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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것만 같던 마음

창비시선-502이동
이영광 | 창비 | 2024년 05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10.0 리뷰 1건 | 판매지수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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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5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140쪽 | 190g | 125*200*10mm
ISBN13 9788936425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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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과 머묾이 한자리인
강물을 보며,
무언가를 따지고
누군가를 미워했다
모든 것이 나에게 나쁜 생각인 줄
모르고서
흘러도, 답답히 흐르지 않는
강을 보면서,
누군가를 따지고
무언가를 미워했다
그곳에서는 아무것도 상하지 않고
오직 나만 피 흘리는 중이란 걸
모르고서
그리고 그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 줄도
까맣게 모르고서
--- 「강가에서」 전문

멀고 깊은 곳에 넋을 내주고
단지 남은 것으로서
메마름 같은 것에 쫄딱
젖고 싶었는데,
어두워졌어 내가 약하니
비 오다가 해나다가 하는 기후엔
정신도 정신이 없으려 한다
오늘은 조시를 쓰고
내일은 축시를 써야 해
나는 별에서 살고 있다는데
빛이 안 보일 때가 많았어
안 보이는 그게 무슨
대수라고, 대수인가, 대수인
모양이어서
어두운 날, 영영 칼이 없고
칼 생각도 없는데도
빛을 베며 걷는 중이라
굳게 믿었네
--- 「제자리」 중에서

얼음 위에 피운 모닥불처럼
물을 끄며 타는
불처럼

미워하는 마음

둥둥 물 위를 떠가는 얼음장들,
꺼진 불을 만져주는 봄볕처럼
물에 젖는 불처럼

미워하는 마음을
미워하지 않는 마음
--- 「미워하는 마음을」 전문

더는 슬퍼지지 않고
더는 죽을 것 같지 않아지던
마음 밑에 어른거리던
어두운 마음
어둡던 기쁜 마음
꽃밭에 떨어진 낙엽처럼,
낙엽 위로 악착같이 기어나오던 풀꽃처럼
젖어오던 마음
살 것 같던 마음
반짝이며 반짝이며 헤엄쳐 오던,
살 것만 같던 마음
같이 살기 싫던 마음
같이 살게 되던 마음
암 같은 마음
항암 같은 마음
--- 「어두운 마음」 중에서

생각하면 나는
사랑의 포로였고
슬픔의 포로였고
허무의 포로였다
죽음의 포로였고
불안의 포로였고
희망의 포로였다
생각하면 나는
기운이 넘치는
절망의 포로였고
생명의 포로였고
자유의 포로였는데,
도대체 나는
묶이지 않으면
살지를 못했는데,
이 튼튼한 무균 감옥에
오래된 금이 가고
오염물질처럼,
맑고 깨끗한 공기가
스며들려 한다
해롭기만 하고
기운이라곤 없는
평화의 바람이
불어오려 한다
--- 「평화의 바람」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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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있을까. 어떻게 마음을 말할 수 있을까. “얼마나 옳은지”, “얼마나 미안한지” 모르는 마음은 어느 고개 너머에 있는 것일까. 너머라는 말은 거창해 보인다. 그러나 시인은 거창하지 않은 오해로부터 마음을 가늠할 수 있는 고개를 넘고 넘는다. 누구에게나 생활이 있다. 생활이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정황들에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너머에는 호명되지 않은 생활과 마음이 있다. 그곳에는 “같이 살기 싫던 마음”과 “같이 살게 되던 마음”이 동거하고 있다. 오해를 거듭하는 생활은 도처에 놓여 있던 “그림자의 그림자” 같은 마음들과 고개를 넘어가고 있다. 먼저 생활하고 있다.

단지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선생이라 부르지 않는다. 먼저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선생이라 부를 것이다. 그들은 고개 너머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먼저 묻는 사람. 생활이라는 숭고한 일을 어떻게 바르게 오독할 수 있을지 받아 적는 사람일 것이다.

시인은 살다보니 “답이 안 나오는 계산을/나는 열심히” 했다고 “살 것 같던 마음”을 오독했노라고 말할 테지만 읽고 있자니 “살 것만 같던 마음”이 “반짝이며 헤엄쳐” 범람하고 있었다고 되레 고백하고 싶어진다.

비로소 “살 것만 같던 마음”으로 “사라져서 더는 나타나지 않던 얼굴들”을 하고 있는 서로에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바라보고 있자니 숭고해진다고, 그 얼굴들을 “사랑하지 않을 용기”가 도무지 없다고.
- 홍지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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