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마음의 진화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번식 성공이 진화의 토대임을 기억해야 한다. 마음은 스위스 군용 칼이나 군사작전 사령부로서는 좀체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 타인의 뇌를 자극하기 위해 고안된 엔터테인먼트시스템으로서는 훨씬 감이 잘 잡힌다. 장식으로서의 마음 이론은 바로 이러한 직관에 잘 들어맞는다.
-여성들은 자신과 아이들을 위해 과일, 채소, 괴경식물, 딸기, 나무열매 등을 채집했다. 남성들은 짐승을 사냥해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싶어했지만, 대체로는 아무것도 잡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와 보다 실용적인 여성들에게 얌 몇 뿌리를 얻어먹기 일쑤였다. 그들은 일주일에 20시간에서 30시간만 일해도 먹고살 식량을 구하는 데 아무 문제가 없었다. 주말도 없고 유급휴가도 없었지만, 여가시간은 우리보다 훨씬 많았다.
이따금 포식자, 기생충, 세균의 공격을 받았지만 우리 조상들은 오늘날의 우리가 길을 건너는 것만큼이나 익숙하게 이 위험들을 헤쳐 나갔다. 자연은 ‘피로 물든 이빨과 발톱’이 아니다. 평상시에는 차라리 권태롭기까지하다. 포식자들은 보통 어린아이, 병든 자, 늙은이와 멍청이만 잡아먹는다. 병도 아무 때나 걸리는 것이 아니라, 대개 못 먹고 다쳐서 약해졌을 때 걸린다.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 조상들이 하루 종일 살아남을 걱정만 하면서 살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 사는 종 가운데 하나였는데, 이는 그들의 일상에서 죽음의 위험이 극히 적었다는 것을 뜻한다. 대부분의 고등한 유인원들처럼 그들도 인생의 대부분을 사회생활과 성적인 문제들을 붙안고 살았을 가능성이 크다.
-인간 여성은 진화의 역사 이래 가장 덩치가 큰 영장류들 가운데 하나였으며, 아프리카에서 가장 강한 잡식성 동물들 가운데 하나였다. 따라서 인간 여성들에게는 자신보다 고작 10% 클 뿐인 남자친구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호미니드 여성들은 부권사회에서 여성에게 요구하는 과장된 허약함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포식자와 맞선 원시인 여성의 모습이 궁금한가? 그렇다면 울먹이면서 겁에 질린 표정을 짓는 마릴린 먼로일랑 잊어버리고, 테니스 라켓 대신 횃불을 휘두르는 슈테피 그라프를 상상해 보라.
-하지만 여성에게 오롯이 물질적인 이익만 제공하는 것처럼 보이는 남성의 많은 구애행위들도 대개는 적응도 지표로서 진화했을 가능성이 크다. 많은 종에서 수컷들은 구애하는 동안 암컷에게 먹이를 제공한다. 밑들이 수컷은 자신이 잡은 먹이를 암컷에게 준다. 우리 남성 조상들도 여성에게 사냥한 고기를 나누어 주었다. 최근까지 현대사회의 남성들은 살림에 필요한 돈의 전부를 벌어 왔다. 이것들은 모두 여성들이 좋은 유전자보다 좋은 식량을 원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여기에 속아서는 안 된다. 밑들이 수컷은 암컷에게 알을 낳는 데 필요한 칼로리의 상당량을 제공한다. 현대의 남성들은 자본주의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모든 돈을 여성에게 가져다주곤 했다. 하지만 우리 남성 조상들이 공급한 고기는 여성과 자식이 필요로 하는 전체 에너지량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임신한 호미니드 여성은 280일 동안 하루에 4파운드, 총 1천 파운드의 음식을 필요로 했다. 호미니드 남성이 한 달 남짓한 구애기간 동안 그녀에게 10파운드의 고기를 제공했다면, 이것은 수렵채집인들로서는 적지 않은 양이다. 하지만 임신기간 동안 필요한 총 음식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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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선택의 강력한 힘에도 불구하고 남성의 마음과 여성의 마음을 비슷하게 만드는 세 가지 요인이 있다. 첫 번째 요인은 ‘남녀간의 유전적 상관성’이다. 모든 종에서 암컷의 유전자와 수컷의 유전자는 거의 똑같다. 암수 사이에 높은 유전적 상관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가령 인간 남녀는 22쌍의 염색체가 똑같고, 단 한 쌍, 즉 X, Y 성염색체만 다르다. …[중략]… 암수에 상관없이 새끼들은 모두 성적으로 매력적인아비로부터 평균 이상의 긴 꼬리를 물려받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꼬리 길이가 길어지는 속도도 두 성에서 동일하다. 또한 암수를 막론하고 모든 새끼들이 어미로부터 긴 꼬리를 좋아하는 성적 선호를 물려받는다. 말하자면 암컷의 꼬리 길이는 수컷의 꼬리 길이의 옷자락을 붙잡고 진화하고, 수컷의 성적 선호는 암컷의 성적 선호에 편승하여 진화하는 것이다.
-부모 양쪽이 평균 수치의 돌연변이를 갖고 있다고 치자. 각각은 자기 유전자의 절반을 자식에게 준다. 자식의 대부분은 부모가 가지고 있는 개수와 똑같은 돌연변이를 물려받는다. 하지만 자식들 중 몇몇은 운이 좋을 수도 있다. 운 좋은 자식은 아비로부터도 평균 이하의 돌연변이를 받고 어미로부터도 평균 이하의 돌연변이를 물려받는다. 운 좋은 자식은 이렇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품질 좋은 유전자들 덕분에 효과적으로 생존하고 번식한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돌연변이가 적은 그들의 유전자들은 다음 세대로 성공적으로 전파된다. 하지만 운이 나쁜 자식들도 있다. 운 나쁜 자식은 양쪽 부모로부터 모두 평균 이상의 돌연변이를 물려받는다. 따라서 제대로 발달하지 못하거나 어려서 죽을 수도 있다. 죽는 자식은 대량의 돌연변이와 함께 진화의 망각 속에 묻힌다.
-성선택에서는 동물들의 감각능력과, 선택 대상인 잠재적 짝들의 돌연변이 수준을 이어줄 연결고리가 필요한데, 적응도 지표가 바로 그 역할을 한다. 왜냐하면 적응도 지표는 적응도를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형질들이기 때문이다. 적응도 지표가 드러내는 형질들만이 짝 고르기에서 환영받을 수 있고, 짝 고르기에 의해 환영받은 형질들만이 성선택을 통해 진화한다. 적응도 지표는 성선택이 해로운 돌연변이를 걸러낼 수 있도록 해 주는 일종의 유전자 조리다. 섹스를 바라보는 이와 같은 돌연변이 중심적 관점에서는 성적 장식이나 구애행위도 적응도 지표로서 진화한다.
-인간의 뇌가 다른 유인원들의 뇌와 달리 사치스럽게 커진 이유는 이런 뇌가 생존이나 자식 양육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유전자가 얼마나 뛰어난지를 선전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뇌는 복잡해질수록 고장 나기 쉽다. 인간의 뇌는 너무나 복잡해서 돌연변이에 의해 쉽게 손상을 입는다. 또 이렇게 커다란 뇌는 생리적으로 사치다. 사치스럽고 복잡한 뇌만이 감당할 수 있는 언어와 예술 같은 행동을 통해, 우리는 잠재적 짝에게 적응도를 과시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선택이 짝짓기에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마음을 좋아했다면, 우리의 창조적 지능은 생존이익 때문에 진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행동을 할 때 돌연변이가 쉽게 노출되도록 하기 위해 진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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