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국어대학교 네덜란드어과를 졸업하고 네덜란드 레이던 대학교와 스위스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수학했으며, 성균관대학교에서 고대 게르만어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네덜란드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한국어-네덜란드어 사전』,『네덜란드어 문법』,『네덜란드사』(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의식』,『희망과 기도』,『인도 게르만어 지역의 분류』,『희망을 키우는 착한 소비』 등이 있다.
한국은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라는 말로 몇몇 사람들에 의해 38선으로 분단되었고, 베트남 전쟁의 씨앗이 뿌려졌다는 것을 알아챈 사람들이 있었다. 물고기들은 전에는 영향이 없었던 이상한 물질로 인해 죽기 시작했다. 70년대에 접어들자 운하 위에는 차량 정체가 점점 심해졌고, 차에 탄 사람들의 얼굴에는 좌절감과 공격성이 뒤섞여 나타났다. 만물의 어머니인 자연이 파괴될 것이라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고, 오염된 시대의 종말이 다가왔다는 사실, 특히 이번에는 결정적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_17~18쪽
인니 자신이 동요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는 조용한 물체가 되어 빙빙 도는 커다란 소용돌이 속에서 위로 들어 올려졌다가 마치 채찍질로 창밖으로 내쳐지는 것 같았다. 온몸을 토해 내는 기분이었다. 그것도 모자랐다. 남아 있던 공허한 감정도 모두 밖으로 튀어 나가고 싶어 했다. 구토는 결사적으로 위로 치밀어 올라와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_129~130쪽
마흔이 넘은 인니는 더 이상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일본어도 배우지 않을 게 확실했다. 그 확실함에 인니는 문득 슬퍼졌다. 이제 인생의 유한함이 분명해지기 시작했고 그 유한함 때문에 죽음이 가시화되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옳지 않은 말이었다. 옛날에는 모든 것이 가능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았다. 인간은 본의 아니게 결정지어져야 하는 존재다. _186쪽
잔은 폭이 넓고 뭉툭해 보였다. 사람의 손에 만들어진 게 아니라 태고에 저절로 생겨난 것 같았다. (중략) 사물의 존재 여부를 가리기 위해서는 육안으로 그 사물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여기서 빗나갔다. 사물에 어떤 열반 같은 것이 있다면 이 라쿠 찻잔이야말로 벌써 영겁을 위해 열반에 이르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