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모래와 바람과 빛과 밤의 남자와 여자들이었다. 그들은 마치 꿈속에서처럼 모래언덕 꼭대기에 나타났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내려온 듯, 공간의 혹독함이 사지 속에 밴 듯한 모습으로. 허기, 갈라진 입술에 피가 배어나오게 하는 갈증, 태양만이 번득이는 잔혹한 침묵, 추운 밤, 은하수의 섬광 그리고 달, 이 모든 것을 그들은 몸속에 품고 있었다. 그와 함께 석양에 내리깔리는 거대한 그림자, 벌어진 발가락에 밟히는 순결한 모래의 파도들, 도달할 수 없는 지평선을 지니고 있었다. 그 무엇보다도 두드러진 것은 눈의 공막 속에서 더욱 투명하게 반짝이는 시선, 그 광채였다.
--- p.9~10
때때로 거센 폭풍이 불어와 모든 것을 쓸어가버린다. 그러면 그다음날에는 다시 마을을 건설해야만 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웃으면서 일한다. 너무나 가난해서 갖고 있는 것을 잃어버리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그것을 만족스럽게 여기기도 한다. 폭풍이 지나간 후 그들 머리 위의 하늘은 더욱더 크고, 더 파래지고, 햇빛 역시 더욱더 아름답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테 주위엔 아주 편편한 평지와 먼지바람, 그리고 너무나 광대하여 한눈에 다 볼 수 없는 바다밖에 없다.
--- p.86
랄라는 그녀 앞에 있는, 햇빛 눈부신 커다란 사막을 타인의 눈으로 바라본다. 모래구름을 일으키는 남쪽 바람이 피부에 와닿고 모래언덕의 뜨거운 모래가 맨발에 닿는 것이 느껴진다. 무엇보다도 머리 위, 빈 하늘, 순수한 태양만이 불타고 있는 그늘 한 점 없는 하늘의 광대함이 느껴진다. 이제 한동안 그녀는 자신을 잊고 누군가 다른 사람, 먼 곳에 있는 잊힌 사람이 된다.
--- p.94
절망이 사람들을 엄습했다. 사막의 투사들과 마 엘 아이닌의 무적의 청색 인간들조차 지쳤다. 그들의 시선은 믿음을 잃은 사람들의 눈빛처럼 소심해졌다.
그들은 작은 무리를 지어 팔에 소총을 비스듬히 기대놓고 말없이 앉아 있었다. 누르가 물을 마시려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러 갔을 때 가장 무서웠던 것은 그들의 침묵이었다. 그들은 마치 죽음의 위협을 받아 서로 사랑할 힘을 다 잃은 사람들 같았다.
--- p.252
그러나 그녀는 자고 싶지 않다. 모든 것을 잊고 몸을 맡겨 잘 수 있는 곳이 어디 있겠는가? 이 도시는 너무나도 위험하다. 가난한 소녀들은 불안 때문에 부유한 아이들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밤의 정적 속에는 너무나도 많은 소리가 들린다. 배고픔의 소리, 두려움의 소리, 고독의 소리가 들린다.
--- p.329
이따금 하와는 그를 쳐다본다. 식당에서, 공항 대합실에서, 사무실에서 사람들을 쳐다본다. 그녀의 시선은 마치 그들을 말소시키고 종국에 가서는 그들 자신이 귀속하여야 할 허무 속으로 돌려보낼 것만 같다. 그녀의 이런 이상한 시선을 볼 때면 사진가는 추위가 몸속을 파고드는 듯한 전율을 느낀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는 알 수가 없다. 아마 랄라 하와 속에 살고 있는 또다른 존재가 그 눈으로 이 세상을 쳐다보고, 판단하는 것이리라. 이런 순간에도 거대한 도시와 강, 광장, 거리 등, 이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막막한 사막과 모래, 하늘, 바람만 보이는 것 같다.
--- p.380
커다란 홀에는 이제 벽도 거울도 불빛도 없다. 그것들은 춤의 현기증으로 말미암아 뒤집히고 사라졌다. 이제 희망 없는 이 도시, 심연 같은 이 도시, 길은 덫과 같고 집은 무덤과 같은 이 도시는 사라졌다. 거지와 매춘부의 도시는 자취를 감추었다. 춤추는 사람들의 취한 시선이 이 모든 장애물과 오래된 거짓들을 다 지워버렸다. 이제 랄라 하와의 주위에는 끝없는 먼지와 하얀 돌이 펼쳐진다. 모래와 소금이 살아 있는 공간, 모래언덕의 파도들이 펼쳐진다. 마치 옛날에, 모든 것이 끝날 것처럼 보이던, 염소들이 다니는 오솔길 끝에서처럼 땅 끝, 하늘 바로 밑, 바람의 문턱에 와 있는 것 같다.
--- p.386
민간인 관찰자는, 장교들과 같이 말을 타고 가면서 늙은 대족장의 실추를 기다리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생각한다. 그들은 바로 북아프리카의 유럽인들이다. 사막 사람들은 그들을 ‘기독교인’이라고 부른다 ― 하지만 그들의 진짜 종교는 황금과 돈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던가? (……) 물밀듯이 몰려오는 이 돈과 총알의 파도에 맞서, 스마라의 노인 혼자서 더이상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땅과 도시를 탐내는 자들, 사람들의 가난을 담보로 부를 원하는 자들에 맞서, 막다른 골목에 몰린 동물처럼 아무리 매서운 눈매를 한다 한들 그 시선이 무슨 힘이 있으랴?
--- p.406~407
고통 때문에 시간의 속도가 느려졌다. 시간은 심장의 박동과 숨쉬는 폐의 리듬을 따라, 자궁 수축의 리듬을 따라 맥박친다. 랄라는 무화과나무 둥치에 기대어 천천히, 굉장히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듯이 자기의 몸을 일으킨다. 옛날 그녀가 태어날 때 그녀의 어머니를 도와준 나무처럼 이제 그녀를 도와줄 수 있는 것은 이 나무밖에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 본능적으로 그녀는 조상의 몸짓을 되풀이한다. 그 몸짓의 의미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그녀 개인을 초월하여 전달된 것이다.
--- p.4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