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孫錫春
손석춘의 다른 상품
|
바리데기. 과연 제 안에 그럴 힘이 있을까요. 피의 강물을 넘어 붉은 배를 저어갈 힘이. 불굴의 게릴라 이현상과 맺은 ‘인연’으로 평생 소용돌이치는 내면을 살아간 저의 아비를 어떻게 살려낼 수 있을까요. 그분의 눈부신 눈빛, 그분의 순결한 사랑, 그분의 깨끗한 열정을 저 메두사의 눈, 저 섬뜩한 얼굴, 저 갈기갈기 찢겨진 두뇌에서 어떻게, 어떻게 살려낼 수 있을까요. 최천민에서 홍기수를 살려낼 꽃, 그 꽃은 어디에 있을까요?
왜 잘 알지도 못하는 당신께 읽기 불편한 편지를 마흔아홉 통이나 보냈는지 궁금하신가요? 그래요. 기실 저는 당신을 몰라요.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을 잘 알고 있어요. 맞혀볼까요? 먼저 당신은 착한 사람이지요. 맑은 눈을 지니지 않으셨나요?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착취하는 세상에서 살아가기가 시나브로 힘든 분이 아닌가요. 하여, 그 세상을 바꾸려는 깨끗한 열정이 당신 안에 타오르고 있지요. --- 본문 중에서 |
|
이 세상에 태어나자마자 스웨덴으로 해외 입양된 주인공은 어느 해 생일날 문득,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양부모는 그녀에게 생모의 유물인 나침반과 ‘홍수련’이라는 한국 이름을 알려준다. 홍수련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연세대 한국어학당에 등록하고 공부하던 중, 한민주를 만나게 되어 그와 함께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선다. 하여, 어머니가 빨치산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을 알아낸 뒤에 이어지는 그녀의 출생에 얽힌 이야기는 피새 영감을 만나 결국 해방공간에서 활약하던 전설의 인물 이현상을 비롯해 그의 호위대였던 한 인물로 이어진다.
|
|
2001년 『아름다운 집』, 2003년 『유령의 사랑』, 2005년 『마흔아홉 통의 편지』로 5년에 걸친 손석춘의 3부작 소설이 완결되었다. 작가가 밝혔듯이, 20세기 우리 겨레의 진실을 3부작으로 완성하겠다는 다짐을 이뤄낸 셈이다. 『아름다운 집』을 발표했을 당시, 이 작품은 많은 이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냈다. 일기 형식으로 된 이 작품에서 그 주인공인 이진선이 과연 실존인물인지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작가는 물론이요, 출판사 역시 뭐라 말해야 할지 난감하기가 그지없었다. 그저 단 한마디, “이 작품은 손석춘의 소설입니다.”
그렇다. 손석춘은 이 세 작품 모두에 ‘손석춘의 소설’이라고 붙여놓았다. 모든 소설이 그렇듯이 그 소설 속에 얼마만큼의 사실과 허구가 교직되어 있는지, 이는 작가만이 알 뿐이다. 결국 독자는 그 작품을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작가가 쳐놓은 그물에 걸릴 수도, 빠져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3부작을 이끌어가는 인물은 기자인 한민주다. 『아름다운 집』에서 한민주는 해방공간에서 고뇌하는 지식인 이진선의 일기를 소개하는 역할을 하며, 『유령의 집』에서는 런던 어느 공원에 묻힌 칼 마르크스를 불러내어 그의 삶과 사랑을 소개하면서 이 땅의 언론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고뇌를 토로한다. 그리고 완결작인 『마흔아홉 통의 편지』에서는 해외 입양아인 한 여성의 정체성을 찾아나서는데 안내 역할을 함과 동시에 보다 성숙한 중년의 모습으로 다가선다. 이제 지난 20세기에 얽힌 우리의 현대사를 각각 3편의 소설로 엮은 그의 작업은 완결되었다. 그가 3부작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손석춘은 3부작에 걸쳐 끊임없이 우리의 삶과 역사의 진정성 회복을 위한 모색을 요구하고 있다. 이 땅에 노동자로 살아가는 것, 지식인으로 살아가는 것, 남과 북이라는 분단 조국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고뇌는 끝을 모른다. 하여,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을 위하여 아름다운 집을 짓고 싶은 솟구치는 열망으로 이름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투사들의 영혼을 불러내어 마침내 한판 씻김굿을 벌인다. 이 모든 것은 결국 화해와 사랑으로 제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기에 그래서 더욱 가슴을 벅차게 한다. 이 작품은 『아름다운 집』과 마찬가지로, 해방공간에서 빨치산으로 활동했던 인물들을 밑절미로 삼았다. 『아름다운 집』의 이진선이 고뇌에 찬 지식인의 고백이라면, 이 작품은 책상머리에서 벗어나 사회주의를 이루려는 행동가들의 삶과 열정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에서는 빨치산의 영웅 ‘이현상’의 숙청과 죽음에 얽힌 의문을 작가 특유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풀어내고 있다. ‘마흔아홉 통의 편지’는 곧 49재와 연결되어 있다. 49재는 죽은 이의 넋이 저승에서 행복하기를 비는 제사이며, 이때 벌이는 한판 굿이 지노귀새남이다. 새남은 새로 태어남, 곧 부활을 뜻하며, 이때 이 한판 굿을 주도하는 무당은 색동옷을 입고 여신을 부른다. 그 여신이 바로 바리 공주, 바리데기다. 모든 사악함을 물리쳐야만 비로소 바리 공주를 볼 수 있다는 작가의 표현처럼, 어쩌면 작가 손석춘은 그 굿을 통해 그 지난한 역사 속에서 방황하고 있을 수많은 원혼들을 불러내어 이제 편히 쉴 수 있도록 하고, 이와 더불어 아직 오지 않은 동지를 깨끗한 열정으로 맞이하고 싶은지도 모를 일이다. 20세기 현대사를 소재로 한 손석춘의 3부작을 관통하는 주제는 바로 인간에 대한 사랑과 배려, 그리고 역사에 대한 올바른 시각이다. 그리고 좌절과 절망이 아닌, 아직 우리 곁을 찾아오진 않았지만 어디메쯤 오고 있을 우리의 희망을 노래하고픈 강렬한 열정이다. 그래서 여느 작가와는 다른 모습으로 다가서는 손석춘의 소설에 우리는 점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