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싸움으로 남녀관계를 유지한다
모쪼록 싸워야 정이 든다.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은 싸우면서 자라고 어른들은 싸우면서 사랑을 키운다. 나라는 여자와 나의 남편이라는 남자의 싸움거리는, 아주 모범적이게도, ‘책’이다. 그러나 ‘책’에 대한 싸움이라고 해서 멋진 고준담론이 벌어진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싸움의 원인은 시시껄렁하다. “왜 책을 그렇게 더럽게 보냐?”는 남편의 불만과 “책 좀 더러워지는 것 가지고 뭐 그렇게 난리냐?” 하는 나의 반박 사이에서 일어나는 그야말로 치졸한 싸움이다. 사랑싸움 할 일이 어디 ‘책’뿐이겠는가. 이 책으로 싸움을 하고 나면 또 다른 싸움거리를 찾아야지. 안그랬다가는 남자 여자의 관계는 끝장날지도 모른다. 같은 공간에 산다고 남자 여자 관계이랴. 마음먹는 대로 쉽게 갈라설 수도 없으니 싸움거리나마 만들면서 관계를 유지해 봐? 남자 여자의 싸움거리를 축복하라! --- <책을 발로 보나? 책을 손 씻고 보나?> 중에서
‘딸딸’ 엄마 아빠? 완벽해! 완벽해!
나는 딸딸 엄마고, 나의 남편은 딸딸 아빠다. 아들만 있는 엄마 아빠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딸의 존재가 얼마나 큰 축복인지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정도다. 기를 때 아사바사 재미있고, 감정 표현이 자연스러우니 감동적인 순간들이 훨씬 더 많고, 집안일도 상대적으로 잘 도와주니 그야말로 살림 밑천이다. 게다가 딸을 잘 키우면 근사한 사위 아들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으니 얼마나 금상첨화인가. 딸이 좋은 것은, “내가 알아서 해요”라며 자신을 닫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힘든 선택의 과정을 이 엄마 아빠와 공유하기 때문이다. 여하튼 딸을 통해 이 힘든 세상을 다시 살아보는 것은 충분히 흥미로운 일이다. 딸은 완벽하다. 딸 가진 엄마 아빠, 행복해하자. 딸을 통해 세상을 다시 살아 보자. --- <‘딸딸’ 엄마 아빠의 도전> 중에서
부엌은 신나는 놀이터
부엌이란 집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공간임엔 분명하다. 불과 물이 있고, 만물상에, 작업장이자 까페이고 레스토랑이다. 부디 남자에게서 물장난, 불장난을 빼앗지 말라. 그 황홀한 장난에 맛을 들이게 하자. 부디 아이에게서 물장난, 불장난을 빼앗지 말라. 그 황홀한 장난의 묘기를 익히게 하자. 근사한 남자, 멋진 아이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요리의 순간 예술을 같이 만끽하자. 그 예술적 순간을 같이 맛보자. 재주 없다고 타박하지 말고, 못한다고 잔심부름만 시키지 말고, 내가 더 잘한다고 나서지 말자. 불기를 머금어 더 파릇파릇해지는 순간을, 기름 한 방울로 비단처럼 보드라워지는 순간을, 간 하나로 희한한 맛으로 변하는 순간을, 냄비 속에서는 볼품없어 보이던 것이 접시 위에서 마술적 예술로 변하는 순간을 즐겨 보자. 그리고는 먹어서 없애는 것이 요리다. 그러나 먹는다고 없어지기만 할까. 먹은 엇은 사랑이고 마신 것은 애정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같이한 그 시간의 기억은 내 몸속 어디엔가 아름답고도 영양가 만점으로 새겨졌을 것이다. --- <부엌은 당신과 나의 놀이터> 중에서
봄맞이를 ‘자기 집 그리기’로 맞아 보자
왜 집을 그려 봐야 하는가? 첫째, 그리면 보인다. 다 아는 것 같던 것도 실제 손으로 그려 보면 새로운 것이 보인다. 둘째, 가장 쉽게 그릴 수 있는 대상이다. 평소 익숙하게 알고 있는 공간이니 맘만 먹으면 언제나 그릴 수 있다. 셋째, 합리적인 생각을 키운다. 집은 은근히 복잡한 공간이다. 여러 물건, 여러 설비, 여러 기능이 있고 또 가족 여럿에 관련된 여러 이야기가 있다. 그리다 보면 이들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어떻게 해 볼까 하는 궁리도 생기게 된다. 넷째, 당신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사는 이야기라는 것이 얼마나 다양한가. 삶의 느낌이란 얼마나 미묘한가. 그런 이야기와 느낌에 대해서 상상하게 된다. 거기다 집을 그려 보면 줏대도 생긴다. 새봄맞이 단장이나 가구를 사겠다면 자기집 평면 정도는 가지고 가자. 전문가가 이것저것 더 좋은 것이라 권하는 앞에서 꿋꿋하게 줏대를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부부가 함께, 아이와 함께 집을 그려보자. 그리면서 집에 정이 들 것이다. 그리면서 삶에 정이 더 들지도 모른다. --- <전 국민의 ‘자기 집 그리기’ 운동> 중에서
남자 소변기를 없애볼까?
남자 화장실을 설계하려면 소변기 덕분에 아주 골치 아프다. 소변기 붙일 기다란 벽이 필요하다는 것과 소변기를 보는 시각 동선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변기를 잘못 배치했다가는 문이 열렸을 때 주르르 서 있는 남자들 뒷모습을 보게 되니 난감하다. 남자 화장실 문화는, 한마디로, 깨끗하지 않다. ‘소변기’의 존재가 주 원인이다. 도대체 물을 내리지 않거니와 제대로 표적(?)을 맞추지 못하는 남자들이 의외로 만다는 사실 때문이다. 남자 소변기를 없애면 어떻게 될까? 적어도 냄새라도 좀 덜 나지 않을까? 좀 더 기대해 보자면 남자들이 ‘좀 더 괜찮은 신가’가 될 가능석이 높아지지 않을까? 적어도 하루에 몇 번씩 ‘물건’에 신경 쓰는 일이 없어지지 않을까? 부질없는 생각만은 아닐 게다. 남자 소변기가 등장했듯 또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설계 프로젝트에서도 남자 소변기를 그대로 달고 말았다. 저런……. --- <남자 소변기 없는 화장실을 꿈꾼다> 중에서
지방 도시에서 살아 보는 유목민 프로젝트
우리는 너무 ‘붙박이’다. 유목 전총보다 농촌 전통이 강해서 그럴까? 잠시 잠깐의 여행이야 언제든지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여행으로 보는 것과 살아 보는 것과는 영 다르지 않은가. 먹고살기 바쁜 세대나 일터에 매인 세대들이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과감하게 지방 도시에 살아 보는 것이 유행이 되면 좋겠다. 아예 일이 년씩 돌아다니며 살아 봐도 좋을지 모르겠다. 각 도시들이 다 매력이 있으니 죽기 전에 ‘멋진 뜨내기’ 생활도 좋을지 모르겠다. 서울보다 집값 싸겠다, 물가 싸겠다, 정취 있게다. 음식 맛있겠다, 돌아볼 유산들 많겠다, 요새야 어디에서도 인터넷 되겠다, 이거 참 아무리 봐도 괜찮은 인생이 될 듯싶구나. 우리 지방 도시들이 그 색깔, 그 향기, 그 멋과 맛을 간직하기를 기대하는 만큼, 우선 살아 봐야겠구나. 금수강산 한반도를 떠도는 유목민 프로젝트. --- <21세기형 유목민 프로젝트> 중에서
나를 위한 ‘호 짓기’ 프로젝트
많은 사람이 내 이름의 ‘진’ 자를 참 ‘眞’으로 생각하고, ‘애’ 자를 사랑 ‘愛’ 자로 생각해서, 이른바 내 이름의 뜻을 ‘참사랑’으로 안다. 사랑을 잘 하려니 할지도 모른다. 헛물 켰다. ‘애’ 자는 그 ‘愛’ 자지만 ‘진’ 자는 ‘縝 ’ 자를 쓴다. 직역하자면 ‘사랑을 누른다, 사랑을 제압한다’는 뜻이니 영 재미없지 않은가? 나는 생각을 넓히기로 했다. ‘愛’는 정열, 열정의 뜻도 갖는다. 그렇다면 ‘정열을 다스린다, 열정을 조율한다’는 해석은 어떨까? 이름 짓기란 ‘시 짓기’다. 소망을 빚어 넣고 축복을 불어넣으며, 과거 역사를 생각하면서 미래 역사를 꿈꾸는 행위다. 요즘 나는 나에게 ‘호’를 하나 붙여 주는 이름 짓기 프로젝트를 안고 있다. 이름이야 내 의지와 달리 엄마 아버지가 붙여 주셨고 나는 그 이름에 걸맞게(?), 이왕이면 뜻을 담으려고 살지만 여전히 별로 맘에 드는 이름은 아니다. 사실 자기 이름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래서 나는 나에게 ‘호’를 하나 붙이는 프로젝트를 해 볼까 말까 생각하는 중이다. 어니 내가 나에게 새 이름을 붙여볼까? 나를 상징하고 나를 뜻있게 하는 이름으로……. --- <‘이름 짓시’는 시 짓기> 중에서
가지 않은 길을 걸어 보며 삶의 탐정이 되어 보자
사람들은 대체로 길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지름길, 바른 길, 맞는 길을 찾는다. 넓고 훤한 길을 택하려 한다. 아는 길, 편한 길을 가려 든다. 그러고는 유명한 시구처럼 ‘가지 않은 다른 길을 그린다’는 심정으로 사는 것이나 아닐까. 목적지는 알되 찾는 과저에서 잃어 보는 것은 어떨까. 다람쥐 쳇바퀴처럼 도는 일상의 가운데 토막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흩뜨려 본다고 할까. 지도는 지니되 보지 않고 가면 어떨까. 머리를 동원하면 금방 찾는다는 믿음을 가지되 먼저 ‘감(感)’을 동원하는 것이다. 일정 시간을 아예 헤맴에 할애해 보면 어떨까. 아무 정거장에서나 내리고 일부러 모르는 동네에서 헤매 보는 것이다. 길을 잃는 것은 자신이 자신이라 알고 있는 것을 잃어 보는 것이다. 길을 찾는 것은 곧 자신을 찾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알고 있던 나, 내가 모르고 있던 나, 내가 되고 싶던 나, 또 다른 나……. 나는 오늘도 샛길로 돈다. 멍하니 걸어보고 길섶에 철퍼덕 앉아 본다. 나의 오감은 생생하다. 나는 100퍼센트 탐정이다. --- <길 잃어 보는 재미> 중에서
팽팽한 긴장감으로 치열한 30대 여자, 당신만의 중심 만들기 프로젝트
30대 여자가 처한 상황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일하는 여자, 아이 기르는 여자, 출산 유보하는 여자, 아이 학수고대하는 여자, 결혼한 여자, 열혼 압력 받는 여자, 하루에도 몇 번씩 이혼을 생각하는 여자, 이혼해 버린 여자, 사표 낼까 말까 하는 여자, 너무 신나게 사는 여자, 겉보기 여유와 달리 뒤처지는 느낌에 시달리는 여자 등등. 징그러운 것은 이런 다양한 상황의 대다수가 어느 여자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한 가지도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는데 수많은 상황이 교차하니 얼마나 복잡한가. 그러지 그 많은 갈래 속에서 ‘자아 분열적’으로 느끼는 게 당연하지 않을까? 바로 이래서 30대 여자들은 공격적일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노처녀 증후군이 아니라 30대 여자 증후군일지도 모른다. 여자 30대는 자기 중심을 찾아가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여자는 자신의 중심을 만들어 가야 하기에 비록 분열적인 상황에서 훨씬 더 괴롭지만 훨씬 더 창조적이다. 잊지 말자. 30대를 팽팽한 긴장감으로 잘 보낸 여자들이 비로소 매력적인 여성이 된다. 물론 그 팽팽한 긴장감만으로도 매력적이다. --- <자아 분열적 30대 여자들의 건승을 위해서>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