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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5km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PCT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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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2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512쪽 | 145*210*19mm
ISBN13 9791188434770

카드 뉴스로 보는 책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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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난희〉

우리의 백두대간처럼 한 맺힌 듯한 오르막과 내리막이 심하게 있는 것도 아니고 카일라스처럼 숭고하고 성스럽지도 않고 히말라야처럼 숨 가쁘지도 않다. 그냥 고유의 색이 있을 뿐이다. 그 색을 아직은 증명할 수 없다. 서서히 내게 스며들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 p.47

매일 우리의 일상은 반복된다. 걷기 아니면 먹기 그리고 잠자기다. 그 외에는 다른 것이 없는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삶을 산다. 길이 삶을 이토록 단순하게 해 준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보통 10시간 정도 걷는 것 같고, 10시간 정도 쉬거나 누워있거나 자는 것 같다. 그 외의 시간은 먹고, 물 정수하고, 막영을 준비하는 것 외에는 하는 일이 없다.
--- p.156

생각도 줄어들고, 걱정도 사라지고, 궁금한 것도 없어진다. 대신 어디까지 가야 하고, 얼마나 왔고, 어디에다 캠프를 칠까? 날씨는 어떤가? 이런 것들에만 관심이 있고 집중을 한다. 얼마나 단순한 삶인가? 걷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고 다니느라 등짐은 무겁지만 생활은 더없이 간편하다. 이렇게 아무 걱정하지 않고, 무엇에 얽매이지도 않고, 욕심부릴 것도 없고, 누구를 시샘할 일도 없는 원초적 일상이 나는 좋다.
--- p.157

자기가 살아가는 온갖 짐을 등에 지고 걸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작게 사는 것, 적게 먹고 적게 버리는 것, 그것이 자연과 나를 아끼는 방법이고 우리 모두를 살리는 방법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러므로 길이 스승인 것이다. 스스로 알게 하는, 오로지 체험만이 참 공부다.
--- p.160

그렇지 않아도 행복에 겨운데 건이가 짠하고 맥주 한 캔을 내민다. 이 친구, 자기는 마시지도 못하는 맥주를, 나를 위해 나 몰래 지고 왔나 보다. 우리는 짐의 무게 때문에 칫솔도 반 토막으로 잘라서 가지고 다닌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과감하게 줄여버리는 짐인데 맥주라니. 나는 감동한다.
--- p.189

서로가 하기 힘든 얘기를 하고 난 후 약간 먹먹했지만 나는 웃으며 그의 어깨를 친다. 잘 됐다고, 나도 너도 오히려 잘 됐다고 말한다. 진심이다. 만약 우리가 그때 각자 하고자 하는 것을 성취했다면 지금 살아 이 PCT를 올 수 있었을까? 어쩌면 등 떠밀리듯 더 높은 산을 전전하다가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 p.195

길은 내가 걷지 않으면 절대로 줄어들지 않는다. 오로지 내가 걷는 한 발자국이 모여서 길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내가 나를 믿고 그리고 길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 p.316

우리가 걸은 트레일은 단조로움이 함축된 세계다. 매일 똑같은 리듬과 지극한 단순함에 적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인위적인 규칙이나 규범, 기준이 없는 곳이다. 오직 자연과 인간적인 척도만 있는 곳이 우리의 세상이었던 PCT다. 모든 것을 스스로, 오로지 자신이 행하고 자신이 책임진다. 철저히 독립적으로 야생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본인이 스스로 자연임을 인식하게 하는 그 시간들은 참으로 축복받은 시간이었다.
--- p.330

〈정건〉

언니가 그렇게 언니의 아픈 얘기를 지나가듯 흘릴 때 나는 고마웠다. 뭔가 얘기를 하는 것이 치유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p.253

나는 산에 가는 것만큼 산을 내려오는 것도 좋다. 그냥 산에 빠져 몇 달 동안 전 구간을 통째로 끝내는 스루 하이커들의 집념과 노고를 가히 어느 무엇과 비교할까마는 산에 너무 오래 있으면 산에 동화하는 것보다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아니면 언제 오냐 하며 억지로 버티는 산보다 내려가야 할 때 내려가는 산이 나는 좋다.
--- p.250

그날 구름이 많이 끼고 저 멀리 먹구름까지 어우러져 하늘과 파노라믹 캐스캐이드 능선의 멋진 풍경은 우리를 잠시 멍하게 만들었다. 나는 무슨 마음이 들었는지 왠지 에스테라에게 미안하고 고마웠다. 나는 땀으로 찬 핑크빛 얼굴의 에스테라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고맙다. 이곳에 이렇게 함께 해주어서.”
에스테라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아니야, 내가 고맙지. 너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여기 너무 멋진 곳이다.”
모든 감정적인 응어리가 녹고 다 용서하고 용서받은 느낌이었다. 고개를 내려오면서 우리는 그렇게 화해를 한 듯했고 산행을 그렇게 마무리했다.
--- p.486

특히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한 난희 언니와 동행은 특별하다. 본인이 리더였지만 내게 리더를 맡겼고 날 믿고 따라와 주었다. 내가 확신이 없거나 흔들릴 땐 언니는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날 위로했다.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를 보호하고 이끌고 있다며 언니는 믿고 감사했다. 나도 그 뒷배를 믿고 언니와 걸었던 지난날은 불안감 없이 늘 듬직했다.
--- p.510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PCT를 계획하고 실행하면서 이런 내가 좋았고 걷고 있는 지금이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 믿었다. 이젠 그 PCT를 마무리할 때가 된 것이다. 특혜를 누렸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허락해 준 PCT와 지난날 함께한 산우들에게 감사한다. 이렇게 길을 마무리하는 가슴 한편에서는 〈BTS〉의 노래 가사처럼 나의 최고의 시간은 아직 오지 않았고 다가올 그것을 위해 나는 다시 가슴이 설렌다.
--- p.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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