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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인생 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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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3월 22일
쪽수, 무게, 크기 360쪽 | 432g | 135*200*20mm
ISBN13 9791193358689
ISBN10 119335868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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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미안해. 성인식 날 후리소데 못 입게 돼서. 엄마, 미안해. 뭐 하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딸이라서. 언니, 미안해. 가끔은 다정하게 굴지 말라고 생각하는 쌀쌀맞은 동생이라서. 미안해. 제일 늦게 태어났으면서 제일 먼저 죽어서.
--- p.17

빛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을 따라가며 마쓰리는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했던 그때처럼 조용히 북받쳐 오르는 감정 속으로 몸이 빨려 들어갔다. “뭐 재미난 일 없을까?” 빛의 저편으로 빠져나간 순간, 마쓰리는 처음으로 숨을 쉰 것처럼 해방감을 느꼈다. 드디어 자기만의 숨구멍을 찾은 듯했다.
--- p.41

숨을 턱턱 막히게 하는 질투가 사그라들고 나면 어김없이 자기혐오에 빠졌다. 그럴 때마다 자주 발작을 일으켰다. 발작이 일어날 때마다 이대로 죽여 달라고 빌었다. 죽고 싶다고 생각한 건 시한부 선고를 받았을 때가 아니었다. 추해지는 자신을 참을 수 없게 됐을 때였다.
--- p.56

마쓰리는 식탁에 앉을 때마다 불안했다. 매번 등 뒤에 기분 나쁜 그림자가 서 있는 듯한 긴장감이 돌았다. 빈자리가 하나 더 늘면 이 식탁은 붕괴하는 게 아닐까 상상하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살고 싶다. 더는 빈자리를 만들지 않고 계속 이 자리를 지키고 싶다. 그렇지만 마쓰리는 웃기 위해서 기쿄와 같은 행복을 단념하는 쪽을 선택했다. 애걸복걸 매달리고 뜻대로 되지 않는다며 울부짖기보다는 포기하고 떨쳐내고 웃는 쪽이 자신다운 삶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 pp.86-87

새하얀 벽으로 둘러싸인 병실은 창문이 손바닥만큼만 열렸다. 활짝 열리면 좋겠다는 생각은 입원 초기에만 했다. 그게 환자의 자살을 막기 위한 거라는 사실을 깨달은 순간, 마음이 극도로 피폐해졌다.
--- p.92

“다르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건지 몰랐어요. 10대 때는 방황하더라도, 방황하는 방식은 모두 같았거든요…. 지금은 너무 자유롭고, 가로막는 틀이 없는 게 무서워요…. 이제 와서 이런 몸으로 내 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조마조마하고. 남들과 같지 않다는 사실이 너무 무서워요.”
--- pp.200-201

생명이 사랑스럽고 시간이 애달파서 미칠 것 같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일이야말로 죽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가여운 나 자신과 이별하는 일도 죽음이다. 이럴 줄 알았다면 나 자신을 좀 더 소중히 여길걸. 나를 가장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데. 좀 더 일찍 이런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았을 텐데.
--- p.233

한계였다. 계속 거짓말을 하기도 지쳤다. 그만 자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포기가 아니었다. 끝까지 완주하고 나서 오는 피로감이었다. 그렇기에 죽을 것 같이 피곤해도 만족스러웠다. 이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그만 잠들고 싶다.
--- p.288

죽음만이 유일한 안식이라 생각했던 나를, 네가 살게 해줬어.
그래서 나는 죽음이 무서워졌어. 죽는 게 무서워.
그렇기에 내가 지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더더욱 실감하게 됐고.
가즈토. 고마워.
--- p.301

하얀 세상 속에서 ‘아, 이제 끝이려나.’ 생각한 그때, 굉장한 힘에 의해 아래로 끌려 들어가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침대 프레임을 꽉 붙잡았다. 그런데도 차마 저항할 수 없는 힘이 계속 잡아당기는 듯해 옆에 있던 의사의 가운을 움켜쥐었다. 무서웠다. 당연하지만 예고 없이 찾아온 ‘죽음’으로 끌려 들어가는 그 감각을 경험하고 나서 나는 격하게 동요했다.
--- p.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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