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 중에 우리 생에 내에 성취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소망에 의해 구원받아야 한다. 진실되거나 아름답거나 선한 것 중에 역사의 순간적인 상황에서 완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에 의해 구원받아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리 훌륭하다해도 우리가 홀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에 의해 구원받아야 한다. 어떤 훌륭한 행동이라도 우리의 관저멩서 보는 것만큼 친구나 적의 관점에서도 훌륭하게 보이는 것은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으이 최종적인 형태, 곧 용서에 의해 구원받아야 한다.'
--- p.376---pp.7-16
하나님은 보통 우리의 재능에 부합되게 우리를 부르시는데, 재능의 목적은 청지기직과 섬김이지 이기심이 아니다.
재능만이 우리의 소명을 분별하는 유일한 변수는 아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다른 변수들이 있는데, 그것은 집안의 전통, 자신의 인생 기회, 하나님의 인도, 그분이 보여 주시는 것을 두말 없이 하려는 태도 등이다. 그러나 소명을 분별하는 핵심 변수로서 재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의 사고 방식을 뒤집는다.우리는 보통 어떤 사람을 처음 대할 때 얼마 안 가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라고 묻는다. 그러면 "저는 변호사입니다", "저는 트럭 운전사입니다", "저는 교사입니다." 등의 대답을 듣게 된다.
이름이나 출생지보다 직업을 아는 것이 상대방을 파악하는 데 훨씬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대부분의 경우 일이야말로 우리가 중요한 존재인지의 여부를 결정짓고 평생 동안 우리가 이룩한 선한 업적을 가늠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명은 이러한 사고 방식을 뒤집어엎는다. 소명 의식은 직업 선택에 선행해야 하고, 소명을 발견하는 길은 우리 각자가 창조될 때 부여받은 재능을 분별하는 것이다. 소명은, "당신의 존재는 당신이 하는 일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당신의 존재에 걸맞는 일을 하라"고 말한다.
--- p. 76
재능만이 우리의 소명을 분별하는 유일한 변수는 아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다른 변수들이 있는데, 그것은 집안의 전통, 자신의 인생 기회, 하나님의 인도, 그분이 보여 주시는 것을 두말 없이 하려는 태도 등이다. 그러나 소명을 분별하는 핵심 변수로서 재능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의 사고 방식을 뒤집는다.우리는 보통 어떤 사람을 처음 대할 때 얼마 안 가서 '무슨 일을 하십니까?'라고 묻는다. 그러면 '저는 변호사입니다', '저는 트럭 운전사입니다', '저는 교사입니다.' 등의 대답을 듣게 된다.
--- p.76
인생을 여정으로 믿음을 여행으로 보는 사람에게는 소명이 분명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즉 우리 모두는 각각 그 여정의 다른 단계에 와있으며 살아 있는 한 아무도 최종 목적지에 아직 도달하지 않았음을 기억한다.
--- p.179
우리가 실제로 그리스도를 좇아갈 때에만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사실이다. .. 우리가 다른 모든 흠모의 대상을 내려놓고 그분만을 따라 걸으며, 그분이 말씀하시는 것을 행하고, 그분이 요구하시는 대로 살 때 비로소 진정한 제자가 된다...
--- p.175
소명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그분께로 부르셨기에, 우리의 존재 전체, 우리의 행위전체, 우리의 소유 전체가 특별한 헌신과 역동성으로 그분의 소환에 응답하여 그분을 섬기는 데 투자된다는 진리이다.
--- p.
모든 사람은 꿈을 꾸지만 똑같은 꿈을 꾸는것은 아니다. 밤에 먼지 쌓인 마음의 한 구석에서 꿈꾸는 자는 아침에 일어나면 그것이 헛된 꿈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한 낮에 꿈꾸는 사람은 위험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두 눈을 크게 뜬 채 그 꿈이 이루어지도록 실제로 행동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그렇게 행동했다.-로렌스
--- p.
많은 과학자들이 이 세계에 대한 박식한 지식을 갖고 있고, 많은 철학자들이 거대한 사상 체계들을 섭렵할 수 있고, 많은 신학자들이 종교의 심오한 경지를 파헤칠 수 있으며, 많은 저널리스트들이 어떤 주제든 그럴듯하게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론에 불과한 것이며 개인적인 목적 의식이 없다면 그저 허망한 것일 뿐이다.
우리의 가슴 깊숙한 곳에는 우리자신보다 더 큰 목적을 발견하고 그것을 성취하고 싶은 갈망이 도사리고 있다. 그처럼 좀더 큰 목적만이 우리고 하여금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도달할수 없는 저높은 곳을 향하여 나아가도록 할 수 있다. 우리 각자에게 진정한 존재 목적은 참으로 개인적인 것이요 열망의 대상이다. 그것으 우리가 무엇을 하러 여기에 있는지, 왜 이 곳에 존재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그의 저널에 이렇게 썼다.
'그것은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요, 하나님이 진정 내가 하길 원하시는 것을 아는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해당되는 참된 진리를 발견하는 것이며, 내가 위하여 살기도 하고 죽을 수도 있는 그 사상을 찾는 것이다.'
--- pp.10-11
'나의 소명은 높고 나의 과업은 영광스러운 것이다. 내 침대 위에는 십자가 상이 걸려 잇는데, 내가 그것을 쳐다볼 때면 매일 밤 주님이 나에게 이렇게 묻는 것만 같다. '나의 쓴 잔에 버금가는 너의 고통은 무엇이냐?' 그분의 섬김은 너무나 높고 영광스러운 것이다'(아브라함 카이퍼)
--- p.256
30년 이상이나 소명이라는 주제는 오스 기니스의 가슴을 불태웠다. 이제 그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귀한 보석 같은 진리를 제시한다. 보석을 빛에 비추어 한 면 한 면 검사하면서 말이다. [소명]은 특별히 자기 자신의 독특한 평생의 목적-삶의 궁극적인 '이유'-을 알고자 하는 깊은 열망을 느끼는 이들을 위해 쓰인 책이다. 누가 그와 같은 열망을 느끼는가? 오스 기니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십대에게는, 가정과 학교라는 울타리 너머 어지러울 정도로 선택의 폭이 넓은 자유의 세계가 정겹게 손짓하는 모습으로 다가온다. 대학원생에게는, 한때 '세계는 나의 밥이다'라고 흥분해하던 감정이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엄연한 현실로 인해 식어져 갈 때 그것을 직면하게 된다.
삼십대 초반의 경우에는, 한때 그들이 유념했던 부모님의 기대와 동년배들의 통념과 봉급 및 경력상의 매력 너머에 있는 잔인한 현실-일상적인 일의 세계에서 부딪히는-에 직면할 때 그것을 알게 된다. 중년에 접어든 사람들은 자신의 은사와 일 사이에 존재하는 부조화로 말미암아 자신이 부적임자라는 생각이 날마다 들 때 그것을 직면한다. '과연 남은 생애 동안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 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