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15년 07월 14일 |
---|---|
쪽수, 무게, 크기 | 288쪽 | 540g | 152*229*20mm |
ISBN13 | 9780062409850 |
ISBN10 | 0062409859 |
렉사일 | 870L(GRADE5~9)? |
발행일 | 2015년 07월 14일 |
---|---|
쪽수, 무게, 크기 | 288쪽 | 540g | 152*229*20mm |
ISBN13 | 9780062409850 |
ISBN10 | 0062409859 |
렉사일 | 870L(GRADE5~9)? |
왓치맨이란 그래픽노블이 있다. Who watches the Watchman? (누가 왓치맨을 감시하는가?)란 질문이 기억에 남는다.
하퍼 리의 소설 Go set a watchman (파수꾼) 역시 슈퍼히어로는 아니더라도 미국 사회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왓치맨(자경대/파수꾼)에 대한 은유가 엿보이는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아직 읽지못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The "Catcher" in the rye)도 좀 비슷한 느낌일려나..?
보통은 전작이자 저자의 대표작인 To kill a mockingbird(앵무새 죽이기)를 읽고 이 책을 읽었을 것 같지만 나는 앵무새 죽이기를 읽기 전에 파수꾼을 먼저 읽어볼 생각이다. 사람들의 평이 앵무새 죽이기에서의 캐릭터가 파수꾼에서 충격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다르게 보인다는 감상이 많은 것 같은데 파수꾼을 먼저 읽고 앵무새 죽이기를 읽는다면(작가의 집필 순서도 파수꾼이 먼저 집필되었다고 한다) 다른 효과를 느낄 수 있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
미국 중고교의 필독서로 자리잡은 <앵무새 죽이기>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애티커스 변호사의 정의로운 모습에 감동했을 것이다.
이 책에서는 애티커스가 흑인 차별에 동조하는 충격적인 말년 모습, 그리고 딸 스카웃이
실망하고 좌절하는 -- 그리고 궁극적인 화해에 이르는 -- 모습이 그려진다.
<앵무새 죽이기>보다 먼저 쓰여진 이 책에서 애티커스가 인종차별적인 인물로 나오는 데
불만을 품은 사람들도 많지만, 나는 이 책이 <앵무새 이야기>를 새로운 관점에서 읽게 해 주는
진정한 의미의 후속작이라고 생각한디.
조지아에서 대학을 다니고 뉴욕에서 살던 스카웃은 아버지가 관절염으로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인 메이컴으로 돌아 온다.
어느 일요일 저녁 아버지를 비롯한 마을 남자들이 볍원에 모여 회의를 하는 것을 듣게 되었는데 그 모임은 인종 차별 정책을 지지하는 Citizens' Councils모임이었다. 비록 아빠가 소리 높여 차별 정책을 지지하지는 않았지만 악명 높은 그들의 발언을 아무말 없이 듣고 있었다는 자체가 스카웃에게는 충격적었었다.
어릴 때 보았던 아빠는 항상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이었고 엄마없이 자란 스카웃은 아빠에게서는 정의를 집일을 봐주던 흑인 하녀인 칼퍼니아에게서는 평등을 배웠었다.
그런 아빠가 흑인들의 권리 주장을 반대한다는 사실을 알고 스카웃은 삼촌과 아빠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그들에게 대든다.
자신을 남부숙녀로 키웠다면 아무 생각없이 남부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저항하지 않으며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괜히 정의감과 평등감을 키워주어 고향에서 살지 못하게 되었다고 대든다. 또 흑백차별의 사고를 가지고 있었으면서 스카웃이 어릴 때 왜 한번이라도 내비치지 않았다고 따진다.
아빠를 거의 신처럼 생각하고 모든 의사결정의 판단 기준(이런 경우 아빠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이었던 아빠가 자신에게 준 실망을 스카웃은 견디기 힘들었다.
의사인 삼촌은 스카웃에게 자신의 양심적 판단은 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내리는 것이 어른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Kill your father, Kill yourself.) 스카웃 자신이 자신만의 양심을 가지는 것을 격려했기에 그녀를 뉴욕으로 보낸 것이라고 설명한다.
소설의 분량은 전작인 앵무새 죽이기의 반 정도 박에 되지는 않지만 읽으면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었다.
남부에서 자란 탓에 뉴욕에 갔다가 식당에서 흑인이 옆에 와서 앉자 너무나 놀라서 식당을 뛰쳐 나왔다는 스카웃의 친구, white trash 출신으로 전쟁 덕에 대학에 가서 변호사가 되어 아빠의 변호사 사무실을 이어 받게 되고 그 사회에서 인정받기 위해 그 사회가 요구하는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헨리, 전형적인 남부 숙녀의 사고를 보여주는 고모 알렉산드리아 등 1950년대 남부인들의 사고 방식을 볼 수 있는 인물들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또 아빠인 애디커트의 인종차별의 변을 듣자면 아빠의 사고는 그 무시무시한 KKK단적 사고 방식보다는 유연하다. 흑인들의 사고가 아직 유아기에 머물기에 그들에게 어려운 결정을 맡기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것이 아빠의 주장이다. 그러면서 토마스 제퍼슨의 주장을 소개한다. 권리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쟁취해야 하는 거라고....
그러나 흑인들의 권리가 주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의 사고 향상을 기대할 수 있을까? 교육의 기회가 없는데 어떻게 향상되기를 기대할 수 있을까?
'권리는 쟁취해야 하는 것'이라는 문장에서 나는 우리나라 여권 운동을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여자들은 해방 후에 아무 노력없이 참정권을 받았다. 헌법 만을 놓고 본다면 우리나라는 여성평등이 잘 실현된 나라처럼 보인다. 대학교 때 이런저런 책을 읽으면서 선진국이라는 유럽의 나라들 중에는 여성들이 우리나라보다 늦게 참정권을 받은 나라들도 있고 대부분 참정권을 얻기 위해 여성들 스스로가 많은 노력을 하여 쟁취하였다. 우리나라는 해방 후 미국식 정치조직을 받아 들이면서 법률상 글자로만 평등의 개념이 들어 왔기에 참정권은 있지만 사회적 의미로의 양성평등은 더 늦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인종차별의 문제와 함께 진정한 인간으로 그 누구에게도 의지 않는 가치 기준을 갖는 것에 대한 소설이다.
Go set a watchman......
https://en.wikipedia.org/wiki/Harper_Lee