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직 어리고 마음이 물러서 감정에 휘둘리던 시절, 아버지는 내게 한 가지 조언을 해주었다. 이때껏 나는 그 말씀을 늘 마음에 되새겨왔다. “누구를 비판하고 싶어질 때면, 이걸 기억하도록 해. 세상 모든 사람이 네가 지금 누리는 것과 같은 혜택을 받은 건 아니라고 말이야.”
--- p.13 「제1장」중에서
그해 여름밤 내내 이웃 저택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왔다. 별빛 아래 푸른 정원에서는 선남선녀들이 샴페인을 들고 속삭거리며 불나방처럼 오갔다. 해 질 무렵이면 손님들이 부잔교에서 다이빙을 하는 모습과, 뜨거운 모래사장에서 일광욕을 하는 광경이 보였다. 그러는 동안 개츠비의 모터보트 두 대가 해협의 물살을 갈랐고, 수상 스키 위로 폭포수 같은 물거품을 일으켰다. 주말이면 그의 롤스로이스 자동차가 일종의 버스 역할을 하면서 아침 9시부터 자정이 지날 때까지 도시의 손님들을 실어 날랐다. 그의 스테이션 웨건 자동차는 기차에서 내리는 손님들을 실어 오기 위해 노란 풍뎅이처럼 바쁘게 움직였다. 월요일이 되면 외부 정원사를 비롯한 하인 여덟 명이 빗자루와 걸레, 망치, 정원 가위 등을 들고 종일 지난밤의 피해를 보수했다.
--- p.61 「제3장」중에서
나는 다시 그 처음 만난 남자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로서는 아주 이상한 파티입니다. 아직도 주인을 만나보지 못했으니까요. 나는 바로 저기에 삽니다.” 그러고는 좀 떨어져 보이지 않는 산울타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개츠비라는 분이 운전기사를 시켜서 내게 초대장을 보냈죠.” 잠시 그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겠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개츠비입니다.” 그가 갑자기 말했다.
“뭐라고요!” 나는 소리쳤다. “아, 실례했습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랜 친구. 내가 그리 훌륭한 집주인은 아닌 것 같군요.”
그는 이해한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그 미소에는 단순한 이해를 훨씬 뛰어넘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것은 평생 네다섯 번 만날까 말까 한, 영원한 확신을 심어주는 보기 드문 미소였다. 또한 잠시 온 세상을 직면하는 (혹은 직면하는 듯한) 미소, 오로지 당신만을 좋게 봐주겠다는 매력적인 편견이 담긴 미소였다. 당신이 이해받고 싶은 만큼만 이해해주는 미소, 당신 자신이 스스로 믿는 만큼 당신을 믿어주는 미소, 당신이 보여주고 싶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당신을 봐준다는 희망을 주는 미소였다. 바로 그 순간 미소가 사라졌다. 내 앞에는 서른 살에서 한두 살 정도 더 먹은, 우아하고 조금 거친 남자가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는 지나치게 공손한 언사로 어리석음을 가까스로 모면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을 소개하기 전에, 나는 그가 아주 조심스럽게 하고 싶은 말을 선택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
--- pp.75-76 「제3장」중에서
그날 아침에 내가 데이지의 집 앞에 가보니 흰 로드스터 자동차가 길모퉁이에 주차되어 있었는데 그 안에 내가 본 적 없는 젊은 중위와 데이지가 앉아 있었어요. 둘은 대화에 몰두해서 내가 1.5미터 거리까지 다가가도 그녀는 나를 보지 못했어요.
‘안녕, 조던,’ 그녀가 갑자기 나를 불렀어요. ‘여기 와서 합석해.’
나는 나보다 나이 많은 여자 중에서 그녀를 가장 존경했기 때문에 함께 이야기하자는 소리에 우쭐해졌지요. 나보고 적십자사에 붕대를 만들러 가냐고 물었어요. 간다고 했더니 그럼 자신은 그날 가지 못한다는 말을 좀 전해달라고 했어요. 그 장교는 데이지가 말하는 내내 그녀를 쳐다보았어요. 모든 여자가 바라는 그런 눈빛으로요. 그 모습이 어찌나 낭만적이던지, 나는 오늘날까지도 그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어요. 그의 이름은 제이 개츠비였고, 그 후 4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 p.108 「제4장」중에서
“영국에 내 옷을 사서 보내주는 사람이 있어요. 그는 봄가을로 계절이 시작될 때마다 잘 고른 옷들을 보내줍니다.”
그는 셔츠 한 묶음을 꺼내더니 하나씩 하나씩 우리 앞에 내던지기 시작했다. 잘 접혀 있던 얇은 리넨 셔츠, 두꺼운 실크 셔츠, 고급 플란넬 셔츠 등이 펴지며 우리 앞 테이블 위에 가지각색으로 무질서하게 쌓여갔다. 우리가 감탄을 내뱉자, 그는 더 많은 셔츠 묶음을 가져왔고 우리 눈앞에서 셔츠 더미는 점점 더 높아졌다. 산호색과 풋사과색, 라벤더색과 연한 오렌지색의 줄무늬 셔츠, 소용돌이무늬 셔츠, 격자무늬 셔츠, 그렇게 많은 셔츠에 개츠비의 이니셜이 짙은 청색으로 새겨져 있었다. 갑자기 데이지가 그 셔츠 더미에 머리를 파묻고 목이 멘 소리를 내며 격렬하게 울기 시작했다.
“정말 아름다운 셔츠예요.” 그녀는 흐느꼈고 그 울음소리는 셔츠 더미에 파묻혀 웅얼거리는 소리처럼 들렸다. “이걸 보니 슬퍼져요. 전에는 이렇게 아름다운…셔츠들을 본 적이 없거든요.”
--- p.130 「제5장」중에서
개츠비가 경직된 자세로 내게 고개를 돌렸다.
“난 그의 집에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오랜 친구.”
“데이지는 경솔하게 말해요. 그 목소리에는….” 나는 망설였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돈 냄새가 가득하지요.” 그가 갑자기 말했다.
바로 그거였다. 전에는 깨닫지 못했는데, 데이지의 목소리에는 돈 냄새가 가득했다. 그건 그녀의 목소리를 따라 오르내리면서 탕진되지 않는 매력의 원천이었다. 황금의 찰랑거림, 황금이 입으로 불어 연주하는 심벌즈의 노래, 저기 아득히 높은 하얀 궁전에 사는 왕의 딸, 황금 목소리의 공주….
--- pp.164-165 「제7장」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