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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

[ 양장 ] 트리플-26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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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8월 30일
    판형 양장?
    쪽수, 무게, 크기 196쪽 | 116*183*13mm
    ISBN13 9788954451406

    카드 뉴스로 보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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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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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한때 성공적인 사업가였고 지금은 통 속의 뇌인 건록은 물리적으로 닌세이 특수 병원의 3층 병동에 놓여 있다. 원한다면 나를 목향이라고 불러도 좋다. 지난 십 년간은 일평균 다섯 시간 동안 녀석의 몸을 빌려 살았기 때문이다. 나머지 시간은 통에 갇힌 채로 영화를 보거나, 보고서를 읽고 시덥잖은 결정을 내리거나, 회사 곳곳에 설치된 보안 카메라로 임직원들을 감시하는 데에 쓴다. 출근하지 않더라도 나는 기업 그 자체다.
    --- pp.9~10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중에서

    마지못한 인정일 때도 있었고 순전한 후회일 때도 있었지만 결론은 항상 같았다. 목향은 지금보다 행복해질 수 있었다. 하지만…….
    하지만, 으로 시작되는 질책과 변명이 원의 맞닿는 두 호를 이룬 채 머릿속에서 공회전했다. 후회와 자기혐오는 오만을 닮은 변명이 되었고, 공포로 바뀌었다가, 죄책감과 분노와 다른 모든 감정이 되어 길게 늘어졌다. 사이사이에는 까마득한 침묵이 검은 띠를 이루고 있었다. 나는 문득 이 방출 스펙트럼이 어떤 원소를 가리키는지 궁금해졌다. 원소라고…… 나는 아직도 이 상황을 지독한 농담으로만 느끼고 있는 것이다…….
    --- p.24 「한 개의 머리가 있는 방」중에서

    뉴멕시코 연합국과 하이데라바드 공영권은 휴전협정을 맺었고, 별의 인내자들은 우주로 떠난 개척자들이 인류를 구원하리라는 교리를 퍼뜨리는 중이고, 시골 별장은 관리비를 잡아먹는다. 엄마는 다 무너져가는 목조 주택에 앉아서 좋았던 시절을 추억하는 병자고 나는 돈 귀한 줄 모르는 얼간이다.
    그렇다면 누나는 뭘까?
    누나가 어떻게 생겼더라?
    누나 목소리는 어떻고 성격은 어땠더라?
    --- p.45 「제발!」중에서

    마술이란 아슬아슬한 거짓말을 그저 믿음으로써 현실로 만드는 기예다. 기껏 마술사를 초빙해놓고 속임수를 알아내려는 사람은 돈 아까운 줄 모르는 얼간이다. 금화처럼 우수수 쏟아지는 정오의 햇살, 무수한 종류의 빛. 빛이 고통처럼 번쩍거렸다. 고통이 빛처럼 번쩍거렸다.
    --- p.76 「제발!」중에서

    내 병명을 들으면 다들 그렇고 그런 광인을 떠올리는 게 사실이다.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폭로문을 퍼뜨리거나, 환각에 사로잡히거나, 영적인 상상에 과하게 몰입하거나 등등. 그러나 이 병의 맹점은, 웬만큼 심각해지기 전까지는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것이다. 처리 속도만큼은 보통 사람보다 훨씬 빠르다고 장담할 수 있거니와 생각의 내용도 문제가 생긴 부분을 제하면 멀쩡하다.
    --- p.84 「Called or Uncalled」중에서

    화폐와 신용과 금융과 시장은 망상이다. 전통도 관습도 종교도 민족도 법도 제도도 교육도 국가도 망상이다. 따라서 공기 또한 망상이다. 이건 세계가 구성되는 방식이 총체적으로 무의미하며 무작위적이라는 허무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미친놈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시류와 부합하는 망상을 택해야 한다는 정치공학적 계산일 뿐.
    --- p.101 「Called or Uncalled」중에서

    케인스가 말하기를 인간은 장기적으로 모두 죽는다고 했는데, 그 말은 다시 쓰일 필요가 있다. 인간은 장기적으로 모두 미친다. 그러니까 내가 환기 안 되는 창고에서 먼지를 삼키며 통조림을 먹느냐, 아니면 꽃가루가 섞였을지도 모르는 공기를 들이켜면서 통조림을 먹느냐 하는 것은 필연적인 결말로 향하는 여러 경로 중 하나일 뿐이다. 하지만 케인스가 나와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창고의 먼지를 삼켰으리라는 것도 진실이다. 나는 케인스가 좋았으므로, 열쇠를 챙겨 지하 비품실로 뛰어들어갔다. 거기에 소녀가 있었다.
    --- pp.133~134 「Called or Uncalled」중에서

    그래서 나는 여기까지 왔다.
    여기까지 왔는데 무엇이 더 중요하단 말인가?
    근동의 예언자들이 들은 아버지의 목소리는 황야의 메마른 열기로부터 왔을 것이다. 다니엘 슈레버의 영적 비전은 그의 아버지가 개발하고 착용시킨 자세 교정 도구로부터 왔다. 모든 각성의 시작은 정말이지 별것 아니거니와 가끔은 추레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다행히 슈레버와 달리 내 사연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누나가 내게 실제로 무엇이었는지와 상관없이, 나는 순수히 감사하면 그만이었다.
    --- p.152 「Called or Uncalled」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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