가 일어나고, 복지 제도에서 외면당한 싱글맘이 은행을 털고, 미성년 포르노 제작자가 살해당한다. 마르틴 베크는 범죄가 체제를 무너뜨린다는 것만이 아니라, 체제가 무너진 사회에서 범죄가 일어난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이 세계가 부서지지 않도록 꾸준히 일하는 사람이다. 사건을 해결한다고 해도 사회의 결함이 사라진다는 희망은 가질 수 없다.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가장 훌륭한 점이 이것이다. 우리가 평화로운 세계에 살 수 있다는 환상을 주지는 않지만, 마르틴 베크와 그의 친구들의 노력 덕분에 한순간은 평화를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세상은 끔찍하다. 그걸 알면서도 우리는 살아간다. 누군가 성실히 일하기 때문에.
- 박현주 (작가, 번역가)
얼핏 보기에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는 스웨덴 경찰이나 스톡홀름 시가 홍보용으로 고용할 법한 커플은 아니다. 두 사람이 십 년 동안 ‘마르틴 베크’ 시리즈라는 경찰소설의 틀을 통해 그린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스웨덴은 가혹하기 짝이 없으며, 후반으로 갈수록 그 정도는 심해진다. 그 심각함을 보여주는 것은 엉뚱하게도 점점 강도가 높아지는 유머다. 분노가 너무 심해지다 보니 허탈한 웃음의 빈도가 잦아진달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자. 얄팍하게 미화된 포장은 결코 위대한 도시 이야기의 재료가 된 적이 없다. 도시 이야기의 위대함은 이야기꾼이 도시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모두를 바라보고 고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경우에만 이루어질 수 있다. 셰발과 발뢰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통해 그 위대함을 쟁취했고 1960~1970년대 스톡홀름에 셜록 홈스 시대의 런던에 견줄 만한 신화적 무게를 부여했다.
- 듀나 (소설가)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신간을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간직했다 읽어왔다. 무슨 사건이 등장하든 그 안에서 마르틴 베크의 지독한 피로를 느끼곤 했지만, 동시에 쾌감이 있었다. 정의의 쾌감이라기보다는 성실함의 쾌감, 신뢰의 쾌감 말이다. 시리즈의 마지막 권을 읽으며, 이 세계로 처음 진입하는 독자들이 진심으로 부러워진다.
- 이다혜 (작가, 북 칼럼니스트)
잠들기 전에 ‘마르틴 베크’를 자주 읽었다. 마르틴 베크와 그의 친구들은 매사에 크게 기뻐하지 않지만, 실패에 절망하는 법도 없다. 묵묵히 범인을 잡고 농담을 주고받고 퇴근한다. 사회에 분노하고 시스템에 절망하지만 인간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시니컬하고 우울하고 불만투성이인 스웨덴 경찰 마르틴 베크에게서 위안을 받으며 나는 잠이 들었다. 스웨덴으로 날아가는 꿈을 꾸고 싶었다. 내가 꿈꾸는 최고의 휴가는 이런 모습이다.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스웨덴의 한적한 시골 마을, 옆에는 시원한 맥주가 거품을 뿜고 있고, 두툼한 샌드위치가 조금씩 숨을 죽이고 있다. 내 앞에는 아직 읽지 않은 ‘마르틴 베크’ 시리즈가 놓여 있다. 밤은 길고, 냉동실에서는 스납스(Snaps) 한 병이 차가워지고 있다. 나는 이렇게 중얼거릴 것이다. ‘아직 1권부터 9권까지 읽지 않은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나는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마지막 책을 당분간 읽지 않을 것이다. 최고의 휴가를 위해서.
- 김중혁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