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생 ‘나’로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가장 나답게 살기 위해 공부하고 노력하고 고민합니다. 그리고 ‘나’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다른 이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유지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나의 모습이 내가 알고 있던 원래의 나와 크게 달라져 있음을 발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고, 말이 원래의 의도와 다르게 나가며, 심지어 원래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면 얼마나 당황스러울까요? 정말 상상하기만 해도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 국민의 20%가 65세 이상이 되는 초고령 사회로의 진입을 불과 일 년여 앞둔 현재, 이런 일들이 아주 가까이에서 너무도 흔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노인이 된다는 것. 그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그저 누가 더 먼저이고 누가 더 나중인가의 문제에 불과할 뿐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정작 노인에 대해 잘 알지 못할뿐더러 자세히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당장 눈앞에 벌어진 일들을 해결하며 살아가기에 바쁘기 때문이기도, 아직 나와는 상관 없는 먼 미래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설령 연세가 드신 부모님이 계시더라도 주기적으로 안부 전화를 드려 별일 없이 잘 계시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고 스스로 안도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노인질환은 특히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노인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으로 인해, 조기에 질환을 발견하여 적극적으로 치료받는 노인들의 수는 매우 적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의 어르신들이 가정에서 손을 쓸 수 없을 정도의 상태로 진행된 후에야 병원을 방문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 치료 효과를 크게 경험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른 것이지요. 이러한 단계에서는 전문가들도 환자의 병증 진행 과정을 장기간 지켜보지 못했기 때문에 현재 상태를 판단기준으로 삼아서 가장 방어적인 설명과 치료방안만을 제시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좌절감과 막막함은 고스란히 환자와 보호자들의 몫이 됩니다. 저 또한 주위의 많은 어르신과 그 가족들이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하고 계시는 것을 직접 보고 경험하면서 매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노인질환에 대해 전혀 문외한이었던 지인 이민경 선생이, 노인질환을 겪으면서 힘들어하시는 부모님을 보살피기 위해, 10년 넘게 요양병원에서 의료진으로 노인들을 보살펴온 저에게 조언을 구하면서 이 책의 기획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렇게 이민경 선생의 질문을 듣고 조언을 해주면서 만약 노인에 대해서 쉽고 친절하게 알려주는 안내서가 있다면, 또한 노인질환의 발병을 초기 단계에서 신속하게 발견하고 향후 행동 방향을 결정할 수 있도록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는 참고자료가 있다면 얼마나 유익할까를 생각하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글로 정리해서 남기자고 제가 먼저 이민경 선생에게 제안하게되었습니다.
그리고 뜻밖의 좋은 계기를 만나 그간 고민하며 정리해 두었던 내용들을 부끄럽지만 책자의 형태로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주된 화자로서 목소리를 내는 저, 한유진과, 저의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 준 이민경 선생의 합작품입니다. (후략)
--- 「저자의 말 ① 한유진 노인이 된다는 것. 그것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 중에서
저는 평생 나 자신의 목표를 위해 열심히 달려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단출하지만 예쁜 가정을 꾸렸고 박사학위도 받아 원하던 대학 강단에도 서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연구하고 가르치며 즐거운 생활을 이어가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지셨고 어머니께서는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뒤이어 시아버지께서 암 판정을 받으신 후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습니다.
부모님들께서는 팔순에 가까운 고령의 어르신들이셨고 지병이 있었지만 건강관리를 잘하고 계셨기에 이런 일이 일어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저는 엄청난 충격과 당혹감에 휩싸였습니다.
늘 자녀로서 부모님께 도움만 받던 제가 이제는 부모님의 보호자로서 보살펴 드려야 하는 입장이 되었는데, 저는 부모님에 대해서, 그리고 부모님께서 앓고 계신 질환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부모님께서 노인질환의 각종 증상과 후유증으로 고생하실 때마다 그 이유와 대처법을 알고 싶어도 물어볼 곳이 마땅치 않아 답답한 마음뿐이었습니다. 부모님의 담당 의사 선생님들은 모두 친절하셨지만 병원에서 그분들을 만나는 시간은 일 년에 서너 차례, 그것도 1회당 몇 분뿐인데 평소에 생활하면서 생기는 문제점과 질문들은 너무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한유진 선생과 연락이 닿았고, 자질구레한 질문부터 전문가의 견해가 요구되는 질문까지 시시때때로 답변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답변을 들을 때마다 글로 기록해 두고 필요한 상황에서 요긴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한유진 선생에게 하자 그는 이런 기록을 저 혼자서만 볼 것이 아니라, 잘 분류해서 책자의 형태로 기록해 두고 다른 이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고, 저 역시 흔쾌히 제안을 수락하여 이 책의 필진으로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와 한유진 선생이 뜻을 모아 이 책을 쓰게 되었고, 제가 원고를 정리하여 여러분께 한 선생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들려 드리기로 하였습니다. (후략)
--- 「저자의 말 ② 이민경 부모님의 자녀에서 보호자가 된 당신에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