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베다>에 의하면, 브라만 계급은 창조주인 브라만의 입에서, 크샤트리아 계급은 그 팔에서, 바이샤 계급은 그 넙적다리에서, 그리고 수드라 계급은 그 발에서 나왔다고 한다.일명 ‘사성제(四姓制)’로 알려진, 그러한 신화적 기원을 바탕으로 한 계급 사회는 브라만 계급을 정상으로 하여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에 이르기까지 각 계급 간의 엄격한 계층적 불평등을 사회 통제의 원칙으로 하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계층적 불평등 원칙은 각 계급의 권리와 특혜를 차별화하는 역할도 했다. 이들 ‘사성(四姓)’ 아래에 ‘불가촉천민’ 또는 ‘아티 수두라’ 계급이 있었다. 사성에 속한 사람들은 부정을 탄다는 이유로 그들을 보거나 그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금지되었을 뿐더러, 그들을 만지는 것은 더더욱 금지되어 있었다. 심지어 그들의 ‘그림자’ 조차도 부정한 것으로 여겨졌다.
--- p.58
어느날 수학 선생님이 브힘을 불러 내어 칠판에 수학 문제 하나를 풀라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학생들, 특히 상위 카스트 출신 학생들이 목청을 드높여 소란을 떨기 시작했다. 만약에 브힘이 칠판에 손을 댄다면, 그 칠판 뒤에 놓은 자기들의 도시락이 “부정탄다”는 것이었다. 결국, 브힘은 학생들이 도시락을 칠판 뒤에서 모조리 끄집어 낸 다음에야 칠판 위에 수학 문제를 풀 수 있었다.
--- p.66
‘마누법전’은 가장 오래된 힌두교 법전으로서 카스트 계급들 간의 불평등을 정당화함은 물론, 감히 <베다>를 낭송하는 소리를 들으려고 하거나 읽으려고 하는 수드라들에게는 귓구멍에 납 녹인 물을 부어 넣는 혹형을 가할 것을 규정하고 있었다.
--- p.82
“불행하게도 저는 힌두교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것은 저로서도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여러분 앞에서, 제가 힌두교인으로 죽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고 엄숙하게 선언하는 바입니다.”- 욜라에서의 군중 집회 연설중
--- p.88
간디와 암베드카르 사이의 갈등은 개인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불가촉천민 문제를 둘러싼 이념상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암베드카르에게는 불가촉천민 문제가 가장 시급하고 가장 절실한 문제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태어난 계급이기도 한 불가촉천민 계급에게 끊임없이 가해지는 비인간적인 차별대우와 불의한 속박을 깨부수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로 이미 서원까지 한 터였다. 하지만 간디에게는 이 문제가 수많은 문제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다. 실제로, 간디는 다음과 같은 말로 이 문제에 대한 자신의 미온적인 태도를 합리화했다. “저에게는 이 문제가 목숨만큼이나 중요한 문제이기는 합니다만, 대(大)를 위하여 소(小)가 희생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 p.98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밥벌이를 하는 방법에 관한 한, 자신이 속한 계급의 직종을 따라야 한다. 이는 조상 대대로 물려 오는 가업을 그대로 이어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암베드카르에게는 조상이 물려 준 가업을 그대로 이어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절대적으로 부당한 것이었다. 그럴 경우에는 각자 자신의 능력에 맞고 좀더 많은 수입을 보장하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처음부터 박탈당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 p.102
간디가 반(反) ‘불가촉’ 정책의 시행에 그다지 열심을 내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1915년부터 1932년까지 여섯 차례의 단식-‘자기 정화’, ‘마음의 변화’ 등을 목표로 했음-을 결행하면서도 ‘불가촉’이라는 사회적 저주를 깨부수기 위한 단식은 단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로도 알 수 있다. 그는 단지 ‘정통파’ 힌두교인들에게 불가촉천민들을 사랑과 긍휼로 대하라고 권면했을 뿐이며, 불가촉천민들을 위한 ‘사티아그라하운동’ 은 생각조차 해 본적이 없었다. 그뿐 아니라, 간디에게는 불가촉천민들의 직접적인 집단행동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동으로 보였다. 그러므로 암베드카르 박사와 그의 지지자들이 우물, 저수지, 사원 등 각종 공공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며 ‘사티아그라하 운동’을 시작했을 때 간디가 이 운동을 가로막고 나섰던 것도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 p.114
마침내 1932년 8월 20일, 영국 수상의 ‘중재령’에 의해 불가촉천민들에게도 ‘지역의회’에 그들의 대표를 독자적으로 선출하여 파견할 권리가 주어졌던 것이다. 자신의 노력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간 것을 알게 된 간디는, 그로서는 가장 극단적인 수단을 동원키로 작정한다. 그래서 1932년 9월 13일 불가촉천민들에게 독자적인 분리 선거권이 주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죽기를 작정하고’ 단식을 계속한다는 비장한 선언을 하게 된다. 실제로 9월 20일에 시작한 이 겁나는 단식은 예의 ‘중재령’을 수정하는 협정(‘푸나협정’ 또는 , ‘예르와다 협정’이라 불리우기도 한다)이 의회 지도자들과 암베드카르 사이에서 체결됨으로써 6일만에 끝나게 된다.
--- p.124
교육은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인 사고력과 감성과 의지력을 키워 주는 것이기에 암베드카르 박사는 교육을 대단히 중요시했다. 그는 부모가 자녀들을 교육시킴으로써 그들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하면서, “자녀들의 보다 나은 앞날을 기원하지 않는 부모라면 짐승과 다를 게 무어냐” 고 주장했다.
--- p.137
현대 인도의 입법자로서 암베드카르 박사가 이루어 놓은 또 하나의 업적은 입법 활동을 통해 인도 여성들의 지위를 향상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그는 재산, 입양, 결혼 관계등의 문제에 있어서 여성들의 평등한 지위 확보를 위해 ‘힌두법전’의 개정을 추진하였다.
--- p.150
‘저는 이 헌법안이 평화시에든 전시(戰時)에든 온 국민을 하나로 단합할 수 있는 유연성과 현실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만약에 새로 제정된 헌법 아래서 이 나라 사정이 더욱 악화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헌법이 잘못 되어서가 아니라 인간들이 악한 탓일 것입니다.
--- p.182
“전쟁터에서 당당히 적을 맞아 싸워 이긴 사람은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한편, 비겁하게 적으로부터 도망친 사람도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비겁한 자가 승리자와 같은 취급을 받아서야 되겠습니까? 인도의 역사를 되돌이켜 보면, 이 민족의 생존 과정에 수많은 굴욕과 노예적인 예속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단지 우리가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리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전통적인 사회 구조가 건전하고 훌륭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는 것입니다.
--- p.190
“인도의 전통적인 결혼 제도에 관한 한, 공정하고 자유로운 양심을 지닌 사람으로서 그것이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 제도는 여성들을 항구적으로 노예화하면서 남성들에게는 일부다처제를 합법적으로 보장해 주는 제도입니다. 이 제도 하에서는 남편이 제아무리 포악한 행동을 하더라도 한 여성이 혼인 관계라는 족쇄에서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저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분명히 묻고 싶습니다. 우리가 나아갈 길은 무엇입니까? 항구적인 노예 제도입니까, 아니면 남녀가 평등하게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복지사회입니까?”
--- p.191
“이제 우리는 부모가 단순히 자녀를 낳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운명(카르마)을 바꾸어 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특히, 아들 딸 차별 없이 자녀 교육에 힘써 나갈 때 우리에게는 밝고 희망찬 미래가 약속될 것입니다..” 이처럼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암베드카르 박사였기에 그의 세 가지 행동강령(교육, 운동, 조직)중 첫 번째로 바로 ‘교육’을 내세웠던 것이다.
--- p.198
“붓다의 가르침이 지닌 첫 번째 특징은 인간의 마음을 만물의 중심으로 본다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것에 선행하고 모든 것을 지배하며 모든 것을 창조한다. 그러므로 마음을 이해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결국, 마음을 이해하고 함양해 나가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붓다의 가르침이 지닌 두 번째 특징은, 인간의 마음을 우리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생각과 외부로부터 부딪쳐 오는 모든 일들의 근원으로 본다는 것이다. 악(惡)에 관련된 것들, 악에 속한 것들, 그리고 악 그 자체가 모두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선(善)에 관련된 것들, 선에 속한 것들, 그리고 선 그 자체 역시 인간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비뚤어진 언행을 일삼는 사람에게는 마치 소달구지 바퀴가 달구지를 끄는 소의 발자국을 좇아가듯이 재앙이 닥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정화(淨化)하는 일이야말로 종교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붓다의 가르침이 지닌 세 번째 특징은 모든 종류의 악행을 삼갈 것을 권면한다는 점이다. “붓다의 가르침이 지닌 네 번째 특징은, 참된 종교는 경전보다는 교리의 실천에 있음을 강조한다는 점이다.”
--- p.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