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츠앱을 읽지 않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딸은 스마트폰과 거의 한 몸이나 마찬가지였다. 끄는 법은 결코 없었고, 배터리가 항상 충분히 충전되도록 철저하게 신경 썼다. 안네는 ‘위치 찾기’ 앱을 켰다. 리시는 그 앱을 장난삼아 ‘스토킹 앱’이라고 부르면서도 자기 현재 위치를 엄마가 언제라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반대하지는 않았다. 휴대폰 위치가 잠깐 니더회흐슈타트로 떠서 안네는 안도했지만, ‘에슈보른, 슈타인바흐 거리. 19시간 전’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다음 표시가 사라졌다. 현재 위치는 없었다.
안네는 휴게실로 가서 문을 닫은 다음 외르크에게 전화했다. 휴대폰을 잃어버렸거나 도둑 맞았다면 리시는 자기 틴에이저 인생에서 일어난 최악의 재난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엄마에게 알렸을 것이다. 리시가 어제저녁 7시 22분 이후에 온라인에 접속하지 않은 것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은 있을 수 없었다.
--- p.23
“제가 딸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인지 알고 싶으신가요?” 안네 뵐레펠트가 물었다. “마지막으로 소식을 듣거나 말을 한 때가 언제인지? 아이에게서 문자나 음성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받은 게 언제인지? 아니면 우리 딸이 담배를 피우거나 마약을 하는지, 우리가 모르는 남자친구는 없는지 관심이 있으신가요? 우리가 딸에게 관심도 없는 나쁜 부모라서 알지 못하는 남자친구 말이에요. 혹시 우리가 딸과 싸웠는지, 아이가 가출했는지, 사랑 때문에 고민을 했는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는지!”
피아가 흘낏 곁눈질을 하자마자 보덴슈타인이 대화를 넘겨받았다. 그는 연민과 객관성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올바른 음색으로 말을 걸었고, 거의 모든 사람이 그렇듯이 안네 뵐레펠트도 그의 차분한 안정감에 살짝 긴장을 푸는 반응을 보였다.
--- pp.65-66
그는 희생자 변호인의 얼굴에서 실망감을, 검사의 표정에서 절망을 봤다. 거의 눈물을 보이며 이 비난을 부인하는 참심원의 목소리에서 분노를 들었다. 스자마이트의 입술에서 만족스러운 미소를, 양손을 비비는 페퍼코른의 얼굴에서 히죽거림을, 피고들이 경멸스러운 승리감에 주먹을 서로 맞부딪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들 중 누구도 희생자와 그 가족을, 피고들이 그들에게 가한 고통을 생각하지 않았다. 희생자가 남은 평생 잔혹한 폭력의 후유증 때문에 겪어야 하는 고통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보란 듯이 드러낸 이 느긋함은 최후의 결정타였다. 14년 전부터 프랑크푸르트 지방 법원 6번 소년형사부 재판장인 콘스탄틴 하벨카 박사는 몇 달 내내 미뤄둔 어떤 결정을 내렸다. 이 사실을 깨닫자 마음이 가벼워졌다.
--- pp.88-89
불현듯 사라는 학교를 단 1초도 견딜 수 없었다. 리시를 몰랐으면서도 흐느끼며 서로 끌어안고, 꾸며낸 당혹감을 보이며 봉제 인형과 꽃을 학교 건물 입구에 내려놓고, 몇 초 후에는 눈물을 닦고서 꽃과 곰 인형 사진을 찍어 ‘리시 애도’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인스타그램과 틱톡에 포스팅하고, 리시가 성폭행을 당했는지 아닌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싫었다. 구역질이 났다! 이들에게는 리시가 아니라, 어쩌면 자기들이 우연히 학교에서 마주쳤을지도 모르는 어떤 여자아이가 살해됐다는 섬뜩한 화젯거리가 중요했다. 학교 경영진과 교사들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건물 입구 옆에 마련된 리시 추모 공간 앞에서 추위에 떨며 서서, 혼란스러워하는 학생들이 자신들의 상담 제의를 받아들이기를 기다리는 학교 사회복지사들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리시 뵐레펠트의 죽음에는 관심이 없으니 아무도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있다면 그저 안 좋은 소문을 들으려는 것뿐이었다.
--- pp.115-116
니콜라가 입을 다물었지만, 보덴슈타인은 뭔가 더 있다는 걸 알아챘다.
“계속해.” 그가 상관에게 요구했다.
“당신은 57세야.” 니콜라가 말을 이었다. “사이에 1년만 쉬었을 뿐, 15년 동안 강력11반 수사반장이고…….”
“……검거율은 백 프로야.” 보덴슈타인이 덧붙였다.
“그래, 맞아. 하지만 당신 자리를 탐내는 동료들이 있어. 이곳 사람은 아니야.” 니콜라가 얼른 덧붙여 말했다. “현재 노조를 통해 일자리 교환 요청이 한 건 들어왔어. 바덴뷔르템베르크 출신으로 능력이 탁월한 동료…….”
“……나보다 열 살은 젊겠지.” 보덴슈타인이 그녀의 문장을 보완했다.
“열네 살 젊어.” 니콜라가 그의 말을 확인시켜줬다.
--- p.124
“얼마나 노력하든, 어떤 판결을 내리든 어차피 마찬가지야.” 하벨카가 로젠탈을 바라봤다. “언제나 어느 한쪽은 항소하니까. 판결이 너무 관대하면 자네들 검찰 쪽에서, 너무 엄하면 변호인이 하지.”
“그래, 그저 이기는 것만 중요한 게임이 된 것 같아.” 검사장도 동의했다.
“그리고 우리 판사들은 변호인들에게 놀아나는 어릿광대고.” 하벨카가 씁쓸하게 말했다.
--- p.154
“경찰이 찾는 그놈은 어떻게 된 거요?” 한 남자가 소리쳤다. “그놈은 여자아이를 성폭행했어요! 그런데 왜 교도소에 수감되지 않았죠? 우리나라가 잘못 돌아가고 있어요!”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진정하시고 우리 경찰 업무를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국장이 양손을 들고 놀랄 만큼 용감하게 말한 후에 기자들에게로 돌아섰다. “기사에서 외국인 혐오를 일으킬 속단을 모두 피하십시오.”
“우리가 뭘 써야 할지 정하시려는 겁니까?” 한 기자가 소리쳤다. “검열 냄새가 나는군요!”
기자들이 흥분한 군중에게 열광적으로 달려가 마이크를 내밀어 현장의 소리를 녹음했다.
보덴슈타인은 국장을 앞으로 밀어 시청 출입구로 들어가면서, 이런저런 물건이나 과일이 날아오지 않은 걸 다행이라고 여겼다.
“제정신입니까?” 엥겔 과장이 국장에게 호통을 쳤다. “조금 전에 전화로 여기서 어떻게 행동할지 서로 말을 맞췄잖아요. 어떻게 군중에게 말을 거실 수 있죠?”
“이 소동은 당신 책임입니다! 쓸데없는 공개 수배를 벌인 탓에 사람들이 아주 불안해하고 있어요.” 내무부 국장이 자기방어를 했다.
“뭐가 중요한지 모르시는 것 같군요.” 니콜라 엥겔이 비난을 퍼부었다. “살인사건을 해결해야 한다고요!”
--- p.165
“피아, 몸조심해.” 그가 진지하게 말했다. “당신이 좀 걱정스러워.”
[…]
“걱정할 필요 없어. 나는 잘 지내니까.” 피아가 대답하며, 자기 목소리가 단단하게 울리기를 바랐다. “잘 가!”
그러고는 혼란스럽고 부끄러운 마음으로 어둠을 뚫고 서둘러 자동차로 달려갔다. 친절한 말 몇 마디에 눈물이 솟구치다니 이 얼마나 창피한가! 그것도 하필이면 전남편 헤닝 앞에서. 예전에는 한 번도 그렇게 걱정스럽게…… 그래, 빌어먹을. 그렇게 ‘사랑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본 적이 없는데.
차에 오른 피아는 자제력을 잃어버렸다. 눈물이 쏟아졌다. 도대체 왜 이러지? 난 평소에 이렇게 예민하지 않은데. 하지만 피아는 엄마와 관련하여 어딘지 모르게 형제자매에게서 버림받은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크리스토프는 크리스마스에 열다섯 명을 초대했으면서 전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지금 피아가 할 일이 정말 너무 많은데도 그는 개 돌보는 일을 그녀에게 맡기고 며칠 동안 바젤로 그냥 가버렸다. 피아는 흐느끼며 좁은 국도에서 차를 돌렸고, 어두운 밤을 뚫고 지나가면서 평생 이만큼 외로운 적이 없다고 느꼈다.
--- pp.185-186
“플레이를 누르세요.” 안네는 여자의 말에 응했다.
어두운 장소에서 찍은 영상이었다. 영상 품질이 좋지 않고 카메라가 흔들렸지만, 안네는 두려움에 눈을 크게 뜨고 카메라를 쳐다보는 남자를 금방 알아봤다. 파바드 마흐무디였다! 그는 유리창이 없고 쇠창살이 바닥까지 닿는, 감방 비슷한 곳의 좁은 침상에 앉아 있었다.
안네는 놀라서 몸을 움찔했다. 이런 장면은 예상하지 못했다. 침을 꿀꺽 삼켰다. 심장이 터질 듯이 심하게 뛰었다.
“여기…… 어딘가요?” 안네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그건 아실 필요 없어요.” 여자가 대답하고 스마트폰을 다시 집어넣었다. “그는…… 으음…… 말하자면 감금 상태예요. 도망치지 못하게 말이지요.”
“하지만…… 왜…… 그러니까 제 말은, 왜 경찰에 넘기지 않나요?” 안네가 말을 더듬으며 물었다. 무척 혼란스러웠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그는 미결 구금이 되겠죠.” 여자가 대답했다. “언젠가는 재판을 받을 테고, 법원에서 살인이 확정되면 종신형을 받을 거예요. 그러면 15년 후에는 다시 자유의 몸이 돼요. 하지만 어쩌면 우발적 살인, 더 나아가 폭행치사 판결을 받을지도 몰라요. 그러면 몇 년 후에 교도소에서 나와 평생을 누리게 되겠죠. 당신 딸은 죽어서 다시 살릴 수 없는데 말이에요. 이게 정당하다고 생각하세요?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네, 부당해요.” 안네는 팔짱을 끼고 위팔을 꽉 꼬집었다. 내가 지금 이 대화를 실제로 나누고 있나, 아니면 그저 꿈을 꾸는 걸까? “누구시죠?”
“내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원하는 게 뭔가요?”
“그 남자가 다시는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가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여자는 마치 사소한 사업 거래에 대해 의논하는 것처럼 차분한 투로 말했다. “하지만 당신이 원하신다면 직접 하셔도 돼요.”
“무슨…… 뜻인가요?” 안네가 당황하여 물었다. “뭘 내가 직접 해도 된다는 거죠?”
“딸의 살인자를 당신 손으로 직접 죽이는 것.” 여자가 대답했다. “아무도 모를 거예요. 그가 당신 딸의 목숨을 빼앗았으니 당신도 그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어요. 이게 정의입니다.”
--- pp.213-215
“네가 달아날 시간은 2분이다. 그 후에는 우리가 널 사냥할 거야. 너는 묶였고, 맨발이고, 숲은 어둡지. 그래도 그때 아드리아나보다는 네가 지금 살아남을 확률이 더 높다. 최소한 넌 달아날 수 있으니까.”
‘아드리아나!’ 누군가 그의 배를 주먹으로 내리치는 느낌이었다. 그의 앞에 불쑥 검은 심연이 열리고, 엄청난 공포가 그의 내면에서 폭발했다. 이건 전혀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는 내내 누군가 돈 때문에 자기를 납치했다고, 또는 뭔가 착오가 있을 거라고 믿었다. 복역을 마쳤으니 그 일은 다 끝났고, 그래서 아드리아나는 생각지도 못했다.
“2분이다.” 남자가 싸늘하게 말했다. “지금부터 시작. 네가 달리면 아마 일찍 끝날지도 모른다. 달리지 않고 겁쟁이처럼 여기 그냥 누워 있겠다면 느린 죽음이 될 테지. 오늘 밤에 너는 어차피 죽는다. 하지만 빠른 죽음과 느린 죽음 중에 선택할 수 있다.”
--- pp.247-2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