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버지의 출근과 퇴근을 여전히 기억한다. 아버지는 출근하시면서, 그러니까 나를 잠시 홀로 두시면서 항상 내게 ‘하루치 간식값’을 주고 가셨다. 나는 아버지가 주신 돈을 지혜롭게 잘 나누어 쓰면서 아버지의 퇴근을 기다렸다.
사람의 생애도 비슷한 것 같다. 우리 영혼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은 우리가 쓸 것을 적당히 나누어 주시고 잠시 우리의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 나갈 기회를 주신다. 물론 아버지의 집 안에서 우리는 보호받지만, 선물 받은 시간은 우리가 자유롭게, 또한 책임 지고 일구어 나가야 한다.
그리고 아버지가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면, 아니지, 우리가 때가 되어 주님을 뵈면, 주님은 선물을 한가득 들고 나를 기다리고 계실 것이다. 나는 다시 어린아이가 되어 그 주님의 목을 끌어안으며 기뻐할 것이다. 아버지가 ‘우리 미소, 종일 나를 기다렸지? 심심하진 않았니? 힘든 일은 없었고?’ 물어보시면, 나는 그제야 활짝 웃으며, 하루의 기다림은 싹 잊은 채, 아버지와 모든 가족과 함께 진짜 축제를 누릴 것이다.
그래서, 믿는 사람의 삶에는 지옥이 있을 수가 없다. 낙원 같은 축제를 기다리거나 축제 그 자체의 삶을 사는 것이다.
잠시 험난하고 아파도, 우리는 ‘결과적으로 천국’에 살고 있는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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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혜택들이 내게 자랑이 된다기보다는, ‘감사’와 ‘사랑의 확신’이 되어 나를 행복하게 해 준다. 자랑은 남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남이 있어야’ 행복할 수 있다. 그건 좀 불완전하다. 계속 채워지지 않으면 갈증도 생긴다. 하지만 내가 사랑받는다는 확신은 굳이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사소한 불편 쯤이야 금세 잊게 만든다. 나는 이미 충분하고, 충만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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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안일하게 살면 무슨 발전이 있겠냐고. 상위 1%가 되려면 무던히도 노력해야 한다고 말이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누구나 다 리더가 되고, 누구나 다 1%의 삶에 들고 싶어 한다면, 그 시대가 발전할 수 있을까?
사회가 건강하게 발전하려면, 각자 자기 삶을 잘 살면 되는 것이다. 그 안에서 각자가 행복하면 된다. 너무 큰 꿈, 너무 높은 곳은 보지 말고, 눈 위 이마 정도만 보고 살면서 현실에 만족하며 살면 행복 지수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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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아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던 어느 날, 드디어 임신이 된 듯하였다. 배가 불러오고, 입덧까지 하였다. 아기가 잘못될까봐 외출도 거의 자제하였다. 몸을 조심조심 지키며 지내다가 병원에 가보니, 의사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이가 없습니다. 임신이 되지 않았어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이렇게 배가 부르고, 태동이 느껴지고, 입덧까지 하는데, 임신이 아니라니. 어렵사리 말을 꺼낸 의사와 나보다 더 파랗게 질린 간호사의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상상 임신입니다.”
--- p.59
사람들 대부분은 재벌이나 재산이 많은 사람을 가리켜 “저 사람은 잘 살아”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재산이 많아도 재벌의 자리에 있어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과욕과 갈등으로 인해 가정과 인간관계가 불화를 넘어 파탄이 나는 경우도 내 주위에 있었다.
재산을 부정하게 불법으로 많이 축적한 사람들에게 “저 사람은 잘사는 사람이야”라는 말은 정말 맞는 표현일까?
재산이 많은 사람에게는 “저 사람은 부자야”라고 말하고 재산이 부족한 사람에게 “저 사람은 못 살아”라는 표현보다는 ‘가난해.’라는 표현이 맞을 것 같구나. 가난하더라도 정당하고, 행복하게, 그리고 남들에게 선함을 베풀며 사는 사람들에게 나는 “저 사람은 잘살고 있다”라는 표현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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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 얼음새꽃을 좋아합니다. 마치 주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피어나는 영혼 같기 때문입니다. 죽음 같은 겨울을 지나 소생하는 봄을 알리는 얼음새꽃처럼, 예수 안에 있는 영혼은 사망 뒤에 오는 생명의 계절을 알립니다. 얼음새꽃을 사람의 손으로 키워내지 못하듯이, 예수 안에 있는 영혼은 오직 하나님의 손으로만 키워냅니다. 얼음새꽃이 음지에서 ‘슬픈 추억’을 머금고 있지만 햇살을 받아 ‘영원한 행복’의 빛으로 반짝이듯이, 예수 안에 있는 영혼은 시련 속에서 ‘슬픈 추억’을 간직한 듯 보이지만 은혜의 햇살을 받아 ‘영원한 행복’으로 세상을 비추며 노래합니다.
--- p.77
바람난 여자
꽃비가 내리던 날
바람이
향내를 싣고
귀를 간질이며 소식을 전한다.
기다리고 있노라고
일주일 전에는
살짝 얼굴만 붉히더니
어느 결엔가
홍조가 되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노라고
바람난 여자는
겨울이 길 터준 연두 빛 봄 길을 달려
집빠귀 새가 둥지를 틀고 있는
홍도화 꽃그늘에 안겼다.
얼굴만 붉히던 홍도화는
오늘은 화려한 자태로 유혹했다!
정숙해야할 선암사 절간을 붉게 물들인
홍도화!
너 때문에
나는 바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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