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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연 | 민음사 | 1997년 01월 31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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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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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1997년 01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60쪽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37402357
ISBN10 893740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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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소 근무에 들어가서 북쪽으로 넘어가려고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성식은 88 담배가 인기가 좋다고 한 보루만 더 구해 달라는 우진의 부탁에 담배도 준비해 놓은 터였다. 그러던 중 갑자기 사이렌이 울리며 초소 무전 호출음이 귀를 때렸다 긴급히 원대 복귀하라는 지시였다 비상이었다 허둥지둥 들어가보니 모두 완전 군장을 한 채 내무반에서 정렬을 하고 앉아 있었고 선임 하사가 들어와서 한 사람 당 탄창 6통과 수류탄 8개씩을 지급하고 있었다 분대별로 M-60과 로켓포가 지급되고 유탄발사기 까지 장착해야 했다,
--- p. 240
아버지에게 혁명과 통일이 무엇이었는지는 몰라도, 최후의 이데올로기의 전장 끄트머리에 서서 나는 이 땅이 갈라져 있는 것이 결코 바람직하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도대체 뭐하는 짓들인가? 같은 민족끼리, 형제끼리 총을 겨누게 하고 세상에서 유일하게 같은 언어를 소유한 집단끼리 한마디 말도, 몸짓도 금지당해 언어가 정지된 곳…… 언어는 존재다. 이곳엔 싸늘하고 낡은 이데올로기의 그림자 이외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떻게 이런 장소가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정말 아버진 이런 자신의 조국을 견딜 수가 없어서 제3국을 택했을까? 내가 상관할 바는 아니지만 이 땅은 참 안쓰러워 보였다.
--- p.228
---아, 이건요. 아버님 성함 같은데요. 이...... 이게 무슨 자더라. 하하, 저도 한자가 그리 센 것은 아니라서요. 가만 있자......
---아마 경 자, 수 자일걸세
---아닌데요. 끝자는 우 자인데요. 이건 확실해요. 연뿌리 우자, 맞아요. 아, 가운데 이 글자는 연 자예요.
---그럴 리가 있나? 우리 아버지 성함은 이, 경, 수인데......
---그건 잘 모르겠구요. 하여간 여기 적혀 있는 한자는 연 자, 우 자예요. 뭐, 필명이나 가명일 수도 있겠죠. 가운데에 연자는 잘 안 쓰이는 글자라서 조금 헷갈렸지만 확실합니다.
---뭔가 착오가 있겠지...... 아니 그럴 수도...... 잠깐, 지금 뭐라고 했나? 다시 이야기해 봐. 이름이 뭐라고?

세번째 충격은 이렇게 우연히 찾아왔다. 내가 강 중위에게 나도 모르게 갑자기 언성을 높이자 이에 당황한 강 중위는 다시 조심스럽게, 또박또박 이야기했다. 이, 연, 우...... <베르사미 씨 아버지와 같은 인민군 사단에 있었던 사람들 중에 이연우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과 착각한 거죠. 나이도 비슷하고...... 고향도 그 근처이거든요. 이연우라는 사람......> 언젠가 스위스에서 한국인 기자에게 들은 말들이 불현듯 떠올랐고, 순간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1953년 거제도 포로 수용소에서 악명을 떨쳤던 공산 포로 애국대 행동 대장 이연우는 지금 스위스에서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는 것이다. 가슴속의 싸늘함은 한동안 지워질 줄을 몰랐다......
--- p.229
그 총소리가..울려펴지고 잠시동안 침묵이 흐를 때 제 머릿속에 무엇이 지나갔는지 아세요? 비참하게 죽은 이승복의 시체,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 때 머리깨져 죽은 미군, 폐허가 된 아웅산, KAL기의 처참한 잔해..그런 영상이...내 머릿속에 이런 영상들을 쑤셔박은 거예요...그 총소리가 울리면 그런 영상들은 유령처럼 되살아나고..나에게 총을 뽑게 하는 거죠...마치 우리 마음 어디엔가 스위치가 있는 것처럼...그런 총소리가 울리면 손전등 불빛을 본 마루처럼 미친듯이 서로를 물어뜯도록 되어 있는 거예요.
--- pp. 248-249
"한국 전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요 … 사실 저희 세대랑은 거리가 먼 이야기 아닙니까? 솔직히 말해서 와닿는 이야기는 아니지요. 따지고 보면 저희 아버지, 아니 할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니까요. 아버지 세대가 6ㆍ25를 겪은 것은 10세 미만이나 그 또래일 겁니다. 그들에게도 얼렵풋한 기억일거예요. 그들에겐 6ㆍ25 그 자체보다는 전후 피폐함과 혼란스러움, 그리고 극심한 가난 등이 더욱 잘 와닿을걸요. 그러니 우리 세대는 오죽하겠어요. 알 수도 없을뿐더러 사실 그다지 관심도 없다고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겠죠. 『태백산맥』등의 소설에서 본 종잇장 위에 떠 있는 6ㆍ25라고나 할까요? 통일 문제도 그렇습니다. 어려서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하도 떠들면서 자랐으니까 그냥 그런 줄 아는 거지, 그렇게 절실한 것은 아닙니다. 1,000만 이산 가족 이야기 하는데, 정말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 사람들은 10년 안에 다 늙어서 사라질 겁니다. 모릅니다. 다른 사람 생각은 어떤지 …. 하여간 제 생각입니다."

한국 전쟁은 이미 이들 세대에겐 박물관에나 전시되어 있어야할 화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전쟁은 진행중이다. 그들은 이것을 망각하고 있는가? 하여간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다. 난 강 중위에게 내 이야기를 계속했다. 한바탕 풀어내고 나면 조금은 시원해질 것 같았다.
--- p.158
"한국 전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요 … 사실 저희 세대랑은 거리가 먼 이야기 아닙니까? 솔직히 말해서 와닿는 이야기는 아니지요. 따지고 보면 저희 아버지, 아니 할아버지 세대의 이야기니까요. 아버지 세대가 6ㆍ25를 겪은 것은 10세 미만이나 그 또래일 겁니다. 그들에게도 얼렵풋한 기억일거예요. 그들에겐 6ㆍ25 그 자체보다는 전후 피폐함과 혼란스러움, 그리고 극심한 가난 등이 더욱 잘 와닿을걸요. 그러니 우리 세대는 오죽하겠어요. 알 수도 없을뿐더러 사실 그다지 관심도 없다고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겠죠. 『태백산맥』등의 소설에서 본 종잇장 위에 떠 있는 6ㆍ25라고나 할까요? 통일 문제도 그렇습니다. 어려서부터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고 하도 떠들면서 자랐으니까 그냥 그런 줄 아는 거지, 그렇게 절실한 것은 아닙니다. 1,000만 이산 가족 이야기 하는데, 정말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 사람들은 10년 안에 다 늙어서 사라질 겁니다. 모릅니다. 다른 사람 생각은 어떤지 …. 하여간 제 생각입니다."

한국 전쟁은 이미 이들 세대에겐 박물관에나 전시되어 있어야할 화석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전쟁은 진행중이다. 그들은 이것을 망각하고 있는가? 하여간 내가 참견할 일은 아니다. 난 강 중위에게 내 이야기를 계속했다. 한바탕 풀어내고 나면 조금은 시원해질 것 같았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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