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라. 방황하는 이들 모두가 길을 잃은 사람들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러나 길을 잃어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저자의 말」중에서
사건의 시작은 이러하다. 평범한 수요일 오후의 숲.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어맨다 엘러(Amanda Eller)가 등산로에서 천천히 걷고 있다. ( ··· ) 그녀는 다양한 양치류 식물들 위로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디며 길에서 몇 걸음 벗어나, 쓰러져 있는 나무에 기대고 누워 잠시 눈을 감고 고요한 휴식을 취한다. ( ··· ) 다시 몸을 일으켜 등산로로 돌아가려고 하자, 어찌 된 일인지 길을 찾을 수 없다.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 것이다. 엘러는 길을 잃었다.
---「1장 어맨다 엘러, 길을 잃다」중에서
신경과학자들은 이제 장소세포(place cell), 격자세포(grid cell), 머리방향세포(head-direction cell) 등 길 찾기에 관여하는 매우 다양하고 특별한 뉴런 집단을 식별해 설명한다. 관련해 뇌의 다양한 영역이 우리가 길을 찾을 수 있도록 협력한다. 해마, 전전두엽, 해마주변 위치영역, 내후각 및 후뇌량팽대피질, 미상핵 등이 협업해서 끝없이 펼쳐지는 세계의 지도를 제공하고 우리의 탐험을 돕는다.
---「2장 길 찾기의 시작과 끝, 기억」중에서
장소세포의 힘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하다. 인간이 마침내 화성에 가게 된다면, 장소세포는 우리가 화성에서도 길을 찾을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 펜턴은 말한다. 장소세포 덕분에 우리는 전체 우주의 지도를 만들 수 있다. 심지어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가상의 세계도 탐험할 수 있다. “우리는 호그와트라는 이야기 속 세상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3장 장소세포라는 길잡이」중에서
2018년 6월 전까지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은 수십 년 동안 운전을 금지당했다. 도로 시스템을 사용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길을 찾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이러한 나라에서 남녀 간 길 찾기 능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으로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3장 장소세포라는 길잡이」중에서
“방향감각이 좋은 사람들은 랜드마크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머릿속 나침반을 이용합니다. 그들은 눈을 감으면 자신이 어느 쪽으로 향해 가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더 잘 알게 되죠. 내 생각에 그런 사람들은 전정계에서 나오는 정보를 더 잘 활용하거나, 아니면 아예 다르게 활용하는 것 같습니다.”
---「4장 우리 머릿속의 나침반과 격자」중에서
무의식적인 수준에서 뇌는 옷장이 아무리 문과 비슷해 보여도 그것을 통해서는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또한 후두위치영역이 하는 일이라고 엡스타인은 말한다. 우리가 벽에 걸린 그림이나 냉장고를 통해 방에서 나가려고 시도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후두위치영역 덕분이다.
---「4장 우리 머릿속의 나침반과 격자」중에서
시간이 흘러 인간의 뇌가 재구성되고 성장하면서, 일부 영역은 다른 영역보다 더 큰 변화를 겪었다. 이런 식으로 호모사피엔스는 상징주의자가 되었다. 뇌가 더 크고 둥글게 성장하면서 약간 뒤쪽에 위치한 두정엽이 급작스럽게 팽창했다. 두정엽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신체와 그 신체의 공간적인 위치에 관한 감각정보를 처리하는 것이다. ( ··· ) 그런데 굴절적응이 일어나면서 다수성(numerosity) 같은 복잡한 개념을 이해하고, 공감 같은 섬세한 감정을 느끼며, 무엇보다 길 찾기가 가능해졌다. ( ··· ) “시공간의 인지, 수학적 사고, 운동의 형상화 등은 두정엽에 크게 의존한다. 이러한 인지 영역에서 발휘된 아인슈타인의 뛰어난 지적 능력과 그가 스스로 일컬었던 과학적 사고방식은 하두정소엽(inferior parietal lobule)에 있는 평범하지 않은 해부학적 구조와 관련될지 모른다.”
---「5장 길을 찾도록 진화한 존재」중에서
크라스틸은 경로통합을 “이동할 때 위치와 방향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경로통합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사막의 개미집이나 낯선 도시의 호텔처럼 돌아가야 할 장소의 위치를 꾸준히 기록하는 것이다. 크라스틸에 따르면 인간의 경로통합 기술은 다른 종들에 비해 그리 뛰어나지 않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뇌는 더 복잡한 시스템을 이용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발전해왔다.
---「6장 수많은 정보를 통합하는 능력」중에서
이아리아의 관심사는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다. 그는 지난 10여 년 동안 선천적으로 방향감각이 없는 이들을 찾아다녔다.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이들은 직업도 있고 다른 기능에서는 전혀 이상이 없지만, 길을 찾을 때 매우 부분적으로 장애를 겪고, 어린 시절부터 아주 익숙한 환경에서도 길을 잃는다는 점이 다릅니다. 이런 유형의 발달장애에 관해 언급한 문헌이 없었기 때문에, 이 증상을 ‘발달 지형학적 방향감각 상실장애(development topographical disorientation)’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일명 DTD라고 알려진 증상이다.
---「7장 오직 길 찾기 능력과 관련된 장애」중에서
몇몇 가족을 조사한 뒤 이아리아는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모든 DTD 환자의 부모 중 최소한 한 명은 DTD 환자라는 사실이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셈이다.
---「7장 오직 길 찾기 능력과 관련된 장애」중에서
‘인간의 뇌는 모두 비슷하다’는 말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 쿠바의 아바나, 벨기에의 브뤼셀은 인구 200만 명이 넘는 대도시므로 모두 비슷하다는 말과 비슷하다. 하지만 브뤼셀은 메카가 아니고, 메카도 브뤼셀과는 다르다. 이런 식으로 종종 과학은 우리를 오류로 이끈다. 과학은 이상치를 무시한다. 불편하기 때문이다.
---「8장 유전자에 새겨지는 경험」중에서
한마디로 뇌는 신경가소성이 뛰어나지만, 무한대로 확장하지는 않는다.
---「8장 유전자에 새겨지는 경험」중에서
편리함에는 대가가 따른다. 런던 택시 운전기사의 뇌를 떠올려보라. 해마(특히 뒷쪽)가 커지며 엄청난 길 찾기 능력을 얻었지만, 그만큼 다른 뇌 영역이 줄어들며 연관기억 능력을 희생해야 했다. 우리가 내비게이션에 너무 의존한다면, 더는 우리 몸 안의 강력한 길 찾기 시스템은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방치하고 사용하지 않은 해마는 결국 반응하지 않게 된다.
---「9장 GPS와 내비게이션, 그리고 쪼그라드는 뇌」중에서
피험자들이 아무런 의심 없이 GPS 기기의 지시사항을 따라 세븐 다이얼스를 통과활 때, 스피어스는 해마가 ‘머리 굴리기(mental gymnastics)’를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해마는 기능하지 않은 채 침묵했다.
---「9장 GPS와 내비게이션, 그리고 쪼그라드는 뇌」중에서
길 찾기는 인간이 수행하는 가장 복잡한 인지작업 중 하나다.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하루에도 1000번씩 길을 찾는다.
---「10장 어맨다 엘러, 길을 찾다」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