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서야 나는 자유함을 만끽하고 있다. 정죄의 틀에서, 죄 짓지 않기 위해 몸부림치며 사랑받지 못한 상처에서, 그리고 사랑하지 못해 죄책감에 눌려 살던 것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다. 지금은 진리가 자유케 한다는 말씀을 체험하고 있다. 나는 인생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이 책을 쓰게 하신 데는 하나님의 뜻이 분명 있다고 믿는다. ‘사랑하기 때문에 진실을 말한다’[“speaking the truth in love”(엡 4:15, NIV)]의 의미를 알아가고 있다.
_ 에필로그 중에서
나는 수양회에 강사로 오신 목사님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런 질문에 대해 목사님이 찬찬히 설명해 주었다. 목사님이 요약해 준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네 아버지는 이중구조 속에서 살고 계신다. 즉, 영적 생활과 육적 생활을 완전히 분리하여 육에 속한 모든 것은 육적인 것이고, 이는 사탄에 속한 것이므로 정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삶도 이중적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육체도 하나님이 지어주신 것으로 아름답고 귀하기 그지없을 뿐 아니라 영적인 것도 육체를 통해 구체화 된다.”
이 말씀을 듣고 그간 아버지가 잘못된 신앙구조에 갇혀 살았음을 감히 인정했다. 또 나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죄를 짓지 않는다는 자세로만 살았고, 그러다 보니 그 잣대를 다른 사람에게까지 적용했다. 그래서 사람의 장점을 보기보다 단점을 재빨리 포착하여 그 사람을 비판하는 데 익숙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와 인자하심을 바로 아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마음에 품어 하나님의 용서와 무한한 인내와 관용을 자신도 모르게 베풀게 된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에게 마땅히 나타나는 성품인데, 나는 사람을 사랑하고 관용하고 이해하기는커녕 정죄하기에 바빴다.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라는 가르침이 있음에도, 나는 남보다 영적으로 우위에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머리를 재빨리 굴렸다. 이민 오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내 안의 위선들이 미국에서 신앙생활하면서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 p.169-170 “미국에서 찾은 신앙의 자유” 중에서
특히 아버지는 한국 최고의 칼빈주의 신학자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유교적 칼빈주의자였다. 이것을 알게 된 것은 충격이었다. 칼빈주의가 주창한 것을 현실에 적용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아버지는 워낙 현실감각이 없고 게다가 용기도 부족하다 보니, 본인의 내면에 깊이 뿌리박힌 유교사상을 냉철하게 도려내지 못한 채 인생을 마감하셨다. 남존여비 사상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의 뿌리였고, 충효사상은 하나님과 자녀 관계의 근간을 이루는 사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의 사랑에 관심을 갖기보다는 생명을 다해 군주만 생각하고 군주만 섬김으로 이웃 사랑을 소홀히 했다. 유교의 효도 개념을 성경에 그대로 옮겨, 당신의 자녀가 당신에게 무조건 복종할 것을 강요했고, 아버지 눈에 벗어나는 행동은 가차 없는 분노와 심한 매질로 다스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는 말씀을 주저 없이 범하며 살아가셨다.
--- p.188 “미처 알지 못했던 복음” 중에서
사람들은 아버지가 영어, 헬라어, 히브리어에 능했다고 말하지만, 아버지는 늘 한글번역 성경을 읽었고, 거기서 문제점이 발견되었을 때 히브리어성경이나 헬라어성경을 참조하셨다. 그러나 당신의 생각 깊숙한 곳에는 유교 사상이 자리 잡고 있었고, 한글성경은 여전히 유교적인 세계관을 벗어버리지 못한 번역이었으므로, 아버지가 한글성경을 읽을 때 아버지의 사상체계와 맞는 부분에서는 중요한 단어를 원어와 대조해 보는 일 없이 그냥 지나쳐버린 부분이 자주 발견된다. …
아버지는 성역 50주년 행사를 마친 뒤 아버지가 쓰신 주석을 영어로 번역해 출판하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아버지가 쓴 주석은 한국 교회 초창기에 참고할 만한 서적이 전혀 없을 때 귀히 쓰였으나, 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들어오는 학자들이 점점 많아지는 상황에 좋은 서적을 번역하여 출판할 필요는 있어도, 아버지의 주석을 영어권 교회에 출판 판매하는 일은 심사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가 할 일은 거기까지였다고 보았다. 그리고 아버지의 여생이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이 자란 당신의 자녀들을 포용하는 용서와 화해의 여생이 되길 바랐다.
--- p.253-254 “주석학자를 보는 시선” 중에서
믿는 자는 마지막 날 완성되어 하나님의 존전에 들어간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며 성령님의 역사로 가능하다. 사람은 결코 자기 힘으로 의에 이르지 못한다. 그 아들을 믿고 신뢰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 하나님께서 우리를 점차 성화의 종착지로 이끄시는 것이다. 자기 노력을 의지하는 것은 죄다(롬 8:9-11; 고후 1:22; 5:5; 엡 1:14). 그것은 곧 행위를 의지하는 죄인 것이다. …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하나님은 이미 지고한 행복과 영광에 둘러싸여 계신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게 하시고자 이미 이루어 놓으시고 계속 이루어가시는 일에 사람을 초청해 참여하게 하신다.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힘쓸 것은 없다.
--- p.276 “진정한 믿음(believe in)을 기대하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