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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바이오텍에서 위대한 바이오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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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0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268쪽 | 140*215*20mm
ISBN13 9791191768091
ISBN10 1191768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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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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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아 보거는 혁신적인 신약을 만들 수 있는 연구 조직을 고민했다. 새로운 연구 조직에서는 물량 중심의 스크리닝 방식과 이를 관리하기 위한 중층적인 의사결정구조를 걷어내고, 연구자가 직접 신약개발의 주도권을 잡아야 했다. 보거는 버텍스에서 모든 연구자가, 모든 신약개발 프로젝트를 함께 관리하는 방식을 고민했다. 연구자는 각자 자신의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만, 다른 연구자들과 자신의 프로젝트 진행을 공유한다. 이와 같은 연구자들의 일상적인 세미나 또는 협의체에서 연구자들이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대학원 연구실과 비슷해 보이는 방식이다. 보거는 연구자들의 직위도 없애버렸는데 이런 방식이 너무 급진적이었기에, 외부에서 연구자를 영입하려고 할 때 직위를 제시할 수 없어 곤란한 상황도 있었다고 한다.
--- p.34

버텍스는 극단적으로 작은 규모의 인과관계, 그러나 그만큼 정확하고 확실한 인과관계에 몰두했다. 그리고 이를 좀더 정확하게 검증할 수 있는 검증모델까지 아예 개발해버렸다. ‘상업성’은 고려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방식이었지만 과학적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비록 작지만 확실한 인과관계를 잡아내자, 이 인과관계가 확장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전체 낭포성 섬유증(CF) 환자 가운데 4% 정도만 치료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확인된 인과관계는 확장되기 시작해 새로운 신약개발로 이어졌다. 아직 버텍스의 신약이 타깃하고 있지 못한 CF 환자는 전체의 10% 정도다. 그리고 이 10%의 환자를 치료할 수 있게 되면 모든 CF 환자를 치료할 수 있게 된다.
--- pp.90-91

신약개발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10년 이상 걸리는 일이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써야 하며 위험이 크다. 그리고 버텍스의 CEO 조슈아 보거는 이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돈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버텍스는 끊임없이 대규모 펀딩으로 자금을 확보했다. 그리고 위험을 분산하려고 10여 개 정도의 프로젝트를 늘 동시에 진행시켰다. 어차피 모든 신약개발 프로젝트가 성공할 수는 없다. 따라서 프로젝트들의 성공 가능성을 빨리 확인해 가능성이 낮은 것을 포기하고, 가능성이 높은 것에 집중하려면, 여러 가지 실패를 동시에 해야 한다.
동시에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방식은 시간을 줄이는 데도 도움을 준다. 한 가지 프로젝트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하는 기간이 최소한 10년이라고 했을 때, 어떤 프로젝트가 끝나고 그 결과를 확인한 다음 프로젝트로 넘어가는 것은 위험이 너무 크다. 따라서 동시에 여러 가지를 진행하고, 빠르게 실패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돈으로 실패를 사는 방식이다.
--- pp.97-98

정말로 리제네론은 약은 못 만들고 돈만 잡아먹는 괴짜 연구자 집단이기만 했을까? 2013년 기준 220개 시판 약물을 추적해, 전 세계적으로 10년간 3개 이상의 신약을 시판한 회사가 각 신약에 쓴 비용을 계산해봤더니 평균 R&D 비용은 43억 달러였다. 그런데 리제네론은 7억 3,600만 달러에 그쳤다. 심지어 화이자는 평균적으로 신약 1개를 개발할 때 78억 달러를 썼다. 신약을 개발해놓고 계산해보니 리제네론은 가장 경제적으로 신약을 개발하고 있었다. 리제네론은 설명하기 어려운 바이오텍이다.
--- pp.118-119

바젤로스가 리제네론에 합류한 것은 제약 업계에 충격을 주었다. 머크를 이끈 전설의 명장이, 괴짜 과학자들이 모여 실패만 이어가고 있는 작은 바이오텍으로 간다고 하자 언론도 들썩였다. ‘아주 작은 바이오텍(tiny biotech company)’, ‘고군분투하는 바이오텍(struggling biotech firm)’에 합류한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다. 합류 소식이 나온 날 리제네론 주가가 33% 넘게 오르면서 이런 저런 뒷말이 나왔지만 바젤로스의 답변은 간단했다. ‘그들의 최근 실패가 아니라, 그들의 과학자적 자질 때문에 함께 하기로 했다.’ 바젤로스는 ‘나는 일평생 과학을 해왔고, 그 일이 여전히 너무 그리우며, 다시 과학에 집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했다. 리제네론의 기초 연구를 이끄는 과학자들은 뛰어나며, 이 가운데는 어떤 과학자들은 전 세계 누구와 비교해도 탁월한 연구를 보여주고 있고, 리제네론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엿다.
--- pp.138-139

제한된 자원과 낮은 성공 가능성, 그럼에도 적은 수의 신약개발 프로젝트에 올인(all in)하게 되는 바이오텍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슐라이퍼, 바젤로스, 얀코풀로스는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과학’이라는 데 공감했다. 바이오텍은 멋진 아이디어와 그 아이디어에서 파생된 프로젝트 하나에 모든 것을 거는 우연적인 신약개발이 아니라, 과학을 바탕으로 확률을 올려가는 논리적인 신약개발이 절실하게 필요한 곳이라는 점이다. 리제네론이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것은, 이와 같은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신약개발 시스템을 아직 갖추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결론내렸다. 그리고 이 시스템이 바로 플랫폼이었다. 얀코풀로스는 투자자들에게 어떤 신약개발 프로젝트를 할 것인지 확인하기 위한 시스템
(기술)을 구축하겠다고 했지만, 투자자들 이렇게 되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제품은 어디에 있나요?’
--- p.157

2014년 리제네론은 인간 유전체 시퀀싱 빅데이터 연구 센터인 RGC(Regeneron Genetic Center)를 설립했다. 리제네론이 만든 RGC는 독립적인 자회사로, 작은 바이오텍 스타트업처럼 운영된다. 2014년 당시만 해도 사람 1명의 유전체 시퀀싱 비용은 수천 달러 수준이었다. 따라서 유전체 시퀀싱을 하는 바이오텍은 수익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리제네론의 접근 방식은 달랐다. 가장 효율적인 시퀀싱 역량을 갖추고, 시퀀싱을 원가에 제공해, 약물 발굴을 위한 대규모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리고 이 데이터는 리제네론의 신약개발 과정에 활용된다. 그럼에도 RGC의 컨셉은 공공 연구기관이 내걸 법한 목표를 건 것이었다.
--- p.171

보통 50:50 조건은 대형 제약기업들 사이에 맺는 계약에서 주로 보인다. 개발 속도는 앞당기고, 판매에 주력할 지역을 서로 나누기 위해 맺는다. 즉 신약개발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 가는 단계에서 마케팅 전략 차원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리제네론이 전 세계적인 규모의 제약기업들과 거의 동등한 지위와 유리한 조건으로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었던 데는 두 가지가 영향을 주었다. 하나는 리제네론이 가지고 있는 과학에 대한 확신이다. 무수히 많은 실험으로 아이디어를 확인하는 ‘경우의 수 검증 게임’이 아니라, ‘유전학처럼 확실한 과학’으로 질병의 약한 고리를 정확하게 공격하고 있다면 자신의 과학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과학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협상 테이블에서 50:50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p.200

과학은 언제 어떻게 실패할지 모른다. 그리고 이는 사람을 보수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 신약개발에 걸리는 시간은 10년, 20년, 30년이다. 이를 개인의 시간으로 바꾸어보면, 신입 연구자가 어떤 바이오텍에서 일하기 시작해 정년퇴임할 때까지의 시간이다. 즉 바이오텍에서 신약개발 연구를 한다는 것은 평생을 건 모험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이 긴 모험이 펼쳐지는 동안 연
구자와 그의 동료들이 자신들의 프로젝트에 대한 객관적인 태도를 계속 유지한다는 것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프로젝트에 정(?)이 들기도 하고, 왠지 성공할 것만 같은 느낌도 든다. 어쩌면 프로젝트가 멈췄을 때 다시 뭔가를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을 수도 있다. 함정에 빠진 연구자는 보고 싶은 결과만 볼 수 있는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부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 같은 임상시험 은 피하게 된다. ‘프로젝트를 죽일 수 있는 실험만 하지 않고, 다른 모든 실험을 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바이오텍이라면, 그리고 과학자라면 프로젝트를 죽일 수 있는 실험을 되도록 빨리 해야 한다. 리제네론의 슐라이퍼가 말했듯 ‘임상1상처럼 초기 단계에서 실패를 알아낼 수 있다면, 마지막 임상3상 단계에서 거대하고 지저분한 장례식(big messy funeral)’을 치르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 pp.217-218

조슈아 보거는 임상개발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기준은 오직 팩트여야 하는데 팩트만에 따라 결정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그 돈은 투자를 받는 돈이 아닌 바이오텍이 벌어들이는 매출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비록 바이오텍을 시작하고 10년이 지나서 돈을 벌 수 있을지언정, 바이오텍을 시작한 날부터 매출을 생각하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보았다. 실제로 버텍스는 설립한 이후부터 2024년 현재까지 34억 달러 가까이 썼지만, 17억 달러 가까이 벌어들였다. 이와 같은 매출은 버텍스가 오직 팩트를 기준으로, 다른 입장에 휘둘리지 않고 팩트만 가지고 신약개발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이 되었을 것이다. 프로젝트를 죽이는 실험을 감행하는 결정도 가능했을 것이다.
--- p.220

‘내가 어떤 투자 앞에서 주저된다면, 그것은 투자하려는 것에 위험이 크기 때문이 아니다. 투자하려는 것에 가치가 작기 때문이다. 가치가 크다면 위험은 무릅쓸 수 있지만, 가치가 작다면 언제 빠져나가야 할지를 놓고 내내 불안할 것이다.
신약개발에서 가치는 과학이다. 과학이 있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투자할 것이지만, 과학이 없다면 내내 불안할 것이다. 버텍스도 리제네론도 모두 과학 앞에서 위험을 무릅썼던 바이오텍이다. 이를 위대함이라고 부른다면, 인류는 이 위대함에 빚지고 있는 셈이다. 사람을 정말 살려내는 과학의 가치 앞에, 위대한 한 발자국을 낸 이들에게 말이다. 그리고 이 위대함에 기꺼이 투자할 것이다.’
--- pp.25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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