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적 안녕한 당신의 하루
아들을 원하는 아버지가 ‘유용진’이라는 이름을 지어두었지만, 성기가 불완전한 여자로 태어나고 만 ‘유진’.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가랑이 사이로 쑥 자라난 이상한 물체를 발견하고 병원을 찾았다가 자신이 남자로 태어났음을 알게 된다.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하지 못하는 유진. 점점 나락으로 떨어져가는 그녀의 삶 앞에, 한때 그녀가 좋아했던 ‘석문’이 나타난다. ‘비교적’ 안녕한 그들의 하루.
구체성이 불러오는 비루함에 관하여
구자동 312-9번지, 언덕을 야금야금 좀먹고 지어진 무허가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인 달동네 판자촌. “도둑놈의 새끼”란 얘기를 늘상 들어오면서 살아온 남자가 있다. 그의 비좁은 방 안엔 이제는 치매까지 걸린 좀도둑 아버지가 있다. 이 비루함에서 빠져나오려 모든 노력을 다해보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이제 그에게 남은 선택은, 아버지를 버리고 떠나는 것뿐이다.
아무 말도 하지 마
어느 대학 뒷골목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하숙집. 잘 모르는 사이였던 옆방의 남자가 갑자기 문을 두드리더니, 삼만원을 빌려달라고 한다. 외면하는 ‘고’의 눈길 너머로 사라진 남자는 다음날 세탁실에서 목을 메고 자살한 채 발견된다. 남자는 왜 하필 고의 방문을 두드렸던 걸까.
어차피 당신은
언어장애를 겪고 있는 한 노인이 있다. 몇 해 전 찾아온 딸이 그의 장애를 걱정하여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창밖을 통해 ‘보빗 양’을 지켜보는 것이 노인의 유일한 낙이다. 살이 통통하게 찐, 하는 일이라곤 대문 앞에 나와 담배를 피우며 휴대폰을 사진을 몇 장 찍는 것이 전부인 보빗 양. 어느 날, 노인은 그런 보빗 양이 살해당하는 장면을 목격하고 만다.
나선의 방향
교통사고로 인해 목소리를 잃은 형과, 자신을 지키다 변을 당한 형에게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동생. 옷장사를 하며 생계를 책임지는 동생의 노력과 헌신으로 인해 생활이 안정되면서, 형은 동대문에 남아 옷을 떼고 동생은 지방에서 받아 팔기로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형 앞에 의문의 여인 ‘말임’이 나타난다. 그리고 곧, 사라진다.
다만 허공
“허공 위에 사는 것 같아요.” 생애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사람이 공허함에 가득 차 이렇게 말한다. “그래, 나도 허공을 나는 것 같아.” 그는 행복한 착각 속에 대답한다. 그들의 어긋남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비정규직 콜센터 직원인 ‘이원영’ 앞에 나타난 이상한 나무문. 허공을 걷는 듯한 삶에서 탈출하기 위해, 그는 기꺼이 나무문을 열고 들어간다.
괜찮아요, 아빠
어느 날 한 여자가 택시를 타고 한강 다리로 가 두 아이를 내던진다. 그리고 죽은 큰딸의 유령이 세상을 떠나지 못하고 아빠의 곁을 맴돈다. 절름대는 다리로 택시를 이끌고, 한강변에서 딸을 찾아헤매는 아빠. 여자아이는 이제 곧 수면 위로 떠올라야 한다. 하지만 아이가 떠오르고 나면, 불쌍한 아빠는 누가 돌볼까.
안절부절 모기씨
잘 팔리지도 않는 전자담배를 팔며 근근이 생활하고 있는 ‘목이준’씨는 늘 안절부절이다. 숙부 덕택에 들어가게 된 ‘거지연립’에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끔찍한 사건들을 상상하느라 하루가 모자란 목이준씨. 그의 상상 속에서 식당을 하는 숙부는 조선족 여직원을 겁탈하고, 숙부의 장성한 아들은 친구들과 모여 비행을 일삼는다. 안절부절 모기씨는 과연 평화로워질 수 있을까?
도그하우스
극성스레 개를 사랑하는 엄마 때문에, 늘 열 마리나 되는 개들과 함께 자라난 한 남자아이가 있다. ‘비교적’ 온전히 자라나 학교에도 가고 학원에도 가게 된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독차지한 개들이 싫다. 개에게 초콜릿을 먹이면 죽는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듣고는 늙은 개에게 초콜릿을 먹이는 아이. 결국 남자아이는 엄마의 관심을 끌기 위해 기찻길로 뛰어든다.
안
무수한 ‘안’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또다른 ‘안’의 이야기. 안을 사랑하는 안. 안을 멸시하는 안. 안을 종용하는 안. 소외와 폭력으로 이루어진 삶을 안은 무수히 경험해나간다. 희망할 수도, 절망할 수도 없는 삶. 이제 옹송그렸던 안이 일어선다. 그러나 다시는 안에게 돌아오지 않을 안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