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어 보니 모두 네 명. 그중 하나가 구석에 몰려서 맨다리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아이는, 오원중학교 교복만 달랑 입은 놈에게 목을 졸리고 있었다. 아이는 빨간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다.
그 자리에 서서 멈춰 서 있던 시간이 약 10초쯤? 그동안 K는 모든 상황을 파악했다.
빨간 목도리를 두른 아이는 두 놈에게 양팔을 붙잡힌 채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무어라고 소리치려는 것 같았는데 목을 붙잡힌 아이는, 컥컥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 별수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모른 척하고 지나치는 수밖에. K는 땅만 보고 걸음을 내디뎠다.
놈들 옆을 스쳐 지나갈 때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에서 고개를 들었을까. 눈치를 보느라 그런 거였는데, 이번엔 빨간 목도리와 눈이 마주쳤다. 얼굴은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가로등 불빛 때문에 그림자에 얼룩져 있었지만, 눈빛만은 또렷하게 빛났다.
빨간 목도리의 눈에는 물기가 가득했다. 그 물빛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반짝였다. 그 눈빛으로 말했다.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어찌나 간곡하게 느껴지던지 K는 하마터면 손을 뻗을 뻔했다.
그 때문에 다시 한 번 걸음을 멈추었다. 하지만 K는 빨간 목도리의 눈길을 외면했다. 이런 일에 끼어들고 싶지 않았다. 그럴 용기가 그에게는 없었다. 있었다면, 스무 해 넘게 그림자처럼 살아오진 않았을 것이다.
K는 몸을 살짝 옆으로 비틀며 무리를 지나쳐 갔다.
“그래! 그럴 때는 기분이 어땠니? 애들한테 맞고 돈 뺏기고 그럴 때 말이야. 아, 죽고 싶었겠지. 나도 그랬어. 그럴 때마다 종종 이런 상상을 했어. 갑자기 힘이 세져서 그 새끼들 뒤통수라도 한 대 후려갈기는 거야. 푸핫! 어때 괜찮은 생각이지? 가령 투명 망토 같은 게 있다면, 그걸 뒤집어쓰고 당장이라도…….”
3호의 얼굴이 환해졌다. 두 눈이 날카롭게 번득였다.
“바로 그거예요!”
“뭐?”
“해주세요! 제발!”
“뭐, 뭘? 그 애들 뒤통수……. 지금 진심으로 말하는 거야? 그게 가능……할까? 그건, 아니야. 가만, 그놈들이라면 몰라도 너를 괴롭힌 녀석들을 내가…….”
그러자 3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워, 원하는 게 그거였어?”
“걔들도 알아야죠. 아무런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맞는 게 어떤 건지.”
그러더니 3호는 씩 웃었다.
“욕이라도 해주고 싶어요.”
오랜 시간 추위에 떨었음에도 아무 수확도 없었으니 억울하기도 할 테다. K는 3호의 말이 이해가 됐다. 창밖을 바라보는 3호의 눈이 물빛으로 번들거렸다.
“그럼, 좀 시원해질 거 같아?”
“아저씨는 안 그래요?”
“글쎄…….”
K는 뭐라고 적당히 할 말이 없었다.
“전…… 억울해요. 아저씨도 그렇죠?”
……라면 셔틀은 주로 규종이가 시켰다. “5분 안에 라면 세 개! 알았지?” 두 개는 양손에 들면 되지만, 세 개는 무리였다. 빈 박스라도 있으면 모르는데, 그런 경우는 드물었다. 물론 그래도 해야 했다. K는 쏜살같이 매점으로 튀어 갔다. 그런데 그날따라 쟁반도, 가끔 사용하던 골판지도 구할 수가 없었다.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K는 고민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나무젓가락을 한 개 더 얹는 것. 이를테면, 컵라면 위에 나무젓가락 두 개를 적당한 간격으로 가로질러 올려놓고 그 위에 물을 부은 컵라면을 쌓는다. 같은 방법으로 컵라면을 3층으로 쌓을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건, 컵라면 아래쪽을 받쳐 들면 점점 뜨거워지기 때문에 빨리 달려야 한다는 것. 아니면 중간에 한두 번 쉬어야 하는데 마땅히 쉴 곳도 없으므로 최대한 쉬지 않고 서둘러야 한다. K는 머릿속에 그린 그림을 그대로 실행했다.
성공적이었다. 다만 그날따라 아이들이 많아, 서둘렀음에도 불구하고 5분이 훌쩍 넘어 버렸다.
쥐는 좀처럼 죽지 않았다. 저팔계가 돌아간 뒤, 쥐를 꺼내 눈을 질끈 감고 김진호와 병수, 규종이를 생각하면서 두 번쯤 패대기를 쳤다. 하지만 그런 뒤에도 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대걸레로 내리치자 찍찍 소리를 냈는데, 피를 흘리면서도 여전히 죽지 않았다. 그래서 K는 저팔계를 떠올리며, 또 몇 번을 두들겨 댔다.
“아, 아직 안 죽었어. 어쩌지……. 잡아!”
K는 뒤에 서 있는 3호에게 말했다. 하지만 3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잡아! 잡아서 죽여!”
K는 다시 소리쳤다. 하지만 3호는 오히려 뒤로 물러났다. 그럴수록 K는 화가 났다.
“뭐해? 네가 잡아야지. 너 때문에 이러는 거잖아. 어서 잡아!”
그래도 3호는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K는 더 크게 소리쳤다.
“내 말 안 들려? 쥐 새끼 하나 잡아 죽일 용기도 없으면서 무슨 복수를 한다고 그래? 어서 잡아! 야! 3호! 개새라고 생각하고 대가리를 짓이겨!”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