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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시선-503이동
이소연 | 창비 | 2024년 06월 05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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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6월 05일
쪽수, 무게, 크기 148쪽 | 172g | 125*200*9mm
ISBN13 9788936425036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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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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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부터 시작된 나라공원의 전통 행사

상처 입지 않기 위해
서로의 가장 빛나는 뿔을 잘라내야 한다면

아프지 않을 수 있나요

사슴은 뿔을 잘리고도 풀을 뜯고
길가에선 가지 없는 나무가 자랍니다
---「사슴뿔 자르기」 전문

저녁을 담아놓은 자루 같다
저 하늘
껍질이 있다는 듯
벌어져 있다
아침을 위해 저녁을 쏟아붓는다는 듯

바람을 붙잡지는 못해도
마음을 붙잡는 법은 알아

자루 같은 몸에서
오늘은

바람 끝에 풀이 가늘게 자랐다
---「돌려세우기」 전문

여름이 흙탕이다
당신이 그만큼 엉망진창이라는 뜻이다

속을 모르겠다
화낼 건 다 내고 싶다
사랑한다는 말은 믿을 게 못 된다

(…)

죽도록 미워하려고
중랑천 끝까지 걸어가는 동안
죽도록 사랑하고픈 마음이 생기고 난리다
---「죽도록, 중랑천」 중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배롱나무를 본다
백년 동안 뿌리 내릴 곳을 찾는다는 그늘을 본다

시 한 구절이 작게, 굽은 등을 하고
내 빈 종이를 들여다본다

한 발로 서 있는 새가
물에 빠진 바닥을 찍어 올리듯
---「작게, 굽은 등을 하고」 전문

몸엔 많은 모서리가 숨겨져 있다
양 한마리를 껴입고서야
모서리를 본다

보풀이 일어나야 사는 것도 있다
달과 부들이 그렇고
사마귀알집과 누에도 그렇다

보풀은 지구에서만 자라는 풀
마찰이 있는 곳에서만 돋는 풀

늙으면 가장 먼저 발뒤꿈치에 핀다는 풀
죽음이 스치는 동안 피는 꽃
너와 나
---「보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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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집엔 자신의 마음을 끝까지 바라보려는 사람의 모습이 있다. 읽는 사람을 무장해제하는 이소연의 시를 나는 좋아한다. 이를테면 그립고 정다운 도깨비시장 사람들을 꼭 하나하나 불러들이는 문장이나, 수건을 개키다 수건의 역사에 대한 생각에 하염없이 빠져드는 문장을. 그러다가도 무르팍이 찢어진 상처에 대해 참을 수 없이 궁금해진다. 세상의 것들에 애정이 많은 시인의 미덕은 그의 시선 안에서 사소한 것이 조금도 사소해지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죽도록 미워하려고” 걸어가는 동안 “죽도록 사랑하고픈 마음”이 생기고야 마는 이 시집을 끝까지 읽고 나면 사랑과 미움이, 밝음과 어둠이, 이율배반적인 것들이 어떻게 한 몸인지 알게 된다. 세월에 떠밀려 마음이 스산할 때에도 “밀려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라는 문득의 긍정과 “모래도 밀리다 언덕이 된다”는 비약의 힘으로써 모서리가 많은 삶의 어두운 구석을 더 밀고 가보고 싶게 만든다. “막혔다는 것은 뚫릴 곳이 있다는 증거”이니까. 그건 시의 힘이자 삶의 힘이기도 할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서 조금 더 바짝 “옮겨 앉을 준비”를 한다.
- 주민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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