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 아침 7시 반,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황궁 주변에는 조깅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도 그 사람들 사이에서 해자 가장자리를 따라 달리고 있다. 왠지 뉴욕에서 출세 가도를 달리는 엘리트가 된 기분이다.
* 아들러 심리학을 한마디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다만, ‘용기’와 ‘공동체 감각(사회적 관심)’. 이 두 가지 핵심 개념은 분명하다고 정리할 수 있다. 사람을 유형별로 분류하는 데 부정적이었던 아들러가 오직 이 두 가지 부분은 구분지어 연구했다. 이 책에서는 아들러가 남긴 두 축인 ‘용기’와 ‘공동체 감각’을 중심으로 구성하고 그 밖의 관련 키워드를 곁들이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 실수나 잘못한 일, 후회되는 일에 집중하지 말자. ‘왜 그랬을까?’를 연발하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뉘우치고 반성하고 자책도 하지 말자. 당신은 못 하는 일보다 잘하는 일이 훨씬 많다고 아들러는 말한다. 지금 당장 잘하는 일을 적어 보자. 그리고 스스로 “아주 잘하고 있어!”라고 다독여 주자.
* 나는 리카의 말을 잘랐다. 들러 팀장 이름의 유래는 아무래도 좋았다. 그보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었다. 야마모토 과장도 들러 팀장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내가 찾던 멘토를 뜻하지 않게 만난 느낌이다. 나는 점점 들러 팀장에게 관심이 쏠렸다.
* 우리에게 일어난 사건이나 일은 모두 입체적이다. 단 하나로 평가하고 단정지을 수 없다는 말이다. 어느 관점에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른 면이 보인다. 실수나 잘못도 마찬가지다. 먼저 실수를 인정하고 그것이 불러오는 긍정의 효과를 알아보자. 분명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상황에 대한 자기감정에 솔직해지자. 불만족스러운 상황에서 무조건 인내로 참아내려 한다면 역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상황은 바뀌지 않고 보편적 진실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솔직하게 인정하고 개선의 방향을 찾는 게 현명하다. 자기 안의 불만스러운 점을 분명히 알아야 빠져나갈 구멍이 보인다.
* 마음과 몸, 의식과 무의식을 하나로 여기는 ‘전체론’은 아들러 심리학의 주요 이론이다. 아들러 심리학과 로저스가 생각한 ‘자기 개념’과 ‘자기 경험’을 일치시키는 ‘자기 일치(일치성)’는 통하는 바가 많다고 할 수 있다. 자기 일치로 긍정적인 주목과 리프레이밍하는 것. 료는 이를 명심하면서 거짓 없이 참된 용기 북돋우기에 들어간다.
* 이제껏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보지 못했다고 하는 사람이 많다. 부모나 사회적 요구에 의해 여기까지 왔다고 한탄한다. 정말 그럴까요? 아들러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도 결국 자기 결정에 의한 결과라고 한다. 그 선택을 안 하려고 했다면 완강하게 거부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압적 요구가 있었다 하더라도 결국 자기 선택이라는 것이다.
* ‘자기 결정성’은 아들러 심리학의 특징적 개념 중 하나이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문제의 원인을 다른 사람이나 환경 탓으로 돌리고 자신을 정당화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전부 자신이 결정한 일, 전부 자기 결정에 따른 일이다. 그렇게 생각한다.
* 우리는 상대 평가에 능숙하다. 학창시절부터 성적이나 실력으로 남들과 비교당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남들보다 조금 못한 지점이 보이면 바로 ‘열등한 나’가 된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이를 ‘기능 가치’일 뿐 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기능 가치에서는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만, 한 인간으로서 ‘존재 가치’는 누구나 똑같다. 언제 어디서나!
* 자신의 불완전함을 수용하자.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자신을 들들 볶지 말자. 자신마저 그 불완전함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당신은 사회에서 설 곳을 잃게 된다. 혼자 서 있을 수는 없다. 미숙하고 미흡한 부분을 알아야 보완할 수 있다. 자기 긍정과 자기 수용은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며 사회생활에서 에너지로 치환될 수 있는 힘이다.
* 상대를 칭찬하고 인정하는데 자린고비가 되지 말자. 상대를 인정하는 것은 자신이 작아지는 것도 아니고 능력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격을 높이는 결과를 낳는다. 칭찬과 인정은 많이 베풀면 베풀수록 자신에게 돌아오는 신뢰는 대단히 강해진다. 유대는 두터워지고 적극적인 협조를 끌어낼 수 있다. 말 한 마디의 힘을 보고 싶다면 당장 상대를 칭찬해 보자.
* 선의에서 행한 일이 오해를 불러오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선의를 자책하고 원망하게 된다. 그럼 누구의 잘못일까? 선의를 행한 자일까, 아니면 오해한 사람일까? 오해를 받았다면 상대의 심보가 고약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선의를 한 번도 행한 적이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당신이 ‘선의’라고 자신한다면 위축되지 마라. 결정은 당신의 과제이다.
*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의견에 반론이 들어오면 당황한다. 논리적 반격이라면 그나마 인정해 줄 수 있지만 주관적이고 평정심을 잃은 반론은 화나게 한다. 그러나 어떠한 반론도 싸우자고 덤비는 공격이 아니다. 그저 그 사람이 자기 생각의 범주 안에서 뽑아낸 의견일 뿐이다. 그러므로 이런 반론에 감정적으로 대응하면 불상사가 일어나기 십상이다. 공격이 아니므로 당신이 칼을 꺼내면 안 된다는 것이다.
* 아들러가 말한 ‘공동체 감각’은 쉽지 않다. 이론상으로는 쉽지만 자신의 몫에 적용해 결정을 내릴 때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우리는 먼저 소수의 집단에 속에 있고 집단 내에서 생활하며 인간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상황을 배제하고 더 큰 공동체 감각을 키우라고 하기엔 너무 억지스럽지만, 자신의 가치관을 크게 설정하고 따르다 보면 여기에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 신뢰와 신용은 전혀 다른 요소다. 흔히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말에 ‘신용’이 있다. 거래 관계에서 특히 많이 언급되는데 이는 개인 간 신뢰의 문제와는 다른 접근의 방식이다. 신용은 믿음의 정도를 등급을 매길 수 있도록 분류하지만 신뢰는 절대적 신임을 바탕으로 형성된다. 그래서 인생에서는 신용보다 신뢰가 더 힘이 된다.
* 조직 생활에서는 자신의 직급이나 위치에 따라 처신해야 한다. 그러나 이에 맞는 행동 지침이나 정답이 없기에 우리는 우왕좌왕하게 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보게 되고, 자신을 둘러싼 시선들에 부담을 느끼며 어떻게 해야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여기에 대해 아들러는 서로 믿고 의지하라고 말한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신뢰를 쌓으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