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군중의 야만성이 끔찍한 동시에 매혹적이라고 생각했다. 벤의 이전의 경험이 어째서 그를 다시 샌디에이고로 끌어들였는지 알 것 같았다. 군중의 집중된 열정은 그야말로 압도적이고 강력했다. 나 또한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 그것을 제압하거나 파괴하기 전까지 평화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 p.24
벤의 어머니를 이해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녀 역시 여러 한계들로 인해 삶을 멈춰야 했던 수많은 사람 중 한 명이었으니 말이다. 모자가 서로를 끔찍이 여기는 사이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녀가 나를 인정하든 말든 크게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벤은 어머니와 자신 사이에 공통점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를 방문하러 시카고에 갈 때마다 그녀의 태도는 아들을 극도로 괴롭게 했고 벤은 이 때문에 어머니로부터 멀어졌지만 결국 다시 어머니에게 가고야 마는 것은 그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기의 머릿속에 상주하는 어머니에 대한 생각 때문에 여성을 만날 때 위협이 되기도 했다. 그의 모성 콤플렉스는 나에게 또한 많은 고통과 절망을 주었으나 나는 우리의 그 모든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를 사랑했다. 다만 나는 그와 함께 조화와 평화 속에서 살길 원했고, 그가 행복해하고 만족하는 모습을 보길 원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를 뉴욕으로 데리고 오고 싶다는 그의 청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 p.31
사실 나의 강연이나 마거릿 생어의 활동이 피임 문제를 논의한 최초의 노력은 아니었다. 미국에서 피임에 대한 논의는 위대한 투사 모시스 하먼과 그의 딸 릴리언과 에즈라 헤이우드, 푸트 박사와 그의 아들 E. C. 워커, 그리고 이전 세대의 협력자들이 개척해 놓은 길이었다. 여성 해방의 가장 용감한 옹호자 중 한 명이었던 아이다 크래독은 혹독한 대가를 치렀는데 콤스톡에게 쫓겨 5년형을 선고받고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녀와 모시스 하먼 그룹은 자유로운 모성을 위한 투쟁, 아이가 건강하게 잘 태어날 권리를 위한 투쟁에 있어 선구자이자 영웅이었다. 그러나 최초가 아니라는 것으로 마거릿 생어의 업적을 축소시킬 순 없었다. 생어는 최근 몇 년 동안 미국 여성들에게 피임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 유일한 여성이었으며, 수년간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던 이 주제를 자신의 저서에서 다시 부활시켰으니 말이다.
--- p.85~86
동성애에 대한 내 강연이 끝난 후 나를 찾아와 자신의 고뇌와 고립감을 털어놓던 남녀는 종종 그들을 내모는 사람들보다 더 고상하고 고운 결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그간 동성애를 질병이나 수치스러운 고통으로만 여기고 억누르는 수년간의 투쟁 후에야 비로소 자신의 차별성을 이해하게 된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한 젊은 여성은 25년 동안 남자 곁에 가까이 가기만 해도, 그게 아버지와 남자 형제라 할지라도 너무나 견디기 힘들었노라고 고백했다. 성적인 접근에 반응해 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더욱 남자들이 혐오스러워졌는데, 자신이 어머니를 사랑하듯 아버지와 남자형제를 사랑할 수 없다는 사실에 스스로를 미워했다고 말했다. 극도로 괴로워하면서도 혐오감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녀 나이 열여덟에 자신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기를 바라며 결혼 제안을 수락하고 약혼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는 끔찍한 실수였다. 거의 미쳐 버릴 뻔한 그녀는 도무지 결혼을 직면할 수 없었음에도 친구들이나 약혼자에게 이 사실을 감히 털어놓을 수 없었다. 자신과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만난 적도 없거니와 그런 주제를 다룬 책을 읽어 본 적도 없다고 그녀는 말했다. 내 강의를 통해 그녀는 비로소 해방되었고 자존감을 되찾을 수 있었노라고 했다.
--- p.90
일관성과 용기란 것은 천재성과 마찬가지로 가장 드물고 희귀한 능력임을 나는 이제 잘 알고 있다. 나의 친우 벤은 안타깝게도 이 두 가지 모두가 부족했다. 그런 남자를 10년이나 견뎌 온 내가 어떻게 위험을 피하겠다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새로운 프로젝트는 벤을 열광시켰다. 『어머니 대지 불레틴』이라는 아이디어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예의 그 에너지를 한꺼번에 쏟아 부어 출판을 성사시켰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버렸던가 보다. 그는 『불레틴』이 전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원했다. 논의해야 할 다른 문제들이 아직 너무 많으며, 정부에 대해 계속 반대만 하고 있으면 우리가 오랜 세월 동안 쌓아 온 것을 망칠 것이 분명하다면서 말이다. 좀 더 신중하고 더 실용적일 필요가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반전 연설에서 무모한 발언을 일삼던 그가 이런 태도를 보인 것은 내게 놀라운 일이었다. 벤이 결국 이런 사람이 되었다는 게 이상하고 또 우습기까지 했다. 그의 변화는 그의 다른 모든 게 그렇듯 이유나 일관성이 없었다. 우리의 관계는 지속될 수 없었고 어느 날 그는 사무실을 박차고서 그길로 떠나 버렸다, 영영.
--- p.222
내셔널 호텔 앞 시장의 불행한 사람들은 대형 제과점에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제과점에는 신선한 식빵, 케이크, 파이가 쌓여 있었다. 주인은 공산주의자는 아닌 것 같았지만 레닌의 말대로 사업가였다. 그는 고객을 유치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가게는 붐비고 장사가 잘 됐지만 밖에서는 굶주림으로 창백하고 기진맥진해진 얼굴의 군중들이 쇼윈도에 전시된 기적과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사치품에 대한 갈망으로 눈을 부릅뜬 채 구경하고 있었다. “이런 것들이 다 어디서 오는 거죠?” 그곳을 지나가다가 한 여성이 항의하는 소리를 들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흰 빵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는데, 이걸 보세요. 저 고급스러운 케이크들을요! 이것들 때문에 우리가 혁명을 일으킨 건가요?” 그녀는 괴로움에 신음했다. “부르주아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건만.” 한 남성이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저들이 가게에 드나드는 걸 봐요! 저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이죠? 누구냔 말입니다!” 관중들은 남자의 말을 따라하며 일부는 주먹을 불끈 쥐기도 했다. “해산하십시오, 해산하십시오!” 가게를 지키고 있던 민병대의 명령이 떨어졌다. 재산의 신성한 권리를 보호해야 했던 것이다.
--- p.615~616
우리의 사랑스럽고 찬란한 파냐는 생명과 사랑으로 빛나고, 자신의 이상을 향한 헌신에 흔들림이 없었으며, 감동적인 여성스러움을 지니면서도 새끼를 지키는 암사자처럼 단호하고 불굴의 의지로 마지막 숨이 붙어 있을 때까지 싸웠다. 그녀는 자신의 운명에 순순히 굴복하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저항하며 그녀는 공산주의 국가의 기사들에 의해 처형 장소로 끌려가야 했다. 끝까지 반란군으로 남은 파냐는 괴물과 잠시나마 힘을 겨뤘지만, 갑작스러운 권총 소리와 함께 체카 지하실의 끔찍한 정적이 다시 한번 깨지면서 영원으로 끌려갔다. 정말 끝이다.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나는 사샤에게 어떻게든 러시아를 떠나게 해달라고 간청할 생각이었다. “사샤, 나는 어떤 식으로든 당신과 함께 갈 준비가 되었어요.” 내가 속삭였다. “그저 슬픔과 피, 눈물, 우리를 따라오는 죽음에서 멀리 떨어지고 싶을 뿐이에요.”
--- p.6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